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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2024-03-29 20:33 (금)
의학회토론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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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석영 기자 dekard@kma.org
  • 승인 2000.11.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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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장: 우리나라 의료계의 현황과 문제점은 너무도 광범위 하고 심각하다 우리나라 의료계의 문제점이 무엇인지 부터 얘기해 보자.

김병익: 현재 이처럼 사태가 악화 된데에는 준비없이, 전략적 선택의 고려 없이 의약분업을 강행한 정부와, 의료계 실상을 이해 못하는 국민, 생명 담보 운운하며 일방적으로 몰아붙인 언론의 책임이 크지만, 의사 자신의 책임 역시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우리 의료계는 기존 체제에 안일하며 자기성찰과 개혁에 태만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의료시장과 의료소비자들의 인식 변화등 사회 전반의 새로운 의식 변화에 무관심해 왔다. 이번 사태를 볼 때 의료계는 정부와 여론을 설득하는 작업이 미흡했으며, 좀 더 온건하고 단계적인 대응을 고려하지 않은 것은 아쉬운 부분이다.

우리 의료계는 사회와 삶의 전반적인 변화와 발전, 새로운 움직임을 읽어내고 의료계 스스로 개혁, 개선하며 대응하는 작업에 미흡했다. 의약분업이나 의료개혁은 일반적 추세인데도 의료계는 이 변화에 소극적이었으며 그 결과 의권훼손과 의사 자존심, 자긍심에 위기를 가져 온 것으로 보인다.

김수길: 의약분업 갈등은 단순히 우리나라 의료시스템 문제 뿐만 아니라, 정부가 일반적인 시장에 어디까지 개입하고, 시장 참여자들이 어떤 원칙에 의해 그 규칙을 지켜야 하는지를 웅변적으로 큰 댓가를 치루며 배우고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규칙과 규제는 다른 것이다. 규칙이 확립돼 있으면 그 규칙에 따라 시장 참여자들이 행동하면 된다.

그러나 정부가 마음대로 규제를 하며 개입하는 것이 문제다. 의약분업의 본질은 의사들의 윤리, 도덕 문제가 아니고 과거부터 켜켜히 싸여왔던 '가격'의 문제다. 과거에 합리적인 가격을 매겨주지 않아 일종의 블랙마켓이 형성돼서 비공식적인 가격이 결정된 것이 현실이다.

그것을 양성화 시키려면 합리적인 가격을 제시해 줘야하는데 아무런 제도적 보완 없이 무조건 과거 관행을 깨려는데에 무리가 있는 것이다. 문제해결은 '합리적인 가격 체제'를 만드는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가격이 왜곡되지 않았을 때, 공급자와 소비자의 행태를 정부가 감독하는 시스템을 새로 놓는것 밖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

좌장: 우리는 자본주의 사회인데도 불구하고 의료보험은 사회주의적 요소가 있어서 여기서 파생되는 갈등, 모순으로 인해 의료계 뿐만 아니라 모든 국민이 불편을 겪고 있다 사회적 구조와 사회주의,자본주의의 갈등을 대해 얘기해 보자.

서대석: 정부가 의료에 대해 어떤 시각을 갖고 있는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의료보호제도이다 지난해 정부가 체불한 의료보호비가 3천억원이다. 의료보호 예산이 작년 8천억에서 올해 7천9백억으로 깎였는데 오히려 의약분업 시작하면서 의료보호 환자들의 수혜 기간을 330일에서 365일로 연장했다.

결국 생색은 정부가 내고 비용 부담은 병원이 지게 됐다. 장기적 계획, 원칙 없이 그때끄때 넘어가기 바쁜것이 우리 정부가 갖고 있는 의료에 대한 태도이다 의료보험제도도 마찬가지다.

권오주: 의료보험에는 정부, 보험자, 심사기구, 즉 3자가 관여하게 된다. 그런데 그 관여의 정도가 도를 지나쳐서 문제가 된다. 전문가 집단을 인정하지 않은 것이 대란의 원인이다. 의료보험은 국가 정책이다. 의료보험제도 문제를 해결하려는 정부의 의지와 노력이 필요하다.

좌장: 결국은 재정문제다. 우리 사회에 적합한 의료모델과 갈등 해소 방법은 무엇인가?
김수길: 의보수가 현실화와 사보험 도입이 중요한 방안이 될 것이다. 의료시스템 이전에 훨씬 더 중요한 문제는, 고가의 서비스를 받으려면 누군가가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는 평범한 인식을 가져야 하는 것이다.

많은 의료소비자들이 현실적으로 겪는 의료에 대한 불편이 보험료의 저렴함 때문이라는 것을 잘 깨닫지 못한다. 의사들이 이같은 문제를 경제학자 등과 논의해서 일반 국민에게 손쉽게 설명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좌장: 원가에 미치지 못하는 비용으로 의료행위를 할 수 밖에 없는 현실은 결국 국민에게 모든 피해가 돌아간다. 의료계는 어쩔 수 없이 왜곡 진료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 처하게 되는데 여기서 윤리적, 경제적 문제가 드러난다.

김중호: 우리나라 의료제도는 행정적으로 잘못됐기 때문에 윤리적으로도 잘못 될 수 밖에 없다. 의료는 비즈니스가 아니다. 의료는 서비스다.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람들이 경제적인 문제로 고민하게 되면 비윤리적인 문제가 도출될 수밖에 없다.

한 통계에 의하면, 의료기관의 가장 많은 비윤리적 행위로, 의료부정, 부조리, 의료분쟁 등이 나왔다. 의료인 자신도 비윤리적인 행위를 하고 있다는 응답이 16%나 나왔다. 과잉진료나 허위진료 같은 비윤리적 문제는 결국 잘못된 의료제도로 인한 자구책이 아닌가 생각한다.

좌장: 앞으로 의료정책은 정부와 의료계의 파트너쉽에 의해 형성돼야 할 것이다. 지금까지 정책과정에서의 문제점, 향후 정책수립 방향에 대해 토론해 달라

권오주: 한마디로 국가에 의료정책이 없다. 정치논리 말고는 없었다. 공공투자 의료기관이 하나도 없고 예방사업을 할 보건소가 의료행위를 하고 있다. 현 사태의 근본 원인은 정부의 의료이원화 정책 때문이다. 의료에 대해 전문직종을 무시하고 행정관리 대상으로 본 것도 대란의 중요한 원인이다. 또 법률상 규정된 위원회가 전부 다 요식행위 범주를 벗어나지 못했다.

한편 수가에 대해 의료보험심의위원회에서 모든 전권을 갖고 있다는 것은 의료인을 전문가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수가에만 집착하는 것은 문제다. 급여기준, 의료체계, 수가, 수가조정, 심사기구 모든 부분이 함께 논의돼야 한다. 의약분업의 제일 큰 문제는 약품분류다. 의약품분류위원회를 없애 버리고 근본 문제, 과연 OTC가 무엇인가부터 접근해야 한다.

이왕준: 저보험료, 저수가, 저급여의 악순환 고리는 의료현장에서 진료형태의 왜곡을 초래했다. 의학적 타당성에서 환자를 보는 것이 아니라 경제적 타당성에 환자를 보는 기형적 현상을 불러 일으켰다. 의료보험은 본질적으로 탄력적으로 운영돼야 한다.

그러나 20년간 유지돼온 경직성은 의보제도 자체의 보장성을 완전히 유명무실하게 만들었다. 의료자본주의, 의료사회주의 논란이 있었는데, 그것보다는 우리 갈등의 근원은 의료획일주의와 의료다원주의의 갈등이 아닌가 생각한다. 우리나라는 근본적으로 획일주의이기 때문에 모든 부분이 의학적 자발성이 아니라 경제적, 즉 급여 기준에 의해 좌우된다.

적정수가를 만들지 않고는 어떤 문제도 해결할 수 없다. 의학적 판단이 요구되는 영역과 보험급여 영역은 다른것이다. 보험급여 여부는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지만, 의학적 판단까지 규제하는 것은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결국 의사들이 의료보험을 비롯해 의학적 판단과 관련된 영역에 대한 적극적 개입을 통해 바꿔나가지 않으면 문제 해결은 요원하다.

좌장: 의사의 윤리적 측면에 대해 말해달라.
김중호: 약가마진, 과잉진료 같은건 절대로 합리화 시킬 수 없다. 그러나 왜 이렇게하지 않으면 안되는지에 대한 문제를 깊이 생각해 보고 정부와 국민을 설득해야 한다.

이왕준: 전문가 집단의 기본 윤리는 스스로가 개혁 주체고 대상이라는 자각에서 나온다고 생각한다. 의사 스스로 의사를 통제할 수 있는 메카니즘, 시스템이 있는지가 윤리성, 전문성을 논할 때 중요한 문제로 제기된다.

좌장: 의사의 윤리도 중요하지만, 국민의 의식구조 역시 변화가 있어야 한다는 지적이 있다.
허대석: 우리 국민과 사회는 의료에 대해 이중적인 시각을 갖고 있다. 비용은 부담하지 않으려 하면서 의료수준은 선진국 수준을 요구한다 비용 부담의 주체에 대한 의료계, 국민간의 합의와 논의가 필요하다.

김수길: 정부는 원칙을 세워서 이익집단간의 이해상충을 조정해야 한다. 정부가 역할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 결국에는 도저히 개입할 수 없는 상황으로까지 치닫게 된다. 국민을 설득하는 일이 생각보다는 어렵지 않다고 생각한다. 병원에서 진료할 때 환자가 불편함을 호소하면 수가 문제등 의료현실을 설명하며 설득할 수 있다. 피부에 와닿는 논리로 설득하면 국민뿐만 아니라 NGO들도 이해시키는 것이 가능하리라 본다.

좌장: 의료단체로서 한 목소리를 내는 체제가 필요하지 않은가?
이왕준: 정부와 협상에 있어서 문제를 풀어나가는 주체는 의사들이며, 이들을 담아낼 수 있는 의사단체의 역할이 중요하다 결국 의사단체의 개혁이 요구되는데 우선 민주적인 단체, 정책기구로서의 역할을 다하는 단체, 내부 자정 및 윤리적 역할을 하는 단체가 돼야 한다.

이 중 제일 어려운 것이 내부의 이견, 이해관계를 조정, 통합하는 일이다. 의사단체가 리더쉽을 갖고 의사 내부의 의견을 조정하지 못하면 또다시 규제의 대상으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의사들의 요구와 입장을 반영해 관철시켜 나가는데에 대한 문제를 고민해야 할 것이다.

좌장: 앞으로의 의료계의 방향에 대해 얘기해 보자.
김병익: 이번 사태를 계기로 의료계내부에서 자기반성과 전향적인 성찰을 위한 좋은 계기가 됐으면 한다. 의료계, 의료정책의 문제점이 이번 사태를 계기로 들어났으며, 앞으로도 더 많은 모순, 비리들이 폭로되고, 해부되고, 분석돼서 모두의 공동 관심사가 돼야 한다.

지금까지 의료계 내부에만 기울여 온 관심을 외부에도 돌려야 한다. 의료계 내부와 외부의 설득과 협력이 필요하다 의료발전특별위원회를 대통령 직속으로 구성해 의사와 정부 정책담당자, 언론, 시민단체 등이 참여해서 의료정책의 장기적 대책과 실현 방안, 재정 문제 등을 논의하는 것이 바람직 할 것이다.

좌장: 앞으로 의사들은 국민에게 최선의 의료를 제공하면서, 의료정책에도 관심을 갖고 대안을 개발해 정부에 제시할 수 있는 역량과 책임을 가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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