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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걷는 것도, 내가 의료봉사를 하는 것도 당연한 것일 뿐
그들이 걷는 것도, 내가 의료봉사를 하는 것도 당연한 것일 뿐
  • Doctorsnews kmatimes@kma.org
  • 승인 2005.11.07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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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희의료원 재활의학과 김희상 과장

경희의료원 재활의학과 김희상 과장(45)에게 듣는 의료봉사활동 스케줄은 제 3자가 듣기에는 그야말로 숨이 찰 정도다. 요즘 어느 CF에서 들은 "직장은 옵션이다"라는 말이 떠오를 정도로 의료봉사를 위해 전문의가 된 게 아닐까라는 생각마저 들지만, 정작 본인은 메모가 필요없을 만큼 의료봉사 스케줄이 몸에 베어 버렸다. 그럴 만도 한 것이 김희상 과장이 가장 애착을 가지고 찾아가는 한사랑마을의 경우 그 인연이 벌써 13년이 넘었다.

 

▲ 김희상 과장

■ 그들이 걷는 것도, 내가 의료봉사를 하는 것도 당연한 것일 뿐

의과대학 시절 SUS라는 교양·봉사 동아리를 통해 의료봉사활동을 시작한 김 과장은 전문의 자격을 딴 후 본격적인 봉사활동에 나섰다. 처음 꽃동네에서 앉은뱅이를 걷게 했을 때 기적이라며 놀라던 사람들에게 "걷는 게 당연한 사람들이 걷게 된 것일 뿐"이라고 말했던 것처럼, 그는 여전히 당연한 것을 누리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재활의학을 펼치고 있다.

 

■ '우연'이 '필연'이 된 한사랑마을과의 인연

김희상 과장이 광주에 있는 중증장애아동 복지재단인 '한사랑마을'과 인연을 맺게 된 건 199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이미 한사랑마을에서 의료봉사를 하고 있던 선배가 임신을 하면서 1년만 대신 가 달라고 부탁했던 것이 지금에까지 이르게 된 것. 실습 나온 학생들을 데리고 가서 아이들 진찰도 하고, 입소 상담도 하고, 그곳에 있는 간호사들 교육도 하고···, 99년까지 이런 활동이 일주일에 한번씩 이어졌다.

이후 교수로 발령이 나면서 시간적인 여유가 줄어든 김 과장은 시스템을 바꿨다. 광주 시내에 있는 개원의 후배를 일주일에 한 번 보내고, 본인은 한 달에 한 번 가면서 '팀워크 어프로치'라는 시스템을 운영하기 시작한 것이다.

'팀워크 어프로치'는 매달 한 명의 중증장애아동을 두고 한사랑마을에 있는 작업치료사, 물리치료사, 간호사, 사회복지사, 언어치료사, 학교 교사들이 모여 아이의 치료부터 교육 방안에 대해 발표하고, 김 과장은 이를 듣고 총괄 지도를 한다. 그리고 다음 달에 경과를 다시 보고하고, 또 다른 한명을 두고 발표를 하는 식의 시스템이다.

이런 과정이 있어 한사랑마을 장애아동들의 재활치료는 점점 더 체계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체계적인 그의 의료활동은 비단 이 뿐만이 아니다. 남의 도움 없이는 일어설 수 없는 아이가 90% 이상인 현실을 보고 한사랑마을에 있는 모든 아이들의 골밀도검사를 결행했다.

이동차량에서 똑바로 설 수도 없는 아이들의 엑스레이를 찍는 일은 '결행'이란 단어를 사용해야 할 만큼 힘들었지만, 이런 그의 의지는 큰 상으로 돌아왔다. '뇌성마비의 경중도와 유형에 따른 골밀도와 골교체의 생화학적 표지자'라는 논문으로 1999년 미국학회에서 소아 재활 부문 최우수상을 수상한 것이다. 이제 그 당시 검사한 아이들의 경과에 대한 논문을 작성할 예정이란다.

 

■ 안동시 녹전동 '칫솔 선생님'

"한사랑마을이 오래되긴 했지만 그래도 김 과장이 가장 잊지 못하는 건 안동시 녹전동이라고 한다. 공중보건의로 그곳에서 3년을 보낸 김 과장은 20년 가까이 지난 지금까지 그 시골 마을에서 '칫솔 선생님'으로 기억되고 있다.

“당시 그 마을에 있는 초등학교에서 신체검사를 맡게 되었어요. 그런데 아이들 치아 상태가 좋지 심각하더라구요. 그래서 치과를 전공하던 친구를 불러 강의를 시키기도 했죠. 그리고 다음 해에 다시 신체검사를 하는데 아이들 몇 명이 학교에 안 오는 거예요. 알고 보니 내가 가져오라고 했던 칫솔이 없어 혼날까 봐 결석을 했더라구요. 칫솔을 가져 온 아이들 중에는 아빠 걸 가져온 아이들도 있었구요. 그래서 칫솔, 치약 만드는 회사에 연락해서 기증을 받아 나눠줬어요. 그 후로 아이들이 저를 칫솔 선생님이라고 불렀죠.”

칫솔 선생님이란 말을 들은 건 공중보건의 시절만이 아니었다. 몇 년 전 병원을 찾아온 한 청년의 주소지를 보고 혹시나 해서 물어보니 “칫솔 선생님이세요?”라며 반가워하더라는 것이다.

녹전동에서 '내 인생을 실현해보자'라고 결심했던 당시의 '청년 김희상'은 마을의 이장님들에게 진료가 필요한 노인분들을 추천해달라고 해서 일요일마다 보건소로 모시거나 왕진을 돌며 무료진료를 해 드렸다. 집집마다 필요한 물건을 나눠드리기도 했다. 옆집 젊은 사람에게 자신이 찾지 못하는 날 노인을 돌봐달라고 방법을 일러주기도 했다. 형편이 어려운 중학생 몇 명을 추천받아 육성회비와 용돈을 주기도 했다. 아이들이 자존심 상해할까 봐 보건소 청소를 시키고 그 수고비로 주는 식의 배려도 잊지 않았다.

이렇게 의사로서의 인생을 의미있게 시작한 곳이니 제2의 고향처럼 느껴지는 게 당연할 것이다. 김 과장은 작년에도 가족들과 안동시 녹전동으로 여행을 가서 칫솔 선생님을 기억하는, 장년이 된 학생들을 만났다.

 

■ 동료의사, 학생, 가족에게까지 아름다운 강요

김 과장은 이제 고등학교 1학년, 중학교 2학년이 된 두 아들이 앉을 수 있을 때부터 카시트에 앉혀서 한사랑마을로 데려갔다. 산부인과 의사인 아내는 함께 가지 못하는 때가 많았는데, 우유병 챙겨서 아이들은 꼬박 데리고 다녔다.

“아이들에게 나중에 들으니 초등학교 저학년 때 까지는 무서웠다고 하더라구요. 고학년이 되어서야 중증장애가 있는 아이들과도 잘 어울려 놀 수 있었다고 해요. 어렸을 때는 한사랑마을 입구에 있는 스포츠브랜드 할인매장에 들르겠다고 꼬드겨 데리고 갔죠. 하하하”

가족에게 이러할 진데 동료의사들이나 학생들에게 그의 아름다운 강요가 없을 리 만무하다. 2003년부터 지금까지 하고 있는 서울역 노숙자진료소 의료봉사에는 재활의학과학회 사람들을 동참시켰고, 성북노인종합복지관에는 경희의료원의 도움을 받아 직원들을 데리고 간다. 둘 다 적어도 한 달에 한번은 꼭 참여하고 있다. '한 달에 한 번'이라지만 이런 활동만 한 달에 적어도 네 번이다.

2000년 노인의학 전문의, 2001년 노인병 인정의와 스포츠의학 분과전문의 등을 취득하고, 2002년에는 UCLA에서 1년간 노인의학을 연구하는 등 공중보건의 시절 안동시 녹전동에서 마을 노인들을 돌보던 김희상 과장은 이제 노인재활의 대가로 인정받고 있다.  글 · 사진│신현경 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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