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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의료분야의 인권침해를 우려한다

시론 의료분야의 인권침해를 우려한다

  • Doctorsnews kmatimes@kma.org
  • 승인 2005.10.21 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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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일랜드'란 영화는 복제인간을 이용해 필요할 때 장기를 공급하는 내용을 다루고 있다.

이 영화에서 복제인간들은 자신들이 사육되는 줄도 모른 채 언젠가 이상향인 '아일랜드'로 돌아걸 것이라는 환상을 품고 산다. 그곳의 '빅 브라더'는 복제인간을 단지 장기 공급용 상품으로만 취급하며 철저한 통제 시스템을 이용해 자유를 박탈하고 있다.

자유를 찾아서 탈출한 복제인간들은 무너진 건물들과 지저분한 환경 속에서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인간세상과 마주하게 된다. 물론 복제인간들은 각기 다른 옷을 입고, 다양한 의견을 밝히는 '전혀 질서가 없는 듯한 사회'와 마주하게 되지만 이곳에서 '진실'을 깨닫게 된다.

자유는 인간의 완벽하지 못함을 전제로 한다. 인간은 언제나 오류의 존재이자 때로는 선하고 때로는 악한 모습을 나타낸다. 이러한 인간의 불완전성 혹은 가변성으로 인해 현실에서의 실현 가능한 이상향을 "이것이다"라고 함부로 정의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것이 인간이 나아가야 할 바이다"라고 결정한 사람들은 종교인들이거나 마르크스류의 결정론자들이다.

인간의 지식이 엄청난 문화적 발전을 이뤄온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인간의 지식은 불완전하며, 그 불완전함을 조금씩 수정해 나가는 과정을 통해서 발전해 나가는 것이다. 이러한 불완전함에 대한 수정은 자유로운 생각과 자율적 행동을 통해 가능하다.

반면에 "이것이 완전한 제도"라고 결정하고, 완전한 제도를 만들기 위해 인간들을 통제하려 든다면  이것은 결과적으로 자유를 통제하고, 자율성을 막게 된다. 자유와 자율성은 불완전함에서 완전함을 추구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임이 틀림없다. 사람들에게 다양성을 보장해 주는 것이야 말로 인류 발전을 위한 가장 큰 가능성을 보장해 주는 것이다.

최근 보건복지부는 IT기술을 이용해 각 병의원의 진료자료를 모아서 중앙집중식으로 처리하는 연구와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정부는 자료의 중앙집중을 통해 비용을 절감하고, 개인의 질병 자료와 개인 신상을 신속하게 파악하고 이용할 수 있다는 판단을 하고 있는 듯 하다.

필자는 모든 진료정보를 중앙집중화 하려는 움직임을 지켜보면서 영화 아일랜드에 나오는 통제된 사회의 복제 인간들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통제의 편리함과 건강자료 이용의 합리성이 중요시되는 대신에 개인은 사라지고 통계 속의 인간만 남게 될 것이라는 우려가 엄습해 왔다. 숫자와 통계자료로 인간들은 재단되고, 여기에서 벗어난 인간들은 비정상적으로 간주돼 사회에서 배제된 인간으로 살게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건강자료의 집중과 공동 이용은 자료가 특정인에 의한 통제수단으로 악용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최근의 주민등록자료 유출사고처럼 프라이버시와 인권 침해를 유발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보건의료정책이 인간의 자유와 자율에 무게를 두지 않고, 편리성과 비용 절감을 우선시한다면 '아일랜드'의 복제 인간의 삶과 무엇이 다른가?

진료는 환자가 자신의 질병을 의사에게 보임을 '허락'함으로써 시작된다. 따라서 환자 개인의 프라이버시와 비밀을 담고 있는 진료자료를 다른 사람에게 보일 것인가, 말 것인가의 자유의사를 존중함이 마땅하다. 자신의 몸을 살펴보기를 허용한 의사 이외에 자신의 몸을 보일 이유가 전혀 없어 보인다.

아무리 정부라도 환자 개인의 허락 없이 적나라한 진료정보를 강제로 살펴볼 권한은 없다. 개인의 건강정보를 허락없이 국가가 마음대로 사용하는 것은 전체주의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정부가 개인들의 질병을 통합하고, 관리하는 것은 개인의 허락없이 해서는 절대로 안된다. 이는 조지 오웰의 '빅 브라더'의 탄생을 예고하는 것이며, 전체주의로 가는 길을 열어 놓는 것이다. 인간의 기본적 자유는 누구도 침해해서는 안된다. 개인의 허락없이 마음대로 정보를 이용할 수 없도록 하는 것이 인권보호의 기초이고, 자유보장의 기본이다. 의료제도가 인간의 발전을 위한 것이라면 '편리성과 비용 절감을 위한 통제'보다는 '제도의 자율성'과 '개인의 자율성'을 확대·보장해 주는 것이 바람직하다.

박양동<의료와 사회포럼 공동대표·경상남도의사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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