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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과 진료는 '통' 합니다"
"교육과 진료는 '통' 합니다"
  • 김혜은 기자 khe@kma.org
  • 승인 2005.10.11 1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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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대 외국어교육원장 김봉옥 교수

아버지가 초등학교 교사였던 그는 줄곧 선생님이 되고 싶었다. 학제상 초등학교보다 고등 교육기관인 중학교나 고등학교 선생님이 된다면 '성공'한 것이지 싶었다.

의사의 길을 택하고도 한동안 선생님에 대한 미련을 못 버려 의대생 시절에는 운 적도 많았다. 그럴 때마다 친구들은 "선생님이 아니라 의사'선생님'이 되면 되잖아"라면서 위로했지만 "그 선생님하고 그 선생님이 같냐"며 흘리던 눈물을 마저 쏟아내기 일쑤였다.

그런데 그 선생님이 그 선생님과 같지는 않더라도 결코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그는 최근에야 깨달았다. 물론 두 '선생님'의 공유영역이 굳이 '더 많이 알고 있는 사람'이 '덜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 지식을 전수한다는 단순한 구분법에 따른 것만은 아니었다. 환자(학생)와 의사(선생님)는 1:1의 가장 기본적인 관계망을 이루면서도 거대한 시스템 속에서 제약받고 있다는 차원의, 보다 거시적인 관점에서 그는 두 '선생님'의 접점을 찾아냈다.

의과대학 교수로서는 처음으로 외국어교육원장 자리에 오른 충남의대 김봉옥 교수(재활의학과)는 교육과 진료는 세 가지 면에서 공통조건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 김봉옥 교수

■ 외국어교육원장

"교육은 교육받는 이들이 이해할 수 있고, 그들이 필요로 하는 교육을, 원하는 곳에서, 너무 큰 대가를 바라지 않고 이뤄져야 합니다. 진료는 환자들이 필요로 하는 진료를, 환자가 있는 곳에서, 환자가 조달할 수 있는 진료비로 이뤄져야 합니다. 매우 비슷한 구조지요."

서비스를 필요로 하는 대상이 있어야 하고, 그들의 필요욕구가 있어야 하며, 서로에게 합리적인 비용이 있어야 한다는, 김 원장의 '교육과 진료의 3원칙론'이다.

김 원장은 나아가 우리나라의 교육시스템이나 환자 진료시스템이 지나치게 일방적이고 불평등한 계약의 성격을 띠고 있다는 점에서 비슷한 처지에 놓여 있다는 데에 주목했다.

"일방적으로 하달받는 형식이 아니라 공부하고 싶고 진료받고 싶은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는 게 교육과 진료에 대한 저의 지론입니다."

그런 그에게 문득 충남대학교 총장의 '황당한 제의'가 들어왔다. 외국어교육원장을 맡아달라는 총장의 간곡한 제의를 몇 번을 거절하던 김 원장은 '그래 한번 해보자'며 감투를 썼다. 그리고 반 년이 흘렀다.

"처음 발령이 난 후 주변 사람들은 '이건 엽기다'라는 반응을 보였죠. 외국어교육원은 25년이나 된 기관으로 그동안 줄곧 영문과 교수가 원장을 맡아온 게 관행이었거든요. 한 과의 부속기관처럼 암묵적으로 약속돼 오던 게 어느 날 문득 어학과는 동떨어진 의대 교수가 원장으로 부임했으니 반발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오죽하면 영문과 교수들이 '그럼 우리가 병원장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겠어요.(웃음)"

그러나 시간이 약이고 결과가 면죄부라고, 김 원장이 일대 경영 혁신을 이룬 덕에 외국어교육원의 수익성이 올라가기 시작하자 인사발령을 둘러싼 잡음이 깨끗하게 해소됐다.

"처음에 와서 접한 장면이 학생들이 치른 모의토익 성적표를 나눠주는 장면이었어요. 성적이 뻔히 보이는 성적표를 그냥 줄세워서 나눠주는데 이건 아니다 싶었죠. 그날 바로 봉투를 만들고 라벨에 학과와 이름을 적어 붙이고, 성적 결과에 대한 충고를 넣었습니다. 학생들로부터의 반응은 무척 좋았습니다."

그렇게 작은 관행부터 하나하나 바꿔 나가자 예산구조에도 좋은 결과가 찾아오기 시작했고 목표 예산은 훌쩍 넘길 수 있었다고. 이제 남은 일은 좀더 탄탄한 재정자립을 꾀하는 일이라는 김 원장.

 

■ '남 다름'을 꿈꾸는 맏딸

김 원장은 연세대 의과대학을 졸업한 뒤 세브란스 병원 마취과에서 근무를 시작했다. 그 무렵 장애인을 돕는 봉사단체를 알게 돼 자연스럽게 장애인들과의 인연을 맺게 됐다. 재활의학을 택한 것도 장애인들에게 보다 실질적인 도움을 주고 싶어서였다. 인턴 시절 인연이 있던 전주 예수병원에서 재활의학과 레지던트를 시작했다. 미국 선교사였던 닥터 쇼우를 만난 것도 그 무렵.

"당시 재활의학을 전공한 의사가 많지 않았을 뿐더러 여자가 재활의학을 전공한 선례가 없었죠. 재활의학 1호 의사로서 충남대병원에 재활의학의 기초를 세우고 지역사회와 연계하기 시작했습니다. 닥터 쇼우는 제게 의학과 영어를 동시에 가르쳐준 좋은 스승이었죠."

재활의학의 남다른 길을 택한 그는 평소 교육에 대한 확고한 애정과 철학으로 충남의대에 '의학교육학교실'을 설립했다. 일방적이고 판에 박힌 교육과정을 불식시키고, 의학을 '가르치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제대로 걷지 못하는 장애인들을 위해 '보행훈련사 로봇'을 고안, 원자력 연구소·카이스트 등과 함께 로봇을 만들고 상용화시키는 데 적극 앞장섰다. 중간에 업체가 부도나는 바람에 상용화에 발목이 잡혀있긴 하지만 로봇이 이곳저곳에서 제역할을 할 수 있도록 끝까지 추진할 계획이다.

김 원장의 톡톡튀는 발상의 전환은 이밖에도 여러가지다. 머릿속에 전깃불이 켜지는 순간 주저하지 않고 감행하는 그는 진정 '용감한 맏딸'이지 싶었다.

 

▲ 외국어교육원 원장실 한쪽 벽면에는 직원들이 각자의 업무를 적은 메모들이 빼곡히 붙여져 있었다. 업무의 흐름을 한 눈에 파악, 전산화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한 김 교수의 아이디어다.

■ 경영인

인터뷰를 위해 처음 외국어교육원 원장실에 들어섰을 때 김 원장은 한 남자와 다과를 앞에 놓고 대화를 나누던 중이었다. 충남대 심리학과 교수인 그 남자는 기자에게 "저는 7개국어를 하고, 김 교수는 영어밖에 못 하는데 원장이 바뀐 것 같지 않냐"는 농담을 던지고 사라졌다.

그가 정말 7개국어를 하는지 알 수는 없지만, 오로지 영어실력 하나로 외국어교육원장 자리에 오른 김 원장의 '변'을 듣고 보니 사실 어학능력은 원장 자리와 별개의 문제라는 점을 알았다.

"외국어교육원은 행정기관입니다. 대학부속어학원인 만큼 교육상품을 잘 만들어내 재학생·교직원 뿐 아니라 지역사회 주민들에게도 호소할 수 있는 행정력을 갖춰야 하는 거죠. 어학능력보다 중요한 건 혁신적인 경영마인드가 아닐까 싶습니다."

'블루오션 전략' '좋은기업을 넘어 위대한 기업으로' 등 경영감각을 익히기 위해 경영서적을 주로 읽는다는 그는 1년 반 남은 임기동안의 계획만도 벅차다. 대학원생·인근 연구단지 간부급 인력 등을 위한 출장 강의 형식의 주문형 교육 수립, 낮 시간을 활용한 교육 프로그램 마련, 장애인을 위한 원어민 어학교육……. 헉헉, 숨이 차다.

그 숨찬 계획이 원장실 한쪽 벽면을 가득 장식하고 있었다. 포스트잇에 각 직원별 업무를 일일이 적어 구조별로 붙여 놓기도 했다. 국시원 의지보조기기사 분과 시험위원장을 맡으며 배운 노하우다.

내년 3월이면 외국어교육원이 정문 쪽 사옥으로 이전한다. 지역사회와 보다 가까워진 새 집에서 그는 의사로서, 경영인으로, 그리고 어디로 튈지 모르는 번뜩이는 아이디어로 다시 시선을 끌어모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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