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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옥스 판결 유감
바이옥스 판결 유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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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5.10.06 1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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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훈(재미의사/의학칼럼니스트)

미국 텍사스에서 59세 남자(E)가 관절염약 바이옥스를 복용해 심장병으로 급사했다는 이유로 제약사 머크를 상대로 제기한 민사재판은 초심에서 원고(사망자 측)가 승소했다.  

말썽이 난 바이옥스소송의 첫 케이스인 이번 판결에서는 원고(E의 미망인)에게 2억5300만 달러라는 엄청난 배상금이 언도됐다. 상소심에서 번복될 수도 있으나 만일 피고(제약사)가 패소할 경우 배상금은 텍사스의 CAP(의료과오보상금의 상한액)법에 따라 3000만 달러 이하로 줄어든다.

현재 전국적으로 바이옥스소송이 계류되고 있는 건수만 해도 4200건이나 되는데 만일 텍사스 케이스처럼 배심원들이 원고의 편만 들어준다면 머크사는 300억 달러라는 천문학적인 금액을 감당해야 하므로 회사의 파멸이라는 위기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원고는 남편의 죽음을 두고 "바이옥스가 아니었다면 죽지 않았다"고 주장했으나 E의 부검소견엔 진행된 동맥경화증이 있을 뿐, 관상동맥의 막힘(혈전)은 전혀 없다. 사망진단은 '심장부정맥'으로 인한 사망으로 돼 있다.

피고(머크사)측 증인으로 나선 병리학자는 "E의 부검소견은 바이옥스와 전혀 무관하다"고 증언했고, 바이옥스가 부정맥을 유발한다는 과학적 데이터도 없다고 했다.

그런데도 원고 변호인 T는 E가 심장병으로 사망했다고 강조하면서도 그에 대한 구체적인 증거를 제시하지 못했다. 그 대신 머크사가 소비자를 상대로 한 바이옥스의 과대광고 선전이라는 '비윤리적 행위'를 표적삼아 제약사에 불리한 모든 자료를 제시해서 매도함으로써 배심원의 감성에 호소했다. T변호사는 바이옥스 승인과정에서 FDA는 심장병 부작용에 대한 경고문구 부착을 원했으나 머크에서 저항했다는 기록을 공개, 피고측을 비난했다. 배심원을 감동시키는 특기가 있는 T변호사의 언변은 사회에서도 소문이 자자하다. 특히 이번 소송에서 T는 진실을 가려야 하는 법정을 마치 유명연사로 초대받은 장소인 양, 배심원을 상대로 철면피한 연출에 열중했다.

이에 비해 머크측 변호사는 원고에 대한 반대심문에서 집요하게 E미망인의 사적 문제, 이를테면 원고와 불편한 관계에 있는 E의 전처 자식과의 관계를 추궁해서 노출시키는 등 남편에 대한 애정보다는 돈을 위해서 소송을 제기했다는 인상을 배심원들에게 심어주려다가 오히려 반감을 샀다.

이번 소송에서 논쟁의 핵심은 "E의 사망이 과연 바이옥스와 직접 연관성이 있냐"는 것임에도 원고 변호사는 이미 세상에 널리 알려진 머크사의 과대광고를 물고 늘어져 천문학적인 보상금을 언도받았다.

민주적이라는 배심원제도는 자칫 잘못하면 지성적인 논리와 이성을 잃은 인민재판식으로 흐르게 된다. 특히 의료과오소송에서 환자 변호사들은 작전상 이러한 방향으로 유도하게 되며, 이에 따라 재판결과가 좌우된다. 배심원은 제소된 법원소재지의 거주자 가운데 100명을 차출, 그중 편견없어 보이는 12명을 선발해 구성한다. 사건과 무관한 중립적인 인물을 강조한 나머지 배심원들의 학식이나 논리적 판단능력 여부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판결이 배심원의 권한에 속함에 따라 변호과정에서 그들의 점수를 따는 일이 만사를 결정하게 된다.

사망한 E의 미망인에게 지불하라는 2억5300만 달러의 내역은 '제약사의 잘못으로 입은 손실' 보상금 2억2900만 달러와 미망인의 고통에 대한 위자료 2400만 달러이다.

사인이 확실치 않음에도 상식에 어긋난 꿈 같은 거액을 던져주는 무지막지한 판결은 배심원들의 지성을 의심케 하며, "옳소", "죽여라" 식의 인민재판을 방불케 한다.  

지금 이 시간에도 미국 TV에서는 "바이옥스 복용 병력이 있는 사람이 심장병에 걸렸으면 800번(무료전화)으로 문의해서 도움을 받으라"는 변호사들의 환자 낚기 광고가 한창이다.

신약은 인간의 난치병치료에 희망을 줄 뿐 만 아니라 우리의 삶의 질을 향상시킨다는 점에서 제약사는 인류의 복지증진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사실이지 만고불변의 명약 아스피린을 포함해서 모든 약품은 위험한 부작용이 있기 마련이다. 바이옥스는 관절염으로 고생하는 2000만 명의 고통을 덜어주었다. 그래서 2004년 9월 머크에서 바이옥스를 자진 철수했어도, 2005년 초 FDA는 바이옥스의 약효를 중요시하여 판매금지처분을 유보하도록 투표로 가결한 바 있다.  

심장병은 미국의 제1가는 살인자이며, 바이옥스를 복용했던 안했던 간에 미국인의 1/3은 심장병으로 죽는다.

약의 효과에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는 위험한 약물 부작용을 줄이기 위해, 장시일에 걸친 신중한 임상시험을 겪은 연후에 FDA에서 신약을 허가해야 한다는 학계의 의견이 우세해지고 있다. 이러한 근본적인 해결책을 모색하지 않고, 미디어를 통해 '자칭 바이옥스 피해자'를 모집하고, 재판에서 제약사의 불미한 과거사(과대 광고)를 들춰내 배심원으로 하여금 바로 그 불미한 귀신이 사람을 죽였다는 인민재판식 판결은 합리적인 사회에서 마땅히 기피해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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