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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2024-03-28 17:57 (목)
사랑과 행복 위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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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윤수 기자 kmatimes@kma.org
  • 승인 2000.10.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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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창수 교수의 정년, 소신진료의 여정들

62년 3월 인턴을 시작으로 의사생활의 첫 발을 내디딘 계명의대 강창수(정형외과)교수가 38년간 긴 봉직생활을 마쳤다.

한편으로는 홀가분하면서도 언제 끝날지 모를 의료사태를 생각하면, 후배들에게 얼굴을 들 수 없다고 괴로운 심경을 털어 놓는다.

“정확히 따져 군복무 3년을 빼면 35년간 대구 동산병원에서 인턴 생활을 시작으로 이 병원에 몸담아 왔습니다. 이제 몸은 떠나지만 `동산'은 내 마음속에 평생 남아 있을 것 같습니다.”

강 교수는 자신의 마음속 근무년수는 38년이라며 모든 것을 동산과 함께 해 왔다고 회고한다.

“제가 인턴을 시작할 당시 `정형외과'가 따로 없었습니다. 과가 생기면서 혼자 레지던트 1년생으로 출발했으니, 말하자면 `과'가 나이고, 내가 곧 `과'인 셈이죠. 이런 남다른 애착으로 지금까지 단 한번도 `과'와 `나'를 따로 따로 생각해 본 일이 없습니다.”

그는 38년이라는 세월은 어찌보면 금방 지나가는 순간이라며, 그동안 주위 동료들과 함께 지내 온 모든 것들이 `즐거운 그림자'였다고 말한다.

“그동안 정년은 남의 일로만 생각해 왔습니다. 막상 정년이 되고 보니 이것 저것 많은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정년은 무엇인가. 정년은 제게 있어서 지극히 유익한 양약일 수도 있고, 독한 쓴약이 될 수 있습니다. 나이가 들면서 고집과 요령을 피우는 나를 위해, `거치른 존재'인 줄 모르고 있는 나와 또 후배들을 위해 매우 좋은 양약이 될 수 있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숙련된 의술과 의사의 손을 갑자기 마비시키거나 경륜의 지혜와 슬기를 잘라 버리는 도끼와도 같아서 매우 쓴약이기도 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강 교수는 정년이 가져다 주는 의미는 인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하다며, 선진국 처럼 두가지 측면을 모두 고려할 수 있는 제도가 아쉽다는 느낌도 전했다.

“정년을 맞는 순간, 제게 다가온 느낌은 아쉬움과 동시에 상쾌함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아쉬움은 지금까지 못다 이룬 일이나 남은 힘과 능력을 어디에 쏟을까 하는 망설임이고, 상쾌함은 귀찮은 지시사항과 부여되는 잡무 그리고 춘·추계로 다가오는 논문작성의 부담에서 벗어났다는 것이죠.”

교수가 연구하고 논문 쓰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의무적인 중압감에서 벗어나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자유인'이 된 것은 아직도 꿈만 같다고 강 교수는 즐거워했다.

고관절 분야를 전공하던 강 교수는 인공고관절 대신에 자기관절 보존술인 비구회전 절골술, 각종 대퇴 근위부 절골술, 슬관절 절골술, 무지외반증 절골술 등을 진료의 철학 내지 진료의사의 종교처럼 시행하며 살아오다가 좀더 널리 보급하지 못한 채 손을 놓고 퇴임하게 된 것과 한국의 기술의학은 선진국수준에 이르렀지만 아직 개념 정립도 옳게 못하고 있는 인격의학의 기틀을 정립하지도 못하고 떠나는 것이 제일 아쉬움 점이라고 했다.

“38년간 봉직해 온 동산을 떠나면서 병원과 후배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소그룹의 장에서부터 큰 그룹의 장에 이르기까지 모든 관리자는 구성원들에게 `꿈(Vision)'을 제시해야 합니다. 구성원들이 그 비전을 보고 매달려 뛸 수 있는 피곤하지 않은 꿈 말이죠.”

강 교수는 지도자라면 그 구성원들로부터 조용히 듣고 배워야 하며 그렇게 했을 때 그들로부터 존중히 여김받는 지혜로운 지도자가 될 수 있다고 조언했다. 구성원들을 소중히 여기는 것이 관리자가 해야 할 가장 큰 몫이라는 것이다.

“꼭 지시받아야 움직이는 사람, 역할 근성의 사람, 자기 할일을 스스로 찾아서 하는 사람 등 매우 다양한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습니다. 자기를 지키는 것, 스스로 주인이 되는 것, 순간이라도 아부하지 말 것, 의젓할 것 등 38년간 의사생활을 하면서 스스로 지키려고 노력한 것들 입니다.”

“자기몫에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자가 결국 부자다”라고 말하는 강 교수는 순간 순간 힘들지만 정도를 걷는 것이 올바른 사회를 지키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제가 감사하게 생각하고 흔쾌하게 떠날 수 있는 이유는 주께서 우리에게 분부하신 사역을 다 마쳤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즉, 병든자를 고치며(Healing Ministry), 말씀을 전하고(Preaching Ministry), 제자들을 가르치는(Teaching Ministry) 일들을 순조롭게 마친 것에 대해 감사할 따름입니다. 제가 동산에서 일하기 시작하여 힘들 때 참고 이길 수 있었던 힘은 바로 이같은 사역이 주어졌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강 교수는 항상 기도하는 마음으로 학생들을 가르치고, 아픈 환자를 보살펴 왔으며, 나보다 더 어려운 이들을 생각하면서 어려움을 참아왔다고 말한다.

“40년 가까운 세월을 학생들 앞에 서면서 단순한 학문적 이론보다는 사랑으로 그들을 가르치려고 노력했으며, 환자를 보고 수술을 선택할 때는 `민망히 여김' 또는 `불쌍히 여김'의 원칙에서 시료선택을 했습니다. 과거보다는 경제적으로 눈부신 성장을 이룩했지만, 우리 주위에는 어렵고 가난한 이들이 많습니다. 모두가 따뜻한 사랑과 행복을 공유하기 위해서는 `베품'과 `이해'가 필요하다고 늘 생각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흘러간 세월이 마치 순식간에 지나간 그림자와도 같은 세월이었다고 회고하고 있는 그는 `내일은 또 내가 새 일을 행하리라'는 마음가짐으로 활기차게 생활할 것을 다짐한다. 특히 강 교수는 “38년이라는 긴 세월동안 환자가 누워 있는 침상 곁에서만 뛰어 왔으면서, 흰 침대위에 단 한번 누워본 경험 없이 건강하게 사명을 마치고 정년을 맞은 사실에 대해 한없는 축복으로 감사한다”고 겸손해 했다.

모든 것을 병원과 함께 해 온 그가 `동산의료원'을 떠나면서 마음 한켠에는 무겁게 짓 누르는 것이 있다. 바로 의약분업 등 잘못된 의료정책으로 인해 걷잡을 수 없이 번지고 있는 의료사태 때문이다.

환자의 건강을 위하고, 의사의 소신진료가 가능한 의료풍토가 조속히 정착되기를 바라면서 그는 캠퍼스에서 조용히 발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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