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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2024-03-28 17:57 (목)
[인터뷰] 이용주 교수 '醫師의 길 硏究의 길'
[인터뷰] 이용주 교수 '醫師의 길 硏究의 길'
  • 조명덕 기자 mdcho@kma.org
  • 승인 2000.09.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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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의사로서 기초를 전공해 40년의 교직생활을 마치고 정년에 이르기까지 음양으로 도와준 선후배·동료들에게 감사한 마음입니다. 커다란 연구업적을 남기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기는 하지만 그래도 기초를 전공한 여자의사로 정년을 맞은 것 자체로 큰 보람이라고 생각합니다.”

8월말 고려醫大에서 정년퇴임한 이용주(李容周·미생물학)교수는 열악한 연구환경 속에서도 나름대로 자기의 길을 꾸준히 걸어와 정년에 이르고 보니 다사다난했던 40년의 의대 교수생활이 새삼 아쉬우면서도 그 자체로 보람이라는 말을 강조했다.

“1976년 이호왕교수님 부임후 미생물학교실이 바이러스만 연구하는 분위기로 바뀌었고 이런 분위기속에서 제가 하고자 했던 `마이크플라스마'에 대한 연구는 제대로 할 수 없었습니다. 1979년 한탄바이러스를 발견한 이교수님은 세계적으로도 학술적 업적을 인정받으셨고 그처럼 훌륭한 스승을 모시게 된 것은 큰 행운이라고 생각합니다.”

`제자는 좋은 스승 밑에서 일하는 것이, 스승은 좋은 제자를 만나는 것이 평생의 기쁨'이라는 공자(孔子)의 말을 인용한 李교수는 훌륭한 스승 밑에서 제대로 연구하지 못한 것은 자신의 부덕때문이라고 밝혔다.

“이교수님이 저와 틀렸던 점 때문에 갈등이 많기는 했지만 오히려 그 때문에 많이 배울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또 그때는 젊은 시절이라 갈등도 더 했겠지요. 지금같은 생각을 가졌으면 훨씬 나았을 것이라는 아쉬움도 있습니다.”

이런 아쉬움때문에 `자기철학'이라는 것이 있어야 한다고 느꼈다는 李교수는 `수신제가(修身齊家)'를 강조하고 `참을 수 있으면 참고 자기 일에 최선을 다할 것'을 강조했다.

“1979년부터 2년간 덴마크의 올후스醫大 미생물학교실과 코펜하겐의 세럼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마이크플라스마'에 대해 본격적으로 공부한 李교수는 이를 바탕으로 한 나의 생각, 나의 아이디어로 인류에 공헌할 수 있는 연구논문을 발표하지 못한 것은 지금도 큰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청주고 졸업후 고려의대에 입학한 李교수는 미생물학을 통해 아직 해결하지 못한 질병의 원인을 규명하기 위한 연구에 전념하기 위해 여자로서는 힘든 선택이라고 할 수 있는 기초의학을 전공한 만큼 이런 아쉬움은 클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하지만 우리 미생물학교실의 동료 및 제자들이 모두 훌륭한 연구자로서 학술적 업적을 많이 쌓고 있어 흐뭇하고 감사할 따름입니다. 그저 맡은 일을 열심히 하다보면 재미가 생기고 재미가 생기면 더 열심히 하게 될 것이고 이런 과정에서 빛나는 업적이 저절로 생길 거라고 생각합니다.”

`자기가 하는 일을 열심히 하면 뭔가 이루어 질 것이라는 믿음과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 것'을 당부한 李교수는 종교를 믿지도 않고 무시하지도 않지만 항상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야 된다는 점을 거듭 강조했다.

정년퇴임을 맞으면서 그 흔한 `퇴임기념논문집'도 만들지 않고 거창한 퇴임식도 갖지 않은 李교수는 교실원들이 논문집 제작을 추진했으나 이를 거절하고 고려大 전체 퇴임식에만 참석했을 뿐 교실원들과의 조촐한 식사로 퇴임식을 대신했다.

“기념논문집을 만들 만큼 훌륭한 업적도 없고 그래서 퇴임식도 하지 않았습니다. 훌륭한 업적도 없는데 논문집을 만들거나 퇴임식을 한다는 것이 주위 사람들에게 부담이 될 수 도 있고 저에게도 쑥스러운 일이 될 거 같아서요. 그동안 저를 도와준 교실원들과 맛있고 즐겁게 식사할 수 있는 자리로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李교수는 원자력연구소에서 동위원소 생산을 맡아온 부군 김형국씨와의 사이에 1남 2녀을 두고 있다. 美UCLA에서 물리화학을 전공한 장남 우식씨는 이학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USC에서 연구활동을 하고 있으며 장녀 은식씨는 美컬럼버스大에서 물리학박사 학위를 받고 현재 삼성종합연구원에 재직하고 있다. 차녀 영식씨는 프랑스에서 입체디자인학교를 수료한 미술학도.

8월30일 열린 고려大 전체 정년교수퇴임식에 참석한 李교수는 `닥터지바고'의 내용을 인용하며 의사의 길, 인술의 길을 강조하며 퇴임사를 대신했다.

―병을 고치는 사람은 평범한 의사이며, 병을 고치면서 그 병자를 사랑할 줄 아는 의사는 고귀한 의사이다.

고귀한 의사를 만나게 되면 누구나 그의 신자가 된다.

병든 자를 구하려는 마음이 인술이라면 거기에는 질병으로 앓는 자만이 병자가 아니다.

사랑할 줄 모르는 인간이 있다면 그 이상의 병자는 없을 것이며, 지고한 인술의 손길은 여기까지 뻗쳐야 한다.

동료 여러분이여!

그대들은 그러한 인술을 몸소 실천하였으니 병자들의 뜨거운 가슴을 얻었고 죽은 뒤 무덤가에도 무수한 사람들이 꽃잎을 뿌릴 지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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