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께서는 경상대의대를 늦은 나이로 졸업하시고 부산 동의의료원에서 인턴 과정을 수료후 내과 전공의 수련과정 중이셨습니다.
같이 생활해온 우리에게 선생님께서 보여주신 모습은 조용한 성격에 빈틈없는 일처리와 따스한 미소에 담긴 정성어린 환자에 대한 배려, 그리고 지식에 대한 끊임없는 욕구는 우리들에게 본보기였습니다. 가정적으로는 두 딸의 아버지로서 쉬는 날에는 부산에서 고향 진주로 향하시던 선생님의 밝은 모습을 보아오던 우리로서는 이러한 현실이 도저히 믿어지지가 않습니다.
이미 집으로 부인에게 보내신 유서에 적으신 가족의 안위와 걱정 그리고 의사로서의 장래에 대한 절망과 한탄들, 그 무거운 짐을 우리와 나누지 않고서 그렇게 혼자서만 가슴에 담고서 이렇게 훌쩍 떠나 버리시니 우리는 선생님이 원망스러운 마음을 가눌 길이 없습니다.
선생님의 평소 타인에게 싫은 말 한마디도 못하시던 선생님이셨기에, 그렇게 환자에게 친절히 대해주시던 선생님이셨기에, 그다지도 가혹한 마음의 짐을 우리와 나누지 못하고 홀로 쓸쓸히 훌쩍 떠나버리신 선생님의 여린 마음을 우리는 잘 알기에 더욱 저희의 마음은 천갈래 만 갈래로 찢어집니다.
이제 선생님은 이 세상의 모든 번뇌에서 벗어나시지만 남아 있는 우리는 절망적인 이 땅의 의료현실에 좌절하는 의료인으로 살아야 하기에 선생님의 선택에 비난도 하지 못하고 슬픈 눈물만을 삭혀 봅니다.
이제 피안의 하늘나라에서 우리를 보고계실 선생님께 진심으로 삼가 명복을 빕니다.
2000년 9월 19일
부산 동의의료원 전공의협의회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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