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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아탑에 총 겨누는 교육부
상아탑에 총 겨누는 교육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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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5.06.09 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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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훈(재미의사/의학칼럼니스트)

■ 적반하장의 교육부

교육인적자원부에서 강압적으로 추진하는 '4+4년 의학전문대학원'(이하 의학대학원) 제도가 어떤 경위를 통해 이루어졌는지 궁금했다.

본래 상아탑은 교육부에 예속되는 것이 아니라, 대학이 교육부를 교육·지도하는 입장으로만 알고 있는 필자는 설마 대학전문가들로 구성된 정부자문기관에서 그러한 제도결정에 찬성했을리 만무하다고 믿었다.

그러던 중 최근 전국 의대에 대한 교육부의 야비하고도 위협적인 의학대학원 제도의 강요를 서울의대 교수단이 만장일치로 부결했다는 뉴스를 읽고 안심이 되었다.

젊고 소신 있는 왕규창 학장은 '침묵은 직무유기'라 전제하고 교육부가 제시하는 비겁한 당근과 공갈의 부당성을 논리적으로 반박했으니, 지식인의 양심과 학계의 자존심이 살아있음을 알려준다.  

왕 학장은 또한 신설의대를 포함한 교육여건이 비교적 열악한  대학에서 교육부에 협조하는 이유는 교육부의 유혹적인 혜택(당근)으로 큰 덕을 보기 때문이며, 양심상 반대했던 일부 의대도 교육부의 눈치를 보며 결국 학교이익 위주로 협조하고 있다고 부언했다.

한국은 부실의대의 과다한 신설로 인해 장차 의사과잉시대를 예고하고 있으나, 이 일은 의사를 사회주의 용병으로 만들려는 현 정부가 바라는 바일 것이다.

2001년도에 결정된 교육부의 의학대학원에 대해 필자는 의협신문 2002년 2월 14일자 32면에 의견을 피력한 바 있다.그리고 2002년 6월 11일 한국의과대학장협의회는 교육부의 방약무인(傍若無人)한 태도시정을 촉구하고, 의학대학원 수용에 앞서 선행되어야 할 조건, 예를 들어 동일한 의학교육 4년을 이수한 졸업생에게 동일한 학위수여가 마땅하다는 등의 당연한 5개 조건을 요구한 건의서를 제출했다.

1960년대 이후 미국의 많은 의과대학에서 고교 졸업 후 바로 의예과 학생이 되는 프로그램이 생겼으며, 이들은 본과(의대) 1년 수료 후 학사학위(Bachelor of Medicine, 의학사)를 별도로 수여받고, 의과대학 졸업 때는 모두가 동일한 학위(M.D.)를 받게 된다. 시카고의 노드웨스턴 의대는 현재 정원 160명 중 100명은 학사출신이고 60명은 한국의 의예과처럼 고교 졸업생의 수재를 선발해 3년간 기초교양학과를 이수한 후 자동적으로 의대에 진입하며, 이러한 의예과제도를 Honors Program(명예프로그램)이라 부른다.

미국에선 다른 분야 학문에서 박사학위(Ph.D)취득자가 의사가 되고자 새삼 의과대학에 지원하는 학생이 드물지 않으며, 이런 학생도 졸업하면 동일한 M.D.학위를 받는다. 동일한 의학코스를 이수했기에 당연한 일이다.  

학계의 건의를 무시하고 상아탑의 권위를 짓밟아온 교육부는 최근 서울의대 등 순종하지 않는 의과대학에 공갈 협박의 최후통첩을 보냈다가, 용기 있는 서울의대 교수들의 반대에 부딪쳤다.

이러한 사실을 알게 된 필자는 너무나 야만적인 교육부의 처사에 아연실색할 따름이다.

대학교수들의 책무는 정부에 무조건 협조하는 일이 아니며, 정부를 비판하고 지도하는데 있다. 교수직은 행정부의 국책고안자들(장관 등)을 교육시키는 존재인데도, 일개 부처수장이 명령조로 지시하다니 적반하장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지난해 교육부는 서울대에 한의대 설치를 강요하다가 젊은 총장에게 된서리를 맞았다. 우수한 우리민족에 어쩌다가 이처럼 홍위병이 조종하는 듯한 무지막지한 행태가 전개되고 있는지 모를 일이다.

중국과 싱가포르는 똑 같은 중국인 나라지만 체제와 지도자의 차이 때문에 중국의료는 세계 최하위인 반면, 싱가포르는 WHO가 인정한 최고 의료국가다. 지금 한국정부는 세계 최하위국가의 중의(中醫)를 모방하고, 의료일원제에 역행하는 국립한의대를 강행하려 하고 있다.  천년 이전의 전통의학(한의)과 현대의학을 동등하게 합친 것이 중국의학이며, 실질적으로는 이원제와 다를 바 없다.  

교육부 수장은 지금 부총리가 되어 있다. 교육부의 격상은 후진국 현상이고, 지금 선진국에선 교육부 폐지론이 대두되고 있다(필자 칼럼 31번, 2002년 12월 21일자 26면 참조).

무식한 지도자의 망상으로 추진되고 있는 시대역행적인 '한의학 세계화'가 현재 한국의학계를 위협하고 있는 것처럼, 의학대학원 문제도 마찬가지다.

군사정권하에서도 볼 수 없던 강권을 무슨 힘을 믿고 휘두르는지 모를 일이다.

5·16 쿠데타 때 군복에 권총을 찬 해병대출신 교육부장관이 백발 총장들 앞에서 협조를 호소하면서도 위협은 가하지 않았다. 즉 권총을 겨누지는 않았다. 군사정부에서 위세 당당한 청와대 경호실장 출신의 교육장관이 출현했어도 상아탑을 겨눈 경고문을 발송한 적은 없었다.

이제 민간정부에서 교육부를 격상시켜 그 수장으로 하여금 상아탑을 향해 총을 겨누고 있으니 어이없는 일이다.

위협당하는 한국지성의 지도층 '의과대학장협의회'의 위신이 말이 아니고, 아프리카 야만국에나 있을 법한 행위가 교육부에 의해 감행되고 있으니 문명국가의 체면에 관한 문제다.

이러한 불법행위에 대해 지성인의 양심으로 대처하는 용기 있는 의대교육자들을 필자는 존경해 마지않는다.   

 

■ 의학연구자 드문 8년제 졸업자  

교육부가 예측하듯 의학대학원제도(4+4제)가 되면 기초의학자와 의학연구가가 불어날 것이라는 주장은 억측에 불과하고, 실제는 그 반대라는 사실을 알리고자 한다.

연령이 찬 일반대학졸업자가 의학을 지원하는 계기는 생활이 보장되고 안정된 전문직(개원의)을 찾는데 있음은 하나의 상식이다. 의예과 출신 수재들이 졸업 후 교육연구에 종사하는 비율이 월등 높다는 사실은 서울의대와 미국통계(미국서 필자가 얻은 정보는 Northwestern의대 것임)가 이를 입증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들 4+4년제 출신에게 많은 기초의학자의 지원을 기대한다는 교육부의 생각은 크게 잘못된 것이다.

아마도 교육부 실무자와 그 수장은 4+4제도를 미국의 MD/PhD 코스로 착각했음직도 하다.

미국의 이름난 여러 의과대학엔 교수 등 의학자가 되고자 하는 연구지향성 학생을 대상으로 한 '의학자 양성프로그램'(Medical Scientist Training Program, MSTP)이 있다. 의대보다 2∼3년이 긴 의학연구과정까지 수료하면 MD/PhD 두 개 학위를 수여받으며, 이들에겐 학교 교수직이 보장된다. 그리고 이들 MSTP 학생 대부분은 국가(NIH) 장학금지원을 받고 있음은 물론이다.

국가적 견지에서 의학자 양성을 위해서는 연구교육 직책을 원하는 우수한 의학도를 선발해 국가에서 지원하는 길을 열어야 한다.

동일한 과정을 이수한 의대 졸업생에게 학위차별을 준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비웃을, 앞뒤가 맞지 않는 희극이다.

교육부는 하루빨리 상아탑을 겨눈 총을 거두고, 국민 앞에 사과하고 반성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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