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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2024-03-29 06:00 (금)
의학발전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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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송성철 기자 songster@kma.org
  • 승인 2000.08.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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Ⅱ. 의학연구의 특성 및 필요성

1. 의학연구는 삶의 질 향상의 기반
경제가 점차 발전함에 따라 국민들의 건강, 환경, 위생 등 삶의 질에 대한 욕구는 점점 증가하고 있다. 선진국들, 특히 유럽에서는 이미 이러한 국민복지 문제가 사회적인 현안이 된 지 오래이고, 최근 이른바 '제 3의 길 (The Third Way)'을 추구하는 정당들이 집권에 성공하면서 이에 대한 국가적인 관심은 더욱 더 증가하는 추세이다.

미국의 경우에도 의료시스템 문제 (medicare)가 대통령 선거의 중요 현안으로 등장할 정도로 건강을 비롯한 삶의 질 향상이 미국 사회에서 중요한 문제로 대두되어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21세기에는 선진경제 대국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고, 이에 따라 국민들의 삶의 질 향상에 대한 욕구는 더욱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선진국들은 이러한 국민적인 욕구를 반영하기 위하여 국가 연구개발비도 주로 공공복지부문에 많이 투자하고 있다. OECD 가입 선진국들의 연구개발비 투자의 사회 목적별 구성을 보면 보건, 환경, 농림수산 등의 공공복지 부문에 대한 투자가 산업개발에 대한 투자보다 많다. 이에 비해 아직도 우리나라는 산업개발에 대한 연구개발비의 투자가 상당히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연구의 목적이라는 측면에서 의학연구는 사업목적별 연구개발사업의 분류 중 대표적인 공공복지기술 연구분야에 속한다. 공공복지기술 부문 과학기술발전 장기계획에 따르면2 공공복지기술의 대표적인 5개 분야로 환경기술분야, 보건의료기술분야, 교통기술분야, 건설기술분야, 기상기술분야를 들고 있다.

'건강한 삶'이라는 것은 모든 사람들의 기본적인 욕구이기 때문에 보건의료기술의 핵심이 되는 의학연구는 이들 삶의 질 향상을 위한 연구들 중에서도 가장 핵심이 된다. 실제로 산학연 연구전문가 및 유관 정부부처 인사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삶의 질과 가장 직접적이고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이 '건강'인 것으로 밝혀진 바 있다.

굳이 이러한 설문조사를 예로 들지 않더라도 건강한 삶이라는 것이 누구에게나 가장 절실한 인생의 목표라는 것은 당연하게 받아들여질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의학연구는 삶의 질 향상을 위한 연구개발의 중추적인 위치를 차지한다.

OECD의 통계를 보면 선진국의 경우 건강증진이라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연구개발의 비중이 우리나라에 비해서 높은데, 특히 미국의 경우 국방관련 연구개발예산을 제외하고는 건강에 대한 연구개발 투자를 가장 많이 하고 있어 국가연구개발사업에서 건강관련 연구가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국민건강을 증진시키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연구개발을 필요로 한다. 국민건강을 위협하는 문제들은 고정된 것이 아니고, 시대에 따라 변화하고 새로운 문제들이 추가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 국민들의 현재 주요 사망원인은 1950년대와는 명확하게 달라서 만성퇴행성 질환과 암이 가장 중요한 사망원인으로 나타나고 있다.

또한 노인인구가 엄청나게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는 21세기에는 현재와는 달리 치매를 비롯한 노인성 질환으로 인한 사망이 급격하게 증가할 것이다. AIDS라는 질병은 1980년 이전에는 알려지지도 않았던 질병이었고, 말라리아 같은 질병은 이미 사라진 것으로 알려졌다가 최근 들어 다시 유행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현대의학의 난제인 암정복은 아직도 요원한 것으로 인식되고 있으며, 암연구의 성과들은 더욱 새로운 방향의 연구를 필요로 하고 있다. 이처럼 급격하게 변화하는 질병문제에 대처하는 최첨병으로서의 의학연구의 역할은 건강한 삶에 대한 욕구가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는 21세기에는 더욱 커질 것이다.

의학연구의 성과는 어린이에서부터 노인, 남자와 여자, 건강한 사람과 장애인 모두가 그 혜택을 받을 수 있고, 특정 산업의 발전이나, 특정 계층 혹은 특정 직업의 국민들에게 국한되지 않는다. 따라서 의학연구야말로 국가적인 차원에서 지원을 해야하는 연구분야라고 할 수 있다.

국가적인 지원이 필요한 또 하나의 이유로는 의학연구가 그 나라 국민들의 건강문제를 대상으로 하기 때문이다. 즉, 국가마다 질환의 발병 양상이 차이가 있으며, 같은 질병이라고 하더라도 유전적, 인종적인 차이로 인하여 질병의 경과 및 치료의 반응에서 많은 차이를 보이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예로 우리나라의 간염은 대부분 B형 간염바이러스에 의하여 발생하지만, 미국의 경우 술에 의한 간염이 훨씬 많다. 따라서 미국의 의학이 아무리 발전을 해도 우리나라 40대 남성의 사망률 1위를 차지하는 만성간질환을 해결하여 줄 수는 없을 것이다.

또한 서양인과 한국인은 기본적인 질병 지표들의 정상치가 다르기 때문에 외국의 결과들을 그대로 우리나라 국민들에게 적용할 수가 없다. 예를 들어 서양인의 혈중 콜레스테롤 수치는 한국인에 비해 월등히 높기 때문에 외국문헌에 있는 고콜레스테롤증 치료지침이 한국인에게는 적용될 수 없다.

이처럼 우리 국민들의 건강문제의 상당부분은 우리나라에서만이 해결할 수 있는 것들이기 때문에 국가적인 차원의 지원이 절실하게 필요하다.

요약하면 의학연구는 21세기에 더욱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는 삶의 질 향상에 대한 국민적 욕구를 충족시키는데에 가장 기반이 된다고 할 수 있다. 21세기에는 공공복지부문에 대한 연구개발투자가 확대되어야 하고, 이 중 건강증진을 목표로 하는 의학연구에 대한 지원이 특히 필요하다.

2. 국가경제적 측면에서의 의학연구의 필요성
흔히 의학연구는 국가경제발전에는 도움이 되지 못한다고 인식되고 있고, 이러한 이유로 그 동안 의학연구에 대한 지원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였다.

물론 의학연구는 반도체, 기계, 정보통신 등처럼 단기간에 가시적인 성과를 가져다주지는 못한다. 궁극적으로 의학연구의 성과는 '삶의 질' 향상이라는 거시적인 지표로 평가되어야 하지만, 의학연구의 경제적 측면의 기여도 또한 결코 무시할 수 없다.

국가경제가 발전하고 국민들의 건강한 삶에 대한 욕구가 증가되면서 국가적인 건강관련 지출도 계속 증가하고 있다. 이미 국내의 의료비 지출은 90년대 초반에 GDP 대비 5%를 초과하였고, 일부 선진국의 경우는 이미 10%를 초과하고 있다. 향후 노년층 인구가 점차 증가할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건강관련 지출도 더욱 증가할 것이다.

의학연구의 발전을 통한 새로운 의료기술들은 고가의 진단법 및 치료법 개발로 이어져 의료비의 상승에 상당 부분 기여한 것이 사실이고, 앞으로도 더욱 의료비 상승을 부추길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는 보다 발전된 의학연구의 성과만이 의료비 지출의 증가를 막을 수 있다.

의학연구의 성과로 각종 질병의 치료기술이 향상되어 과거에는 비용이 많이 드는 수술적 치료만이 가능했던 질병들을 생명과학을 이용한 첨단의 약물 혹은 유전자 치료법을 이용하여 치료하게 되고, 치료성적의 향상으로 입원기간을 감소시키며, 예방기술의 발전으로 유병률을 낮추고, 질병으로 인한 장애를 감소시킬 수 있게 되면 질병치료 및 간호에 소요되는 국가적 지출을 감소시킬 수 있다.

대표적인 예로서 최근 뇌졸중의 치료법으로 개발된 혈액섬유소원활성제 정주법(intravenous tissue plasminogen activator)으로 인해 뇌졸중 환자 1,000명당 평균 병원 내 치료비용은 170만 US$가 상승되었지만 이 치료로 인해 620만 US$의 재활 및 간호비용을 절감하여, 결과적으로는 450만 US$의 총 치료비용을 절감할 수 있었다.

이 치료법이 아직은 완전하지 않고 적용대상 환자의 범위가 많이 제한된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보다 발전된 치료법의 개발은 훨씬 더 큰 치료비용의 감소를 가져올 수 있다. 또한 의학연구의 발전으로 각종난치병이 정복되어 평균 수명이 증가되면 사망과 관련된 의료비용(사망하기 전 2년 동안 사용하는 의료비)이 감소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외에도 의학의 발전으로 인한 장애의 감소, 삶의 질 향상은 경제학적 통계지표에 나타나지 않는 '은연 중의 경제적인 이익'을 창출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국내에서 개발된 간염백신의 경우 매년 약 1조원 정도의 사회경제학적 비용(노동력, 시간, 교통, 간병 등의 간접비용 포함)을 감소시킨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 하나 중요하게 고려해야 하는 것은 국민건강의 증진으로 인한 노동생산성의 증가이다. 급성질환으로 인한 노동력 상실을 돈으로 환산하면 미국에서는 일년에 약 1,030억 US$에 해당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여기에 만성질환과 만성질환으로 인한 장애, 간호비용을 합친다면 어마어마한 경제적 손실이 발생하리라는 것을 쉽게 상상할 수 있다. 또한 의학의 발전으로 평균수명이 연장되면 노동이 가능한 인구의 수가 증가하여 국가경제 발전에 많은 보탬이 될 수 있다.

의학연구는 이처럼 여러 가지 사회적인 비용(의료비)의 감소, 노동력의 증가 등을 통해서 국가경제 발전에 이바지한다. 이러한 경제적 이익의 창출은 결코 단기간 내에는 이루어질 수 없고 이를 평가하기도 불가능하지만, 장기적인 안목에서 국가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결코 반도체, 기계, 정보통신 분야 등의 발전으로 인한 이익의 창출에 비하여 적다고 평가될 수 없다.

따라서 산업발전과 새로운 이익 창출을 통한 국가경제의 발전도 중요하지만, 의학연구의 발전을 통하여 건강관련 국가적 지출을 감소시키는 것도 국가경제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고 할 수 있다. 또 의학연구의 산업적인 활용의 측면까지 고려한다면, 의학연구가 국가경제발전에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일반적인 인식이 얼마나 근거없는 것인가를 알 수 있다.

3. 생명공학은 의학연구의 일부분
생명공학 산업은 참신하고 훌륭한 아이디어와 기술력을 가지고 고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는 측면에 있어서 21세기 지식기반산업의 대표적인 분야이다. 선진국들은 이미 수년 전부터 생명공학 산업을 차세대 핵심전략산업으로 인식하고 이를 발전시키기 위한 노력을 경주하고 있다.

최근 일본에서는 21세기를 대비한 생명공학 육성계획을 발표한 바 있으며, 일본의 대표적인 기업인 Hitachi사에서는 21세기 회사의 주력업종을 생명공학으로 할 것임을 천명한 바 있다. 미국의 경우 1993년에 이미 '생명공학연구보고서(The Biotechnology Research Initiative)'를 공표하여 정부차원의 연구개발계획을 수립한 바 있고, 독일은 이보다 앞선 1990년에 '생명공학 2000(Biotechnologie 2000)'을 발표하고 범부처적 연구지원사업을 벌이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1993년 '생명공학육성 기본계획(Biotech 2000)'을 확정하여 2007년까지 약 5조원 이상의 많은 연구비를 투자하기로 한 바 있다.

생명공학(Biotechnology)은 생명과학(Life Science)을 기반으로 그 성과를 산업적으로 활용하는 분야라고 넓게 정의할 수 있다. 생명과학은 생명현상을 규명하는 학문으로, 그 중 인간의 생명현상을 다루는 인간생명과학이 바로 의학이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의 생명현상은 생물학적인 변수에만 관계되지 않기 때문에 의학, 즉 인간생명과학은 단순한 생물학적 생명과학의 범위를 초월하여, 심리학, 사회과학, 공학, 물리학, 화학 등의 광범위한 학문들과 연계되어 있는 포괄적인 학문이다.

따라서 의학은 생명과학을 기반으로 하는 생명공학 산업발전의 필수적인 요소라고 할 수 있고, 역으로 생명공학의 궁극적인 목적인 질병퇴치, 건강증진, 복지추구를 위한 중요한 수단이 될 수도 있다.

생명공학을 이용하여 생산된 성공적인 제품들의 탄생 뒤에는 선행된 무수한 의학연구업적들의 축적이 있다. 즉, 뛰어난 의학연구의 업적들은 수많은 생명공학 제품을 탄생시킬 뿐 아니라, 심지어는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1984년 노벨의학상 수상자인 Niels K. Jerne 등은 단클론항체(monoclonal antibody)를 개발하여 수많은 새로운 진단시약을 탄생시켰으며, 항암면역치료라는 새로운 치료법의 개발을 가능하게 하였다. 1985년 수상자인 Michael S. Brown과 Joseph L. Goldstein은 현재 엄청난 시장을 형성하고 있는 콜레스테롤 억제약물의 개발을 가능하게 하였다.

최근 전 세계 의약품 시장을 석권하고 있는 비아그라 역시 의학연구의 빛나는 성과로 탄생한 약물이다. 비아그라는 Nitric Oxide (NO)라는 세포간 신호전달 물질을 이용하는데, 이를 처음 발견한 미국의 의학자 Robert F. Furchgott는 이 발견의 공로로 1998년 노벨의학상을 수상하였다. NO는 혈관확장작용을 가지기 때문에 처음에는 항고혈압 약물의 개발에 응용되었다.

그러나 이 약의 임상시험 도중 이 약을 복용한 환자들의 성기능이 향상된다는 것이 임상시험에 참여한 의학자들의 고찰에 의해 밝혀졌고, 이를 이용하여 성기능 항진제로 재개발되어 오늘날의 비아그라가 탄생하였다. 이처럼 의학연구는 신물질의 발견을 담당하고, 임상적인 연구를 통해 신물질의 작용기전 및 용도를 밝히는데 도움을 줄 수 있어, 의학연구의 발전은 생명공학 산업발전의 필수요소임을 알 수 있다.

생명공학산업에서 이용되는 방법들이나, 생명공학산업의 성과들은 인간의 건강과 질병 문제로 결집되어야 하는데, 이를 주도할 수 있는 연구가 바로 의학연구이다. 이러한 이유로 미국에서는 생명공학연구에 대한 지원을 건강문제를 주관하는 보건복지부(Department of Health & Human Service) 산하의 국립보건원(National Institute of Health)에서 주도하고 있고, 대규모 생명공학 실험실의 책임자는 의학자들이 담당하고 있다.

즉, 미국에서는 생명공학의 여러 가지 활용가치 중에서 난치성 질환의 치료를 통한 건강의 증진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고 있는 것이다. 이에 비하여 우리나라 생명공학육성기본계획에서는 생명공학의 궁극적인 필요성을 생물산업의 수출전략 산업화로 설정하고 단기적인 제품의 개발을 강조하여, 생명공학에 있어서의 의학연구의 중요성을 제대로 인식하고 못하고 있다.

최근 미국에서 생명공학 연구에 있어 비의학자들의 비중이 높아지고 있는 현상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환자의 문제점을 파악하고 생명공학의 연구방향을 환자 중심으로 이끌 수 있는 의학연구자(Medical Scientist)가 생명공학연구를 주도해야 한다는 미국 학계의 의견은 생명공학 분야에서 의학연구가 차지하는 위치와 역할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즉, 생명공학은 인간의 건강증진을 위한 의학연구의 일부분이며, 연구방향, 연구성과의 임상시험 및 적용 등 의학연구의 뒷받침이 반드시 필요한 학문분야라 할 수 있다.

의학연구, 특히 임상의학연구는 생명공학 실험실에서 나온 연구결과들이 실제 사람, 즉 환자에게 적용되는 과정의 가교 역할을 수행한다. 또한 생명공학의 연구로 탄생한 제품들은 반드시 정밀한 임상연구 혹은 시험을 거쳐 인체에 대한 안전성 및 유효성을 검증받아야만 한다.

최근 생명공학산업의 발전으로 생명공학연구의 산물인 신 의약품, 건강보조식품, 신 치료기기 및 기술 등, 건강관련 제품들이 홍수처럼 쏟아지고 있다. 이렇게 생산된 건강 제품들이 아무리 홍보와 포장을 통해 우수한 시장 경쟁력을 가진다고 하더라도, 실제 효과가 뚜렷하지 않아 개발의 노력이 수포로 돌아간 경우들이 많다.

최근 일본에서는 치매를 비롯한 뇌질환개선제로 시판되고 있던 이데베논(Idebenone), 염산인델록사진(Indeloxazine Hydrochloride), 프로펜토필린(Propentofylline), 니세르골린(Nicergoline) 등의 약물들의 임상적 유효성을 재평가하여 이들 약물의 허가를 모두 취소한 바 있다. 이들 약물들은 국내에서도 최근 4년 사이에 약 300억원 이상 판매된 약물들이었다.

이와 유사한 사례들은 최근 국내에서도 자주 발생하고 있어 국민들은 과연 이런 제품들이 얼마나 효과가 있는 것인지, 어떤 것들의 효과가 제대로 입증되어 있는 것인지 많은 의문을 품게 되었다. 이러한 생명공학산업 산물들의 효과는 의학적인 연구와 검증을 통해서만 그 효과를 검증받을 수 있으며, 의학적인 연구와 검증을 거치지 않은 것들은 오히려 국민 건강을 위협할 수 있다.

실험실 또는 동물실험에서 입증된 효과와 실험실에서 검증된 안전성이 인체에서도 그대로 재현된다는 보장이 결코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생명공학에서 의학연구의 중요성은 이러한 Evidence-based Research의 측면에서도 강조되어야 한다. 수준높은 의학연구, 특히 임상의학연구가 선행되어야만 생명공학의 산업적 성과들이 안전하고 효율적으로 국민들에게 돌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4. 의학연구의 성과
앞선 1-3절에서 의학연구의 다양한 측면에서의 필요성을 언급하였다. 굳이 이러한 종설 (種說)을 나열하지 않더라도, 그 동안의 의학연구 성과들의 예를 살펴보면 의학연구의 필요성에 대해 절로 수긍할 수 있을 것이다.

현대의학의 발전으로 인류는 수십년 전과 비교하여 매우 건강한 삶을 살고 있다. 현재는 너무나도 당연하게 여기고 있는 의료서비스들은 실제로 하나 하나가 수십년 동안 시행되어온 의학연구의 빛나는 성과들이다. 다음 몇 가지 의학연구의 성과를 간단히 살펴보도록 하겠다.

항생제의 개발은 인류 수명연장의 일등공신이라고 할 수 있다. 지금은 너무나도 당연하게 항생제를 사용하고 있지만, 항생제는 1930년 플레밍(Fleming)이라는 의학자의 집념어린 연구의 결실로 탄생되었다. 이후에도 계속된 새로운 항생제의 개발은 많은 미생물학자들의 세균의 성질규명 연구가 있었기에 가능하였다.

자신이 소아마비 백신을 접종받았는지 모르는 사람도 많을 것이지만, 대부분의 신생아는 생후 2개월에 소아마비 백신을 접종받고 있고, 이 백신이 없었다면 과거와 같은 소아마비의 창궐이 현재도 계속되고 있을 것이다.

이 소아마비 백신은 Sabin과 Salk라는 두 의학자의 50년간의 연구와 개량으로 개발되었다. 그 외에 결핵약의 개발, 천연두의 박멸 등은 빼 놓을 수 없는 의학연구의 빛나는 성과라고 할 수 있다.

지금은 인슐린을 사용할 수 없는 당뇨병 환자들을 상상하기도 어렵지만, 인슐린은 1970년대에 들어서야 개발이 가능했다. 인슐린은 생명공학기술을 이용하는 바이오의약품(Bio-pharmaceuticals) 중 가장 먼저 탄생한 것으로, 유전자 조작법의 발전을 토대로 박테리아를 이용한 유전자 재조합법을 이용하여 개발되었다 (Genetech & Eli-Lilly).

인슐린의 개발은 생명공학의 발전이 인류건강에 크게 이바지한 좋은 예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인슐린의 개발 이전에, 생체 내의 인슐린의 작용에 대한 연구 및 혈당 강하가 당뇨병에 미치는 영향 등에 관한 수많은 의학연구의 업적이 선행되었음은 물론이다.

인슐린의 개발로 인해 많은 당뇨병 환자들은 정상인처럼 생활할 수 있게 되었고, 당뇨로 인한 사망률을 크게 낮출 수 있었다. 또한 인슐린은 그 이후 성장호르몬, 조혈촉진제(Erythropoietin) 등의 바이오의약품의 개발에 많은 자극을 주었다.

흡연이 폐암의 주범이라는 사실은 초등학교 학생도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이러한 사실은 1960년대 영국 의학연구회의(Medical Research Council)의 대규모 임상연구를 통하여 처음 밝혀졌다. 이 발견은 서구 사회의 생활 습관을 크게 바꾸어 놓았고, 이후 흡연으로 인한 폐암의 발생을 크게 낮출 수 있었다.

그 밖에 흡연이 순환기 계통의 질환을 유발하고, 다른 여러 종양의 원인이 된다는 사실도 모두 대규모 임상연구를 통하여 밝혀진 사실이다. 이와 같은 사실을 바탕으로 금연의 중요성이 강조되기 시작하였으며, 금연을 통한 각종 질병의 예방 효과는 어떤 신기술을 이용한 예방효과보다도 큰 것으로 알려져 있다.

AIDS는 지금 모든 사람들이 다 알고 있는 질환이지만, 1980년대 초만 해도 의학교과서에는 등장하지도 않았던 질병이었다. AIDS는 이상한 임상증상을 보이는 환자들을 꾸준히 관찰하고 그 증상들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임상의사의 연구결과로 처음 세계에 알려지게 되었다.

이후 AIDS의 생물학적 발병기전, 즉 원인 바이러스의 특성 및 재생의 기작, 면역시스템 파괴의 기작 등에 관한 연구의 성과로서 현재 완전하지는 않지만 수명을 연장시킬 수 있는 치료약이 개발된 상태이며, 앞으로 효과적인 백신의 개발도 가능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AIDS에 대한 의학연구의 더 큰 공헌은 AIDS의 전파경로를 밝혀낸 임상의학적, 예방의학적인 연구에 있다. 동성애, 약물복용자, 수혈혈액 등을 통한 직접적인 감염으로 인해 AIDS가 전파된다는 사실이 규명되었고, 이를 통한 예방 및 교육은 서구사회에서의 AIDS 발생률을 크게 낮출 수 있었다.

AIDS 연구는 임상의학과 기초의학의 협력을 통한 연구가 효율적인 질병관리에 얼마나 큰 도움을 줄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좋은 예라고 할 수 있다.

장기이식술의 발전은 만성신장질환 환자, 만성간질환 환자, 심부전증 환자들에게 새 생명을 찾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주고 있다. 현재와 같은 이식술은 수많은 의학연구의 성과들이 축적되어 확립될 수 있었다.

1996년에 노벨의학상을 수상한 Peter C. Doherty와 Rolf M. Zinkernagel이 발견한 세포매개성 면역(cell-mediated immunity)의 규명을 통해서 안전한 이식수술의 이론적인 근거를 확립하였고, 이를 통해서 인체의 면역기능을 조절할 수 있는 약물을 개발할 수 있었다. 이 이후에도 수많은 외과의사들의 동물실험을 통한 수술 술기의 축적을 통해서 지금과 같은 수준의 장기이식수술이 가능해졌고, 현재도 보다 효율적인 장기이식 기술들이 계속 개발되고 있다.

또한 최근에는 동물조직을 이용한 인체 장기의 생산, 조직공학을 통한 인공장기의 생산 등 새로운 장기의 개발이 계속되고 있다. 즉, 단 한 번의 천재적인 아이디어보다는 많은 노력을 통해서 일구어낸 연구성과의 축적이 현재의 장기이식 기술을 확립하였던 것으로, 부단한 의학연구의 중요성을 일깨울 수 있는 좋은 사례이다.

국내 의학연구의 성과 중 간염백신의 개발은 큰 의미를 가진다. 간질환은 우리나라 40대 성인 남자 사망원인 중 가장 높은 빈도를 보이는 질환이다. 간염백신은 국내 의학자의 연구에 의해 탄생한 것으로 우리나라의 국민 건강 증진에 큰 기여를 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또한 간염백신의 개발은 매년 약 1조원 정도의 사회경제학적 비용을 감소시킨 것으로 추산되어, 의학연구의 경제적인 기여도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로 꼽을 수 있다. 간염은 우리나라의 풍토병이라고 불릴 수 있을 만큼 국내에서도 호발하는 질환으로, 간염백신 개발 사례는 국가별로 차별화된 의학연구 방향설정의 필요성을 보여준다.

영아 돌연사 증후군은 1살 미만 영아의 주된 사망원인인데, 아직까지도 뚜렷하지는 않지만, 1980년대 후반에서 1990년대 초반에 이루어졌던 대규모 임상연구를 통하여 수면시 엎드린 자세(prone position)가 사망과 관련이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를 바탕으로 한 교육 및 홍보활동으로 인하여 호주의 경우 약 8년만에 사망률이 반으로 감소하는 큰 성과를 거두었다. 영아 돌연사 증후군의 예는 임상의학적인 연구를 통한 예방이 국민 건강증진에 기여하는 바를 잘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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