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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aune 의 병원 박물관

Beaune 의 병원 박물관

  • Doctorsnews kmatimes@kma.org
  • 승인 2005.04.07 0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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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과 포도주 저장고와의 관계

중앙집권국가인 프랑스는 그 중심지인 파리에 대표적인 역사적 유적들이 많이 모여 있다. 의학도 마찬가지여서 파리에는 제 나름의 특색을 자랑하는 크고 작은 의학박물관들과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유서 깊은 병원들이 많다. 그러나 파리에 못지않게 각 지방에도 의학과 관련된 유적들이 많이 있다. 그 중에서도 꼭 가봐야할 곳이 바로 본(Beaune)이라는 도시에 있는 병원박물관이다.

이 박물관은 과거 병원으로 사용하던 건물을 그대로 보존하여 병원박물관으로 만든 것으로, 저자는 이 박물관을 어느 프랑스 여행안내책자를 통해 알게 됐다. 이 곳은 프랑스에 있으면서 꼭 가겠다고 벼르던 곳 중의 하나였는데 마침 주말에 시간이 있어 이 곳을 방문할 수 있었다. 먼저 역에 가서 본에 가는 기차표를 달라고 하니 역무원이 독일에 있는 본을 말하느냐고 되물어왔다. 그곳은 프랑스 국내선 기차표를 파는 창구였기 때문이다. 독일에 있는 본이 아니라 프랑스에 있는 본이라며 종이에 써주자 그제야 "아! 본-" 하며 길게 읽는다. 단모음의 '본(Bonn)'과 장모음의 '본- (Beaune)'은 그네들 기준에서는 분명 다른 단어였다. 그러나 모음의 장음과 단음의 구별에 민감하지 못한 한국인에게는 이 구별이 쉽지 않다.

어쨌든 그렇게 표를 사서 기차에 올랐다. 파리의 동역에서 기차로 2시간쯤 달린 후에 본에 도착했다. 본은 작은 도시였다. 기차역에서 내려 시내 쪽으로 걸어 내려가다 보니 구 시가지를 둘러싸고 있는 옛 성곽을 볼 수 있었다. 성곽을 지나 시내로 접어들어서니 옛날 그대로의 시가지가 아기자기하게 펼쳐져 있다. 목적지는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왜냐하면 전통적으로 프랑스 도시의 한 가운데는 그 도시의 대표적인 큰 성당이 자리 잡고 있고 그 옆에는 대개 그 성당에서 운영하는 병원이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전통적으로 중세기에 병원과 교회, 다시 말해 의료와 종교가 얼마나 밀접한 관계에 있었는가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이다. 병원 입구에는 '1443'이라는 숫자가 새겨져 있어 이 병원의 역사를 말해준다. 이 곳은 약 20년 전까지만 해도 병원으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그 이후 어떤 연유로 이 병원 전체를 박물관으로 만들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렇게 한 것은 문화적으로도 훌륭한 결정이었으며 이곳에 돈을 내고 들어오는 방문객들의 수를 봐도 경제적으로 결코 손해가 되는 결정은 아니었던 것 같다.

먼저 병원에 들어서면 큰 홀이 있고 그 홀의 양편에 병상이 일렬로 배열돼 있다. '아! 기본적으로 병원은 이런 공간이었구나' 하는 느낌이 든다. 원래 중세기의 병원은 가난하고 병든 자들을 보살펴주는 자선기관이었다. 병원은 요즘처럼 치료의 공간이 아니라 돌봄의 공간이었던 것이다. 1인실이니 2인실이니 하는 것은 현대적 개념이고 과거에는 이처럼 넓은 공간에 아픈 사람들이 모두 모여 있었던 것이다.

침상에 가까이 다가가 보니 여러 개의 나무상자가 연결된 형상으로 침상이 배치되어 있다. 실물 크기의 인형도 있는데 수녀복을 입고 환자를 돌보고 있는 모습이 재현돼 있다. 기본적으로 병원은 종교 기관이었고 따라서 수녀들이 주로 환자를 돌봤다. 박애심으로 가득한 수녀들은 훌륭한 의료인력이었을 것이다.

홀의 한쪽 끝에는 미사를 드리는 제단이 마련되어 있고 스테인드 글라스며 성화도 여러 장 붙어있다. 전체적으로 보면 종교적인 냄새가 물씬 풍기는 분위기이다. 이어진 건물도 마찬가지였다. 그곳은 좁은 방에 짜임새 있게 여러 병상이 배치되어 있고 주변 천정과 벽에는 각종 성화가 가득하다. 그 옆에는 이 병원의 주방과 약국이 옛날 그대로 재현되어 있어 병원의 운영상황을 아는 데 도움을 준다. 마당으로 나와 보니 병원 전체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온다. 병원 건물이 사방을 다 둘러싸고 있고 마당이 건물 한가운데 있는 구조였다. 알록달록한 건물 지붕 기와색깔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병원을 나와 시내를 어슬렁거리다 보니 포도주 지하저장고가 시내 곳곳에 있다. 이러한 포도주 저장고는 입장료만 내고 들어가면 저장고에 안에 있는 각종 포도주를 마음대로 시음할 수 있다. 원래 이 본이라는 도시는 부르고뉴 지방에 속하는데 부르고뉴 지방은 보르도와 함께 프랑스의 포도주 산지로 유명한 곳이다. 어느 곳으로 갈까 하다가 들은 바가 있어 병원에 부속된 포도주 저장고에 들어가 보았다. 병원에 웬 포도주 저장고냐고 의아하게 생각할지 모르겠으나 병원에 포도주 저장고가 있게 된 유래가 있다. 옛날 이 지역에 살던 유지 한 사람이 넓은 포도밭을 병원에 기부했는데 그것은 포도밭에서 나오는 수익으로 병원의 환자를 돌보는데 써달라는 의도였다. 그 이후 이 병원에서는 포도밭을 가꾸어 포도주를 만들었고 그 포도주를 판 수익금으로 병원을 계속 운영하며 병들고 아픈 사람들을 치료해줄 수 있었다고 한다. 지금도 매년 한 차례씩 이 병원의 마당에서 포도주 경매행사가 열리는데 유명한 볼거리로 자리 잡아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보기 위해 찾아온다고 한다.

병원에 부속된 포도주 저장고는 오랜 역사를 말해주듯 수도원으로 쓰였음직한 고색창연한 건물에 자리잡고 있었다. 화려하진 않지만 아름답게 가꾸어진 작은 정원을 지나면 저장고로 들어가는 입구에 이른다. 이 입구에서 입장료를 내면 포도주 시음용의 작은 잔을 준다. 그 잔을 받아들고 지하로 향하는 통로를 따라 내려가면 마침내 포도주가 저장된 지하실에 이른다. 말이 지하실이지 사방으로 통로가 나있고 그 통로의 이쪽저쪽에 방이 연결되어 있는 지하의 작은 집이다.

통로 양 측면으로는 커다란 포도주 통들이 줄줄이 늘어서 있다. 그리고 통로의 중간 중간과 각 방 가운데 자리를 만들어 시음을 할 수 있도록 여러 종류의 포도주를 놓아두었다. 이 방 저 방을 돌아다니며 여러 종류의 포도주를 마셨는데 맛을 알 것도 같고 모를 것도 같았다. 누구 말에 의하면 포도주를 한 1000병쯤 마시면 포도주 맛을 좀 알 수 있다고 하는데, 그동안 마신 포도주를 다 합해봐야 거기에 턱없이 못 미치고 또 그렇게 마시다가는 1000병이 되기도 전에 알콜 중독이 될 것 같다.

여기저기서 홀짝이며 마신 포도주 덕분에 얼굴이 상기되어 지상으로 올라오니 이 지역에서 생산되는 상품을 파는 가게와 연결되어 있다.

이 가게에는 여기서 생산한 포도주를 비롯해, 각종 소스(부르고뉴 지방은 프랑스에서 식도락으로 유명한 곳이며 본과 가까이 있는 도시인 디종은 특히 품질 좋은 겨자소스의 산지로 이름 높다)와 과자 등을 판다.

포도주를 사고 싶었지만 동네 수퍼에서 보던 포도주보다 훨씬 비싸서 사지는 못하고 대신 작고 예쁜 사탕 한 상자를 사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그렇지만 왔던 길을 따라 역으로 가는 발걸음은 가벼웠다. 오랫동안 벼르던 곳을 마침내 방문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반나절의 짧은 여행에서 얻은 것이 무엇보다도 컸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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