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방]고등법원 의료전담재판부
[탐방]고등법원 의료전담재판부
  • 이현식 기자 hslee03@kma.org
  • 승인 2005.03.25 10: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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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 관련 소송에 대한 법원의 판결을 접하다 보면 의료계 시각에서 볼 때 아쉬운 경우가 종종 있다. 가장 대표적인 판례는 환자 가족의 요구로 퇴원을 허용한 의사에게 대법원이 책임을 물었던 '보라매병원 사건' 판결이라고 하겠다. 최근 농약을 마시고 자살을 시도한 환자가 위세척을 거부한 데 대해 '결박해서라도 치료했어야 한다'며 병원에 책임을 물은 대법원 판결도 그 중 하나다.

지난 18일 대법원 공보관실의 소개를 받아 서울고등법원 제17민사부(재판장 구욱서 부장판사)를 방문했다. 이곳에서 1년 넘게 의료 관련 재판을 맡아온 예지희 판사를 만나 의료전담재판부에 관한 설명을 들어봤다.

대법원 의료전담 대법관·연구관 아직 없어

법원 가운데 의료를 전담하는 별도의 부를 갖춘 최고 상위기관은 서울고등법원으로 현재 제17민사부와 제9민사부 등 2개의 의료전담재판부를 두고 있다고 한다. 대법원에는 의료를 전담하는 대법관이 따로 없고, 연구관 중에도 의료가 아직 전문분야로 지정되지 않았다.

예지희 판사는 "서울고등법원 의료전담재판부에 2004년 2월 18일자로 발령받았습니다. 전에는 서울중앙지법 민사 단독으로 있었죠"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재판부는 부장판사와 좌·우 배석판사, 그리고 사법연수원을 졸업한 후 2년까지 하게 되는 예비판사로 구성돼 있었다. 배석판사는 경력 10년이 넘는 판사들이 온다고 한다. 예 판사는 이곳 예비판사가 의사라며 소개해주었다. 알아 봤더니 서울의대를 졸업하고 서울대병원에서 인턴까지 수료한 문현호 판사였다.

한 재판부에서 근무하는 기간은 부장판사는 2년, 배석판사는 1년 단위라고 한다. 예 판사는 "우리 부의 경우 부장판사님은 2년 넘게 있었고, 배석판사인 저는 원래 1년 해야 하는데, 조금 더 하고 있습니다"고 밝혔다.

사실관계는 기록감정·사실조회 촉탁, 의협·병원에 의뢰

의사가 아닌 법관들이 의료 소송을 맡으면 사실관계 파악을 어떻게 할까 궁금했다. "우선 기록감정이나 사실조회 촉탁에 의한 의사들의 보고서를 봅니다. 촉탁은 대한의사협회나 병원에 보내죠. 예를 들어 사실조회 촉탁을 보내면 의협에서 선정한 감정인이 자료를 보내옵니다. 그 다음으로 전문서적을 참조합니다. 해리슨 내과학 교과서나 산과학·정형외과 책 등 관련 분야 전문서적이 저희 방에 구비돼 있습니다. 또 주변 친지들의 도움을 받거나 인터넷 검색을 하기도 합니다."

가장 많이 맡게 되는 재판 유형은 출산 문제. "출산 시 오는 태아곤란증이나 산모에 오는 응급상황 등이죠. 그렇지만 사건의 구체적인 형태는 매우 다양하고, 결과도 개별 건 마다 다릅니다."

의료 사건을 맡게 되는 법관들의 반응을 묻자 예지희 판사는 "사건에 대한 선호도는 없습니다. 의료 사건은 어려운 사건이 많고 예민한데다 검토해야 할 기록이 많기는 합니다. 다른 의사가 해석한 것을 보지만, 직접 진료기록 원본도 보기 때문에 일단 2번을 보게 되죠"라고 답했다.

현안에 대한 질문으로 들어갔다. 의사협회에서는 의료분쟁조정제도와 관련해 필요적 조정전치주의가 도입돼야 한다는 입장이라고 설명했다. 예 판사는 이에 대해선 잘 알지 못한다고 전제하고  "일반적인 '필요적 조정전치주의'는 법원에서 합의를 이루는 장을 제공하는 겁니다. 이 제도는 소를 제기하면 당사자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조정절차를 거치도록 하는 것입니다. (시민단체에서 반대한다고 말하자)조정은 합의가 돼야 하는데, 합의가 안 되면 재판만 지연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일 겁니다. 재판만 지연시키는 효과라면 문제가 있겠죠. 저산소증을 앓거나 재활 등 매일 치료를 해야 하는 환자의 경우 돈이 많이 드니까요"라고 말했다.

현재 한의사의 CT 사용 문제와 관련한 항소심이 서울고등법원에서 진행중이라며 의견을 묻자, 그 문제는 자신이 답할 수 있는 성질이 아니라며 조심스런 반응을 보였다.

의료사고 원인, 과잉진료보다 과소진료 유념 당부

일선에서 1년 넘게 의료 관련 재판을 담당한 판사의 입장에서 의료계에 당부하고 싶은 말을 부탁하자 "의료 현실은 안타깝지만, 할 수 있는 건 다 해보는 게 좋지 않나 생각합니다. 물론 스테로이드를 과다하게 사용하는 등 과잉진료로 인한 사건도 있지만, 해야 하는데 안 해서 생긴 사건이 대부분이다"고 말했다. 이어 "판사의 경우 민사는 재산, 형사는 생명과 자유를 다루는 것인데 의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의사에게는 순간의 찰나에 벌어지는 일이고 버겁고 힘겹게 느껴지는 일이겠죠. 참 어려운 일인 것은 압니다. 환자에게는 일생에 한 번 있는 일이지만, 의사에겐 루틴한 일이죠. 하지만 의사들은 이런 사정을 잘 알면서도 외로운 길을 각오하고 의사라는 직업을 선택한 분들 입니다"고 강조했다.

예 판사는 마지막으로 "진료기록 작성에 힘써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종합병원은 잘 되어 있지만 개인의원의 경우에는 아직도 매우 부실합니다. 진료기록의 부실은 행정관련 제재 등 처벌이 따르고 민사 사건에서도 불이익이 돌아올 수 있습니다"라고 당부했다.

예지희 판사는 1990년 사법시험에 합격, 1993년 3월 서울중앙지법을 시작으로 대구지방법원·인천지방법원 부천지원·서울중앙지방법원 등을 거쳐 현재 서울고등법원 의료전담재판부에 근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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