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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2024-03-28 17:57 (목)
"개원하고 있는 김 원장이 아닙니다"
"개원하고 있는 김 원장이 아닙니다"
  • 최승원 기자 choisw@kma.org
  • 승인 2005.03.21 1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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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주민 시설 '하나의원' 김원장 공보의

  간단한 인사만 나눈 후 한참을 서서 그를 기다려야만 했다. 내가 도착하기 불과 몇분 전 교육생들간에 일어난 폭행사고를 수습하느라 그와 통성명할 기회를 놓쳐 버렸기 때문이었다.
  얼추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교육생은 눈 아래 주먹만한 거즈를 댄 채 상처부위 아래를 피묻은 손등으로 닦아내며 연신 분이 풀리지 않는지 씩씩거리고 있었다. 그는 그런 교육생을 치료하며 마치 어린아이를 다루듯 그의 풀리지 않는 분을 다둑거려 주고 있었다. 꽤나 능숙하게….
  나는 그런 그의 모습을 보면서 그가 1차 의료의로서 꽤나 훌륭한 자질을 갖췄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 하지만 내가 그가 의사가 된 것은 적어도 절반은 운명이라고 생각하게 된 것은 그가 봉사하는 것에서 무한한 기쁨을 느낀다고 말했기 때문은 아니었다.
  또한 환자의 말을 주의깊게 들어주고 자근자근 환자의 궁금증을 씹어주는 그런 타입의 의사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만도 아니다. 좀 생뚱맞게 들릴지 몰라도 그의 이름이 '김원장'이었기 때문이다. 교수가 되서 학교에 남던 봉직의가 돼 병원에서 근무를 하건 그는 언제나 김 원장일테고 왠지 그런 그의 이름에서 나이 지긋한 동네 주치의같은 이미지를 받았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정서 불안정 경계 눈초리에 안타까움도…

'가급' 보완시설에 속하는 하나원에서 김 공보의를 인터뷰하기 위해 거쳐야 하는 관문은 꽤나 많았다. 하나원의 입구는 철문으로 봉쇄되어 있었고 건물 곳곳에는 폐쇄회로 TV가 설치돼 있었다. 입구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딱딱한 출입검사를 거쳐야 했는데 그 중 요즘 개폐 논란이 뜨거운 '국가보안법' 준수서약 같은 것도 해야했다.

99년 개원한 하나원의 공식명칭은 통일부 '북한이탈주민 정착지원사무소'. 국가가 '특별관리 대상자'로 선정한 사람을 제외하면 한국에 온 모든 '북한 이탈 주민'은 관계기관 합동심문 과정을 거쳐 2만여평의 하나원에 입소하고 8주간의 교육 끝에 주민등록번호를 부여받는다. 즉 하나원은 탈북자들에게는 한국인으로서 공식적으로 태어나는 장소인 셈이다. 대략 한 기수가 90명, 총 400여명을 수용할 수 있지만 최근 탈북자들의 입국 러시로 현재 120명이 더 들어와 있는 상태. 하지만 이런 하나원에 변변한 의료시설과 의사가 상주하게 된 하나의원이 설립된 것은 불과 몇개월전. 김원장은 4명의 한의사와 치과의사 등과 함께 초대 하나의원의 구성원이 됐다.

"날씨도 덥고 갑자기 늘어난 교육생들로 인해 요즘 부쩍 폭행사고가 잦아지고 있어요." 엉겹껄에 첫인사를 생략한 우리는 좀전에 일어난 폭력사고에 대한 얘기로 자연스레 첫 인사를 대신했다. 그는 대부분의 교육생(그는 탈북자라는 말을 교육생들이 싫어한다며 교육생이라고 지칭했다.)들은 중국이나 제3국을 거쳐 들어오며 어려운 고비를 숱하게 넘겼기 때문에 정서적으로 불안정한 경우가 많다며 이로인해 교육생들을 처음 진료했을 때 받았던 안타까운 느낌을 털어놨다. "처음 교육생들을 대했을때 느낀 것은 경계의 눈초리였어요. 진료를 위해 차트를 작성할때도 내가 무엇을 적는지 끊임없이 경계를 늦추지 않는 모습을 보고 그들이 이곳에 오기까지 겪은 상황들을 미루어 짐작하게 됐습니다."

■ "응급환자 발견 적절한 처치했을 때 보람"

김 공보의가 말하는 교육생들의 상태는 전체적으로 만성질환 하나씩은 꼭 가지고 있고 산부인과 또는 정신과적 도움을 필요로 하는 경우가 태반이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아직 이들에게 충분한 의료지원을 제공하지 못하는 것이 못내 아쉽다. '한국누가회(기독의사연합회)'가 통일부에 하나의원 설립을 건의한 것이 받아들여지며 99년 간호사 1명이 운영하던 건강관리실이 하나의원으로 설립된 것이 위안이라면 위안이다.

하지만 설립초기다 보니 아직 손가야할 곳이 한두군데가 아니다. 우선 의원급으로 세팅하기 위한 지원을 요청하고 환자들의 질병정도에 따라 후속조치를 취하는 것이 여간 더디고 경직된 게 아니란다. 특히 신원조회를 받기 위해 국정원에 있을 당시 만들어진 교육생들의 의료차트는 의료차트로 부르기 민망할 정도다. 초기 조사과정에서 환자가 발생하면 국군수도통합병원으로 이송돼 진료도 받게 되는데 여기서 발생한 환자 진료자료들도 공유가 되지 않아 답답한 심정이란다.

그러다보니 하나원으로 이송된 환자는 전부 처음부터 다시 진료카드를 작성해야 하고 만성질환자나 중증질환자가 그 과정에서 꽤 발견돼 외부 의료기관에 후송하고 검사 의뢰하면 하루가 모자랄 지경이다. 통일부나 하나원 관계자들은 이런 김 공보의의 일과를 보며 "의사가 오면 의료비용이 줄어들줄 알았는데 오히려 늘어났다"는 농담같은 진담을 던지고는 한단다.

그러나 이런 과정에서 응급환자를 사전에 발견하고 이에 대한 적절한 처치를 행했을때의 보람은 한층 커질 수 밖에 없나 보다. 몇일전 폐경기증후군을 호소하는 한 50대 환자의 '심장판막우종'을 발견해 인근 대학병원으로 이송, 목숨을 구한 것이 가장 기억에 남는 환자란다.

■ 탈북자 의료지원 센터 건립됐으면…

한국누가회 회원으로 북한선교와 탈북자 지원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이 인연이 돼 하나의원 근무를 지원하게 됐다는 그는 그러나 최근들어 탈북자들의 문제에 대해 깊은 고민에 빠졌다. 예전부터 의료봉사로 탈북자 무료진료를 해봤지만 정작 본격적으로 탈북자 문제에 부딪치다 보니 탈북자 문제의 심각성이 피부로 확 다가오더라는 말이다. 한평생을 공산주의 체제에서 살다 자본주의 체제에 내동댕이쳐진 탈북자들은 8주간 하나원에서 받은 교육이 자본주의 체제에서 살아갈 모든 밑천이고 이렇다보니 적응하지 못하는 탈북자들이 다수 생길수 밖에 없다는 거다.

 "사실 탈북자들이 밖으로 나갔을때 부터 그들에 대한 진정한 지원이 시작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사회는 아직 탈북자들을 받아들일 자세가 되어 있지 않은 것 같습니다. 최소 의사로서 이들에게 의료적인 지원을 해줄 수 있는 밑바탕이 마련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김 공보의는 그 구체적인 방안으로 탈북자들의 의료지원을 위한 센터건립 등을 염두해 두고 있다.

봉사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아 의사가 좋다는 김 공보의는 그러나 정작 의원을 운영하는 '김 원장'이 되기는 힘들 것 같다. 왠지 개업의로서 잘할 자신이 없기 때문이란다. 하지만 하나의원에서의 경험으로 생각지도 않게 탈북자와 인연을 맺으며 북한의료체계와 북한의료 상황 등의 관심이 자연스럽게 생겼단다. 그래서 막연히 북한의료와 관련된 분야에서 꼭 필요한 역할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다.

이럭저럭 김 공보의를 거쳐 간 탈북자만도 수백명. 어느날 안면도 있고 이런저럭 북한 사정도 쉽게 접할 수 있는 반 북한통이 되어 있지 않겠느냐며 웃는다. 김 공보의는 하나원 생활을 하며 부쩍 바쁜 나날을 보내게 됐다.누구는 나름대로 의사생활에서 여유를 부릴 수 있는 공보의 시절을 잃어 버렸다고 말하지만 바쁜 나날속에서도 틈틈히 연애도 하고 올해 말 결혼도 계획하고 있다. 데이트할 시간이 있겠느냐는 우려에 때때로 여자친구가 투정을 부리기도 하지만 자기는 여자친구를 강하게 키울거란다.

김 공보의와의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문득 졸병시절 신병교육대에서 만난 군의관 생각이 났다. 그저 낯설기 만한 신병교육대에서 긴머리에 복장도 매우 불량했던 그 군의관은 우리 신병들에게 인기였다. 아마 살벌한 신병교육대에서 유일하게 빠진 존재였기 때문이었을 거다.

나는 8주간의 교육을 끝마치고 낯설기만한 자본주의 세상으로 나가는 교육생들의 심정을 생각해 봤다. 그들 역시 내가 신병교육대에서 느꼈음직한 불안감보다 더한 불안감을 느끼고 있을 것이고 그런 교육생들에게 김 공보의는 좋은 위안이 돼 줄 듯 싶었다. 그 역시 폐쇄회로 TV나 하나원의 높은 담에서는 느낄 수 없는 먼가 특별한 것을 가지고 있다고 느껴졌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얘기하면 그 때 그 군의관이나 김 공보의는 확실히 빠졌다. 근데 그게 교육생들에게는 위안이 되는 것이다. 그때는 그런 게 위안이 되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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