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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2024-03-28 17:57 (목)
"감성으로 대화해야 진짜 의사죠"
"감성으로 대화해야 진짜 의사죠"
  • 김혜은 기자 khe@kma.org
  • 승인 2005.03.21 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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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어린이 프로그램 MC 정태섭 교수

  넥타이부터 남다르다. 반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이 그려진 푸른 넥타이에서 남다른 취향과 열정이 묻어난다.
  정태섭 교수(연세의대 영상의학과)는 한우물만 파는 '우직형'이라기보다는 여러 우물을 파는 '팔방미인형'에 가깝다. 천체관측, 화폐수집, 알공예, 발명, 옛날 편지 모음…. 하나만 가지기에도 만만찮을 다양한 취미를 가졌다. 지난 해부터는 어린이 과학프로그램 MC를 맡는가하면 새화폐에 과학자 장영실의 얼굴을 모시자는 운동의 선두에 서있기도 하다.
  그러나 의료 아닌 여러 영역을 넘나드는 그의 색다른 활동을 유기적으로 묶는 그만의 명확한 지론은 있는 듯하다. 무엇이 그를 용수철처럼 움직이게 만드는 동력일까.

▲ 가족 두개골 사진

■ 의사도 과학자다

정 교수는 어릴 적부터 공학도에 가까웠다. 혼자 이것저것 만드는 일에 관심이 많았다. 중학교 때는 직접 반사경을 깎아 천체망원경을 만들어 별을 관찰할 정도였다. 대학 연극반에서도 연극보다는 조명을 담당하는 전기기술자였다. 그런데 왜 공학도가 아닌 의학도를 선택했을까.

 "의사도 넓은 의미에서는 과학자입니다. 물론 의사 중에서도 가장 기계를 많이 만지는 방사선과를 선택하기는 했지만요."(웃음)

의사도 과학자라는 신념으로 시작한 일 중의 하나가 어린이 과학프로그램 MC다. 그는 지난 해 5월부터 MBC'아하, 그렇구나'의 MC를 맡고 있다.

 "의사가 웬 과학프로그램을 맡느냐고 말도 많았지만, 엄밀히 말해서 의사도 과학자므로 국민과학교육에 참여해야 합니다."

그가 선택한 과학교육은 어린시절부터 익숙하게 해왔던 실험과 발명이다. 그는 이 프로그램에서 주변에서 흔히 찾을 수 있는 물건들을 이용하여 다양한 것들을 만들어 낸다. 그 과정에서 과학의 원리를 소개한다.

"프로그램 MC를 하면서 저 역시 배우는 게 많습니다. 금요일에 방영되기 때문에 보통 목요일 저녁에 촬영을 하는데, 자정이 넘도록 전 스탭들이 노력을 무척 많이 합니다. 한 프로그램을 위해 그토록 많은 노력을 한다는 점, 우리 의사들도 많이 배워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 취미에서 사회참여로

정 교수는 화폐수집가다. 중학교 1학년 때 전축을 만들기 위해 청계천에 부품을 사러 갔다가 화폐를 모으기 시작했다. 그렇게 모은 것이 고등학교 때 국내 랭킹 100위에 들 정도로 불어났다. 조교수 때부터는 외국화폐를 집중적으로 모으기 시작했다. 특히 과학자 얼굴이 들어간 화폐를 위주로 모았다.

이러한 화폐수집 취미를 통해 그는 또 한번 남다른 일에 참여했다. '새 지폐에 우리과학자 얼굴 모시기 운동'에 발벗고 나선 것이다. 과학자 장영실의 얼굴을 새 화폐에 모시기 위한 추진위원회 위원장 활동을 하면서 2천명이 넘는 의학계·이공계 종사자들의 지지서명을 받아냈다.

"화폐에 우리과학자 얼굴을 모시자는 주장은 2001년부터 해왔습니다. 제대로된 건의를 위해 지난 2월부터 서명운동을 시작했죠. 2천명이 넘는 서명은 겉으로 가시화된 표현이고 의지를 관철하기 위한 최소한의 표현방식이죠."

그는 아인슈타인, 코페르니쿠스, 가우스 등 유수한 과학자의 얼굴이 담긴 외국화폐를 일일이 보여주었다. 유럽지역의 화폐 가운데 30% 가까이가 이공계나 과학계 인물들을 담고 있단다.

"화폐에 과학자 얼굴이 올라간다고 해서 이공계에 대한 관심이 갑자기 늘어나지는 않겠지만 매우 상징적인 의미를 갖는다고 봅니다. 과학에 대한 국민의 관심도 높일 수 있구요. 특히 장영실은 정약용, 홍대용 등 다른 과학자들과 달리 밑바닥부터 시작해 벼슬에 오른 인물이라 일반인에게 친숙하게 다가갈 듯싶습니다."  

■ 감성의 세계를 키우자

이쯤에서 정 교수의 남다른 열정의 뿌리를 눈치챌 것 같다. 그는 다양한 취미를 통해 끊임없이 사회대중과 함께 호흡하기를 시도한다.

영동 세브란스 병원에서 수년째 '별보기 행사'를 진행하면서 어린 환자들, 지역민과의 담을 허문다. 솜사탕 만드는 기기를 만들어 직접 어린 환자들에게 솜사탕을 쥐어주기도 하고, 벽지로 과학책 보내기 활동을 하면서 곳곳의 어린이와의 간격을 좁힌다. 지역민과의 공유영역을 넓히기 위해 병원 근처로 이사도 했다.

"의사로서의 안정에 안주하지 않고 다양한 노력을 하고 싶습니다. 의사도 이제는 일반 대중의 삶 속에 들어가야 합니다. 그 방법의 첫째는 친근감입니다. 의사의 권위의식으로 환자와 일반인들에게 벽을 쌓지 말고 친근감을 심어줘야 합니다. 친근하게 웃는다고 해서 의사의 품위가 떨어지는 것도 아니거든요. 둘째는 국민교육입니다. 의사의 사회참여는 정치참여가 아닙니다. 문화의 중심으로 들어가 과학을 교육함으로써 전문지식을 사회에 환원해야 합니다."

의사의 사회참여에 대한 그의 지론이 남달라 보인다. 의료봉사와 같은 기존의 방법과는 다르게 '재미있게' 살면서 일반대중과의 낮은 담까지도 허물어 내겠다는 뜻이다. 올해부터는 <의료와 사회>과목을 통해 의학도들에게 재미있는 사회참여의 방법을 가르쳐 준다고 한다.

"학생들에게 다양한 대중문화를 접할 기회를 주고, 감성을 키울 수 있도록 가르치고 싶습니다. 감성이 있으면 대화하는 방법을 알게 되거든요."
  감성으로 대화할 줄 아는 의사. 그의 편안한 웃음이 넥타이 속에 담겨진 고흐의 별빛보다 환하게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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