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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보다 더 꼼꼼할 수는 없다

李보다 더 꼼꼼할 수는 없다

  • 김은아 기자 eak@kma.org
  • 승인 2005.03.21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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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브란스병원 내과 이용원 레지던트

  ■ 로빈슨 크루소보다는 욘사마가…

'로빈슨 크루소'

인터뷰를 위해 의국에 자리를 잡고 있던 중, 마침 들어온 한 동료의사에게 이용원 전공의에 대해 한마디 해달라고 졸랐더니 툭 던진 말이었다. '뜬금없이 로빈슨크루소라니….'

알고보니 너무 꼼꼼해서 생긴 별명이란다. 도대체 얼마나 꼼꼼하길래 그런 별명을 얻었을까?

"로빈슨 크루소라는 별명은 어떻게 얻은 거죠?"

"하하. 그건 비밀인데…. 전공의들은 바쁘잖아요. 특히 1년차는 씻을 시간은 커녕 잠깐 눈 붙이기도 힘들 때가 많아요. 정신을 못 차릴 정도로 처리할 일들은 쏟아지는데 시간은 없고…. 그래서 1주일동안 수염을 한 번도 못 깎고 머리도 못 감고 다녔거든요. 그랬더니 친구 녀석이 '로빈슨 크루소'란 별명을 지어줬지 뭐에요."

"여어, 욘사마 지금 인터뷰 하는 거야?"

때마침 '멋진' 별명을 지어줬다던 동기 레지던트가 들어왔다. 최근에 가운데 '용' 자가 들어간다고 욘사마란 별명을 붙여줬다면서. 이번에는 이 전공의도 로빈슨 크루소보다 백배 낫다며 은근히 좋아하는 눈치다.

이렇게 하나 둘씩 모여든 동료와 후배 의사들에게 이 전공의에 대해서 물어봤다. 오후 한 때의 짬을 이용해 달콤한 휴식을 취하러 온 사람들이 이야기를 잘 해줄까 싶어 한번 졸라나 봐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그런데 웬걸? 어찌나 이 전공의 인기가 많던지 그에 대한 이야기는 끈 풀린 보따리마냥 마구 쏟아져 나왔다.

■ 퇴원기록지 작성 "예술입니다" 

"선배의 퇴원기록지는 병원 내에서 유명해요." 내과는 환자의 혈액검사나 활력징후 등 각종 수치 변화에 민감하고 다양한 종류의 약물과 용량을 다룬다. 그렇기 때문에 내과 의사는 꼼꼼해야 하고, 병원에는 그런 내과의사가 많다. 또 과 특성상 장기 환자가 많다보니 입·퇴원을 반복하는 경우가 잦아 퇴원기록지를 작성하는 일은 전공의 업무의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고 한다.

"하루에 퇴원하는 환자가 꽤 됩니다. 입원 환자들을 돌보려면 시간이 부족하니까 아무리 퇴원기록지를 열심히 쓴다고 해도 한 장 넘겨서 쓰는 경우는 거의 없어요. 그런데 이 선배는 A4 두 장을 빼곡히 채울 정도로 꼼꼼하게 씁니다. 거의 소설 수준이라고 보면 됩니다. 하여간 전 집에 못가는 3년차는 처음 본다니까요."

"2년차 때였는데, 그날 따라 환자가 많지 않아 오후 9시쯤 일을 모두 마쳤습니다. 그런데 제가 갈 때까지 협진 의뢰를 해결하느라 환자들의 차트를 쌓아놓고 있더라구요. 도와주겠다고 해도 거절하길래 먼저 집에 갔는데, 다음날 아침 부스스한 모습으로 나타나 집에 못 갔다고 하지 않겠어요? 워낙 꼼꼼하다보니 자신이 직접 처리해야 직성이 풀리나 봅니다."

"이 선생이 당직 서면 같이 당직 서는 사람이 싫어해요. 유난히 환자를 많이 '타거든요'(당직을 설 때 다른 때보다 중환자가 많이 내원하거나, 환자의 질병 상태가 악화되는 경우를 뜻하는 '전문용어')." 동료들의 평이 이 정도로라면 꼼꼼한 성격탓에 제풀에 지칠 법도 한데, 이 전공의는 옆에서 그저 허허 웃기만 할 뿐이다.

"힘들어도 어쩌겠어요. 그렇게 해야 마음이 편한 걸요."

이 전공의는 내과 전공의로서 환자도 돌보지만, 연세의대 전공의협의회 부회장도 맡고 있다. 2000년 의약분업  때부터 대전협과 연을 맺은 후 지금까지 쭉 전공의협의회일을 맡고 있단다.

■ 동료사이에서 '꼼꼼 짱' '성실 짱'

"이 선생님의 꼼꼼한 성격 덕분에 전공의협의회와 관련된 각종 공문들은 깔끔하게 처리됩니다. 공문처리전담반이랄까요? 또 바쁜 와중에도 아침마다 신문과 외신을 꼼꼼히 읽고 분석합니다. 이 선생님이 없으면 전공의협의회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을 정도라니까요."

연세의대 전공의협의회 간사의 말까지 들은 후에는 그의 꼼꼼함에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

"결혼은 하셨나요?"

웬만해선 그가 집에 들어갈 수 없을 것이라는 추측에 그의 허를 찌르는 질문을 던졌다.

"네. 결혼한지 6개월 됐어요. 그런데 다행히(?) 주말부부라 어차피 집에 가도 서로 얼굴 못보기 때문에 집에 못 들어가는데 대해 별로 불편함을 못 느껴요."

부인과는 지난해 결혼에 골인, 이 전공의는 서울에서 부인은 다른 병원 피부과에서 전공의로 근무하고 있어서 주말밖에 못 본단다. 그 덕에 요즘은 그나마 주말마다 꼬박꼬박 집에 간다고.

"딱 보기에도 굉장히 선해 보이지 않나요? 선배님은 인턴들이 잘 모르는 부분에 대해 꾸짖기 보다는 차근차근 자세히 설명해 주세요. 전 선배님을 보고 내과를 전공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꼼꼼'한 성격의 소유자가 있으면 그 자신은 불편하겠지만, 주변 사람들은 편한 경우가 많다. 꼼꼼하고 성실하게 일을 처리하다보니 주변 사람들이 해야 하는 잔일이 줄어드는데다 환자들의 불만도 줄어들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그는 동료의사들은 물론 간호사와 인턴들 사이에서도 '성실, 꼼꼼 짱'으로 소문났다.

앞으로 알레르기 내과 전문의가 되고 싶다는 이 전공의. 알레르기내과 분야에서 열심히 공부해 국내에서 으뜸가는 알레르기 내과 의사가 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아무리 일이 힘들고, 몸이 피곤해도 동료들과의 술 한잔이면 모든 스트레스가 싹 날아가요. 힘들면 잠시 쉬라는 말은 저에겐 용납이 안 되죠. 저는 환자들을 돌봐야 할 의무가 있고, 그들의 생명을 책임지고 있는 만큼 항상 최선을 다할 겁니다. 비록 로빈슨 크루소가 될 지라도 말이죠. 언젠가는 로빈슨 크루소도 말끔한 모습으로 다니는 날이 오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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