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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새내기 의사들에게 주는 글

시론 새내기 의사들에게 주는 글

  • Doctorsnews kmatimes@kma.org
  • 승인 2005.03.19 2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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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일 가천의대 총장

여러분의 의과대학 졸업과 의사국가시험 합격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오늘로 여러분은 6년간의 힘든 공부에 일단 매듭을 짓고 의사로서의 새로운 출발을 위하여 잠시 자신을 다듬는 시기를 맞았습니다.

그 동안 대학에서 공부하고 익힌 것을 사회에 환원할 자신의 모습을 그리면서 '의학에서 의료로, 이론에서 응용으로' 전환되는 제 2라운드에 접어들 준비를 할 때가 되었습니다. 길고도 연속되었던 긴장에서 해방되면서 잊어버릴 뻔하였던 자유로움을 느끼며 눈앞에 펼쳐질 의사로서의 장래를 준비할 자신의 차례를 기다릴 때입니다.

그러나 대학에서 배웠던 것은 극히 일부에 불과합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배운 것의 대부분은 외운 지식이고 어깨너머로 배운 것들이었습니다. 이제부터 여러분이 부딪치는 것은 환자 아니면 실험실 밴치이며, 모든 것이 문제로 시작하지만 재학시절처럼 외워서 이루어지는 것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오히려 숨겨진 정보를 스스로 찾아 분석하고 결심에 임하는 일련의 독자적 상황판단 작업이 가능할 때만이 여러분이 대학에서 배웠던 것을 활용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간 긴 학업과 시험 준비로 제대로 쉬지도 못하였으나 오랜만의 이 짧은 한가로움을 뜻있게 엮기 위하여 잠시 저와 함께 생각을 다듬었으면 합니다. 그래서 나는 여러분에게 몇 가지 당부를 드리고자 합니다.

첫째로, 마음이 따뜻한 의사가 되려는 다짐이 필요합니다. 여러분이 새내기 의사로서의 직분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지금까지 익혔던 사실적 지식의 상기만으로 의사의 길을 닦을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바랍니다. 환자가 여러분을 맞아드리지 않고서는 의료가 시작되지 않습니다.

지난 두 해 동안의 의약분업 관련 사태를 맞아 의사들이 사회로부터 비판의 대상이 되었던 것은 우리들의 지식이 부족해서가 아니었습니다. 사회가 아쉬워했던 것은 우리들 의사의 몸에 배어 있어야 할 의사다움(doctoring)이었고 신뢰이었습니다. 환자의 고통에 동참하고 이들에게 연민의 정을 전하면서 진료나 연구에 임하는 그런 넉넉함이 함께 해주기를 바랐던 것입니다.

그러나 환자들의 눈에 비친 의사의 모습은 자신을 병든 인간으로 보기보다는 '병을 가진 사물'로 취급하는 매정함이었다고 합니다. 이런 시점에서 여러분은 참된 의사의 길이 무엇인지 생각하는 절호의 기회를 놓치지 않기 바랍니다.

예컨대 후배들과 함께 힘들어하는 이웃의 곁을 찾아 봉사의 기회를 만들면서 자신의 인간성을 더듬어보거나 가까운 서점을 찾아 양서(良書) 한 권을 사서 읽으면서 우리의 다짐을 굳힐 수 있을 것입니다.

둘째, 조만간 여러분에게는 직업인으로서의 숱한 책무가 지어집니다. 양식 있는 지성인인 동시에 인간의 생명을 지킬 전문인의 길에 들어서게 되니 이에 수반되는 직업적 사명(code)을 염두에 두고 자신을 지켜나갈 준비를 하기 바랍니다. 여러분들이 앞으로 바른 윤리적 판단과 직업인으로서의 사회적 책임을 어떻게 감당하려는지 많은 사람들이 지켜볼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대학시절 이런 것을 의식하지 않고 졸업하였습니다. 지금까지는 질병 자체의 생물학적 면이 여러분의 중요한 관심사였지만 앞으로 여러분이 담당할 것은 질병 진료에 앞서 인간을 다루는 일부터 시작합니다.

개개인의 평균수명이 연장되고 생활이 윤택해지면서 앞으로의 의료는 질병보다 개개인의 보다 나은 건강, 삶의 질에 맞춘 요구가 증가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 의료를 보는 시각을 바꾸십시오.

셋째, 이젠 여러분들의 입장이 바뀌었습니다. 대학에서 공부하던 때 교수들은 여러분을 교육의 중앙에 두고 착오와 서툴음을 용납하면서 교정해주는데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제부터 여러분은 조그마한 착오도 인정되지 않는 차가운 사회를 수용하여야 하며, 환자를 가운데 두고 이들의 건강을 살펴야 합니다. 이 때 의사에게 요구되는 자질은 전문성만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뚜렷한 직업성으로 무장된 인격자로 길러진 의사야말로 21세기에 필요한 의사의 모습입니다.

히포크라테스 선서의 뜻을 새기면서, 그리고 날로 변해 가는 사회적 가치관에 대비하면서 의사가 갖출 의사-환자 관계를 배우십시오. 이런 것은 강의로만 되는 것이 아니라 실천적 몰입을 통해서 다져집니다. 한 두 달의 짧은 휴식기간이라고 하더라도 문화적 산책으로 이런 인간성이 스며든 의사로서의 첫걸음을 준비하십시오.

넷째, 다가올 수련의과정이나 대학원과정 아니면 군의관이나 공중보건의생활 등의 실전을 앞두고 마음의 여유부터 찾으십시오. 오랫동안 만나지 못한 친구들과 함께 스키장이나 한적한 겨울 바다로 갈 생각도 할 수 있을 것이고, 지식의 재충전을 위한 기회로 삼고자 하는 졸업생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의 앞에 펼쳐질 의사로서의 생활은 매우 고단합니다. 오히려 이를 즐겁게 받아드릴 자신을 찾으십시오. 그런 속에서 희망을 처방하는 의사상이 다듬어 질 수 있도록 기도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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