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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스승님을 그리워 하며

시론 스승님을 그리워 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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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5.03.19 2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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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승 원장(부산 서화정형외과/전 부산의대 교수)

스승의 날을 맞아 이정윤 스승님께 올립니다.

27년 전, 김해공항 대합실에서 일본 오사카 시립대학에서 6개월 동안의 연구를 마치고 귀국하시는 짧게 스포티한 머리에 약간 그을린 듯 건강한 모습으로 걸어나오시던 스승님을 처음으로 자세히 볼 수 있었습니다.

아침 7시의 초독 시간에 어김없이 나타나셔서 전 의국원들에게 긴장감을 심어 주시곤 했지요. 어느 날 초독 중간에 갑자기 코를 고시던 소리에 "얼마나 피곤하셨을까?"하고 이해하는 마음보다 마음속으로 킥킥 웃었던 철없던 제자였습니다.

너무 낯설고 텃세가 강한 경상도 부산에서 주위의 많은 질시와 견제를 묵묵히 이겨내시면서 필연적으로 부딪히는 수많은 스트레스를 극복하시느라 긴장 속에서 보내시는 모습을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지켜보아야 했습니다.

연차가 올라가고 조금 더 철이 들었건만 도움이 되어드리기는커녕 여러 문제로 애를 먹이면서도 좀 더 가르쳐 주시고, 적극적으로 이끌어 주시기를 바라는 이기심도 마음 한 구석에 함께 하고 있었습니다.

초창기 대부분의 대학병원이 비슷한 여건이었겠지만 부산의과대학은 몇 개월의 임기도 채우지 못하시고 많은 교수님들이 스쳐 지나가곤 했습니다. 제대로 의국이 안정되지 못하던 중 잠깐동안 문병상 교수님이 머무르시면서 터를 닦으시고, 스승님이 부임하셨습니다.

고령의 어머님과 멀리 떨어져 사는 외로움도, 사모님의 푸념 어린 항의도, 아드님과 따님에게 제대로 사랑을 베풀 시간도 없이 거의 일주일 내내 의국 속에 파묻혀 제자들과 매일 식사와 활동을 같이 하시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스승님께서는 의국의 뼈대를 세우시고 레지던트 훈련과정 하나 하나를 몸소 보여주시면서 정형외과가 무엇을 하는 과이며, 정형외과 환자들을 다루는 모든 것들을 알뜰히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 동안 쌓였던 심한 피로와 스트레스로 간농양이 재발하여 장기간 입원 중에도 끊임없이 제자들의 진로와 앞날을 걱정해 주셨던 스승님. 잠시 대학을 떠나 계셨을 때에도 어려울 때면 찾아 뵙고 상의를 드릴 수 있었기에 옆에 계신다는 사실만으로도 행복감을 느끼며 지냈습니다.

인하대학교로 초빙되어 인천으로 올라가신다는 말씀을 들었을 때 그 동안 제대로 효도와 사랑을 드리지 못했다는 마음과 기쁨이 어울러져 축하와 함께 인천에서는 건강하게 보다 발전적인 삶이 되시길 기원했습니다.

2년 전 1월 흰 눈이 몹시 내리던 날 사모님을 저 세상으로 보내시고 괴로워하시던 모습을 뵈면서 언젠가는 무거운 짐을 놓으시고 제 2의 인생의 아픔, 슬픔과 기쁨을 제자들과 같이 보냈던 부산에서 다시 함께 지내시기를 기원하기도 했습니다. 시원하면서도 섭섭했던 모든 일들을 가슴에 묻고, 또 하나의 새로운 출발을 마음 속 깊이 축하드리는 의미로 이 글을 씁니다.

이 순간 문득 '아름다움은 짧아서 좋고, 그리움은 길어서 좋더라. 떠남은 다시 만날 만남의 전조이다'라는 이야기가 떠오릅니다. 사랑합니다. 내내 건강하십시오.

제자 이철승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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