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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안락사와 언론 오보
시론 안락사와 언론 오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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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5.03.19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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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훈(재미의사/의학칼럼니스트)
'자연스럽게 죽음을 맞이할 수 있는 권리'와 '살인죄'라는 존엄사와 안락사 논쟁에 불씨를 당긴 보라매병원 사건이 발생한지 어느새 4년이 지났다.

잊혀져 가는 역사 속의 사건으로 망각되고 있는 씁쓸한 세태 속에서 대한의학회가 11일 마련한 2001년 임상의학 심포지엄 '안락사,존엄사에 대한 의학적 접근'은 보라매병원 사건의 의미를 재조명하고 안락사의 현실적 접근과 대책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적지 않은 시사점을 의료계에 던졌다.

심포지엄에서 주제발표에 나선 의학자들은 죽음의 형태를 정립하기 위한 의료계 스스로의 노력과 함께 과다한 연명치료나 무의미한 의료행위에 대한 사례를 수집하고 이를 바탕으로 요건이나 기준을 의료계 스스로 만들어 가야 한다는데 공감했다. 본지는 2회에 걸쳐 주제발표 전문을 게재함으로써 안락사,존엄사 문제에 대한 접근방법을 모색하는데 도움을 주고자 한다. <편집자 주>


과유불급(過猶不及)은 논어에 나오는 공자의 말씀이다. 여기서 과(過)는 과도(過度),즉 지나침이며 불급은 부족함, 즉 모자람을 말하니 "지나친 일은 부족한 일과 다를 바 없다"는 뜻이다. 과잉한 상태는 미숙한 경우와 마찬가지로 둘 다 중용의 덕을 잃고 있다는 말도 된다.

가령 우리가 가난할 때 영양실조를 염려했다면, 배불리 먹는 지금 시대는 심장병 당뇨병 등을 유발하는 영양과다증에 신경 쓰고 있으니 풍요한 음식이 오히려 원망의 대상이 된 셈이다.

글쓰는 일도 마찬가지다. 연구할 겨를도 없이 짧은 시간에 짧은 밑천으로 아는 것 이상으로 쓰려고 하니 그 내용에 추측기사가 있게 되고 그런 대로 맞아들 때가 많지만, 가끔 큰 실수로 잘못된 지식이나 정반대되는 정보를 독자에게 줄 때가 있다.

나 자신 잡문을 쓰다보니 남의 글에도 관심 갖게 되며, 가끔 잘못된 기사를 볼 때 내 자신이 저지른 일같이 느껴질 때가 많다. 남의 실수는 꼬집어 내기 쉬운 반면 본인의 실수는 알아차리기 힘드는지라, 나 자신 잘못 전할 때가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잘못 전한 글 내용이 중대한 이슈에 관계될 때는 독자를 잘못 인도한 책임도 져야하니 어깨가 무거워진다.

아무튼 한국의 신문 잡지에 실린 글을 대하면서 글쓴이의 지나친 친절이나 과잉욕구로 해서 실수하거나 오보한 글을 발견하고 고소(苦笑)한 경험이 가끔 있어 여기에 적어본다.

안락사와 존엄사 논쟁이 한창인 지난(2001년) 4월 20일자 J신문은, 네덜란드의 안락사법안 통과에 대해 로마교황청에서 "안락사는 살인행위"라고 평한 글을 발표했다. 그런데 글쓴 기자는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요즘의 존엄사 이슈를 의식한 나머지 1965년의 바티칸공의회 문서를 인용하면서 "간접이던 직접이던 안락사는 하나님이 주신 인간생명을 해치는 불법적인 살인이라고 분명히 규정하고 있다"고 덧붙여 적었다.

2001년의 현시점에서 하필이면 36년 전의 바티칸문서를 인용하면서, 현재 교황청에서 "존엄사(간접적 안락사)도 살인행위"라 규정하고 결사반대한다는 인상을 독자에게 잘못 심었으니, 옛날 같으면 큰 필화사건이 될 오보(誤報)라 하겠다.

최근에 나는 1980년 5월 5일 교황청이 발표한 '안락사에 관한 선언문 Declaration on Euthanasia'에서 존엄사를 인정한 내용의 글을 소개한 바 있다.

교황청 견해도 시대의 조류에 따라 변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하고많은 최근의 교황청문서를 내버려두고 하필이면 1965년의 문서를 어렵사리 찾아서 인용한 J신문기자의 의도를 모르겠다.

1615년 로마의 천문학자 갈릴레오는 그의 지동설(地動說)이 성서에 위배되는 종교적 이단이라는 선고를 받았었다. 그러나 그는 "누가 뭐라 해도 지구는 돈다"는 주장을 되풀이했으며, 교황청 재판관은 그에 대한 선고문에서 "지동설은 세상의 모든 이단설 가운데 가장 가증스럽고, 가장 위험하며, 가장 수치스러운 것이다. 신의 존재등을 부인하는 설도 이지동설에 비하면 약과라고 할 수 있다"고 적었다.

그러나 근래 교황청은 갈릴레오의 지동설을 인정하게 되고, 그는 1992년 11월 파문당한지 359년만에 교황 바오로 2세에 의해서 복권되어 그의 영혼을 되찾았다.

여기서 말하고자하는 바는 지동설에 관해서 현재(2001년)의 교황청 견해를 언급하려면 1992년 11월 이후의 문서에 의해서 'Yes'라 해야 할 일이지, 그 이전의 옛 문서를 뒤져 'No'라는 판정을 국민에게 보도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1992년의 문서이야기를 하다보니, 당시(1992년도) 임진왜란 4백주년 기념행사와 관련된 기사 중에서 오보를 적어본다.

한국 J신문에 임진왜란특집기사가 실렸는데 그 좋은 글 내용에 비해서 '옥의 티'라고나 할까, 그림삽화에 큰 실수를 발견할 수 있었다. 일본의 조선침략 전초지(前哨地)는 조선반도와 최단거리에 있는 구주(九州) 북쪽의 나고야(명호옥. 名護屋)인데, 그림에는 동경 남쪽의 대도시 나고야(명고옥 名古屋)로 잘못 그려져 있다.

이름난 화가의 실수라 짐작되지만, 지도까지 덧붙여서 설명한 지나친 친절 때문에 글 전체의 인상마저 잡친 격이다. 물론 편집자의 부주의로 실수를 적발하지 못한 줄로 안다.

같은 해 나온 KBS 제작 드라마 다큐멘터리 '임진왜란 4백년 특집' 비디오를 보고 참 훌륭한 작품이라는 감명을 받았다. 그런데 그곳에 잠깐 비친 화면이기는 하지만, 서울대의 L 교수가 임진왜란의 원인을 설명하는 가운데 "조선 중국 일본간의 무역불균형상태를 해결하기 위해 일본이 전쟁을 일으켰다"라는 말은 너무나 실망을 주었기로 여기에 보충설명 하고자한다.

일본의 천하통일을 한 풍신수길은 '과대망상가'이며 그의 야망달성을 위해 대륙정복을 꿈꾸었던 일은 하나의 상식이고 많은 일본문헌이 입증하는 터인데, 비디오 해설에서 나스닥 코스닥 하는 식으로 현대 경제전쟁처럼 다루려고 하니 너무나 듣기에 민망했다.

지난날 이야기지만 독실한 천주교인이신 R교수는 "임진왜란은 풍신수길이 그 부하의 많은 가톨릭 신자 다이묘(지방장관)들을 소모시키기 위해 일으켰다"고 그의 종교적 견해로 해석한거나 다를바 없이 견인억부(牽引抑附)의 논설이라고 하겠다.

무식한 군인독재자 풍신수길에게 요즈음 청와대 경제 팀이나 경제부총리 같은 경제참모가 있었던 것도 아닌데, 옛날 전쟁과 현대전을 혼동하는 설명은 학술적으로 어렵게 설명해야한다는 학자적 자존심 때문인지도 모른다. 과유불급이다. 한국의 석학 최남선 선생이 '상식의 중요성'을 강조했던 일이 생각난다.

같은 시기(1992년 전후)에 대학연구팀의 해외나들이가 많았는데, 한국의 동국대학팀이 몇일간 만주 집안(集安)의 광개토왕비를 찾아 그 탐방기를 모 신문에 대서특필한 글을 읽었다. 내용은 잊어버렸지만, 그 연구팀이 그곳에서 '역사적인 새로운 사실을 발견'하고서 금의환향했다는 식의 글을 읽고서 너무나 한심하고 슬펐다.

아무리 '百聞이 不如一見'이라고 해도 광개토왕비는 과거 백년 가까이 중국 일본 북한학자들이 연구조사한 바 있고 현재 중국길림성 박물관에서 현지(집안)에 당달봉사가 아닌 전문가를 상주시키고 있는 터인데, 대학연구팀은 그곳에 상주하는 것도 아니고 잠깐 며칠간 '수박 겉핥기'식으로 견학하고 와서 꼭 세기적인 발견을 했다고 해야만 체면이 서는지 의심스럽다.

학문의 업적이란 백절불굴의 꾸준한 연구결과 장구한 시일이 지나야만 겨우 빛을 보기 마련인데, 하루아침에 '깜짝 쇼'로 세상의 각광을 받으려는 그러한 한탕출세주의는 '펜보다 칼이 가깝다'는 속결주의식 군사문화권에서 키워온 학문 탓인지 알 수가 없다. 과유불급이다.

1991년 어느날 '과유불급(過猶不及)'한 기사가 있어 또 적어본다. J신문 '시평'난에 저명한 한 분이 유명한 중국계 일본작가(역사소설) 진순신(陳舜臣)의 말을 인용한 끝에 그의 혈통까지 언급함으로서 잠깐 오류를 범했다.

즉 진순신은 중국인과 일본녀 사이의 소생이라고 설명했는데, 사실은 그렇지 않으며 그 부모, 조부모, 그리고 그의 처도 모두 중국인이다. 진순신과 비슷한 나이로 재일본 중국계 저명인사이며 문필가인 구영한(邱永漢)은 그의 어머니가 일본인인데, 흔히 진순신과 구영한을 혼동하는 사람이 있다. 글 내용과 직접 관련이 없는 것을 언급한 지나친 친절은 '과유불급'의 위험이 있음을 알린다.

진순신 말이 나온김에 한국 문화계가 진순신 선생께 크나큰 실례를 저지른 기사(사건)를 소개해본다.

1994년 5월호 월간중앙지에 '국제대토론:한 중 일 문화를 논한다'는 특집이 나와있다. 여기서 내가 존경하는 한국의 일본학 대가 K교수와 진순신이 동양문화에 대해서 토론한 내용을 길게(20여 쪽)실었다.

세 나라 남자의 헤어스타일 즉 중국 청나라의 변발( 髮)과 조선의 총발(總髮, 상투), 그리고 일본 사무라이의 월대(月代, 사까야끼)를 논하면서 K교수는 대뜸 "이 그림은 그때(옛날)의 이야기를 근거로 해서 우리 학교 학생을 시켜 그린 세 나라 사나이들의 헤어스타일입니다"라 하면서 내놓은 그림을 잡지에 실었는데, 보는 순간 나는 창피 막심해서 쥐구멍이 있으면 숨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 그림은 내가 갖고 있는 진순신의 책, 즉 1971년에 나온 '일본인과 중국인'이라는 일본 책에 실린 변발과 월대를 설명한 바로 '그 그림'이었기 때문이다. 마치 귀한 손님을 초대해놓고 그 앞에서 바로 그 손님 집에서 훔친 보물을 자랑하며, "이 보물은 내 제자의 작품입니다"고 했으니 세상에 보기 드문 망신이라 하겠다.

위의 글과 그림이 잡지에 실린 것을 보면, 진순신은 아무 대꾸 않았던 것이 확실하다. K교수는 제자를 잘못 만나 얼굴에 똥칠했고, 월간지는 문화면에서 '국제친선' 하려다가 '국제망신'을 저지른 셈이다. 문제가 '국가체면'에 관한 것임으로, 그때 나는 몇자 써서 잡지사에 보냈지만 결과는 모르고 있다. 정정이나 사과기사는 물론 없었다.

다음은 위와 같은 '국제적 사건'과는 다른 '국제적 인물'의 실수를 적어 본다.

세계에 잘 알려진 미국의 톱 언론인이자 작가며 역대대통령에 대한 연속 책 'The Making of the President'로 유명한 Theodore White 는 2차 대전 때 중국에 종군했으며 그 경험을 토대로 1979년 8월 'In Search of History'라는 책을 썼고 이책은 한때 베스트셀러였던 걸로 기억된다.

그런데 이 책의 제 6장을 보면 1945년 9월 2일 미조리 함상에서의 일본 항복 조인식이 자세히 묘사되어 있으며, 이때 일본대표 시게미쯔 외상은 의족을 끌고 함상에 나타난다. 여기에 관해서 "시게미쯔는 전쟁이전에 테러에 의해서 한쪽다리를 잃었다. 평화주의자인 그를 일본의 극렬분자들은 살해하려 했던 것이다"라고 적혀있다.

시게미쯔는 상해 홍구공원에서 한국독립운동가 윤봉길 의사의 폭탄에 의해서 불구자가 됐는데도 이 책에는 한국독립이나 윤의사에 관해서는 언급조차 없고, 오히려 시게미쯔가 평화주의자이기 때문에 괴한에게 테러 당했다는 어처구니없는 망언을 하고 있다. 이 책을 읽은 나는 장문의 편지를 써서 White에게 교정을 바랬건만 감감 무소식이었다.

이상 안락사를 비롯하여 언론에 나타난 크나큰 실수들을 열거해 보았다.

현재 존엄사 문제 즉 치유가 불가능한 말기환자에 대해 본인이나 가족의 원에 따라 무의미한 삶을 연장시키는 연명의료를 중단하는 일은 세계선진국과 기독교계에서는 오래 전부터 허용되고 있다.

미국에서는 모든 주에서 존엄사를 허용하는 생전유언(Living Will)이 법제화되어있으며, 일본에서는 일본의사회가 1992년 3월 '존엄사 허용견해'를 국민에게 발표한 이래 사회적으로 수용되고 있는 현실이다. 그리고 세계의사회(World Medical Assembly)도 지금부터 20년 전(1981년) 리스본(Lisbon)선언으로 존엄사 허용을 천명한 바 있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존엄사 허용문제에 대해 이외로 일부사회의 저항이 많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마도 그 큰 이유중의 하나는 존엄사에 대한 국민의 이해부족 탓이라 생각되며 여기엔 국민계몽을 게을리 한 우리 의사는 물론, 언론의 오보에도 책임이 있다고 하겠다.

대한의학회가 11월 10일 주최한 '안락사와 존엄사 심포지엄'을 계기로, 이번에 한국 의사 사회에서 존엄사 수용견해를 공식발표했음은 때늦은 감이 있지만 크게 경축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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