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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온달산성에서...
시론 온달산성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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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5.03.19 1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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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상용(한림의대 교수)
얼마 전에 온달산성을 찾았다. 지난 여름부터 벼르고 별러 오다가 12월 말 결혼기념일 전후로 휴가를 얻어 가족들의 손목을 잡고 온달산성을 올랐다. 광개토대왕(강무학 지음)이란 소설을 읽고부터 고구려에 관심이 생겨 고구려에 관한 자료들을 수집하던 차에 어느 선배님으로부터 온달산성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고구려의 산성을 제대로 느껴보려면 온달장군이 축성하고 그곳 산성에서 전사한 온달산성을 꼭 가보라는 것이었다. 선배님께서는 충북 단양에 있는 온달산성은 봄이나 가을에 가면 좋다고 하였으나 바쁜 탓에 한 겨울에 온달산성을 찾은 것이었다.

남한강을 돌아 산성으로 휘몰아치는 겨울 눈발에 엉금엉금 산성을 오르면서도 1400년 전의 온달장군과 평강공주 그리고 고구려의 운명을 생각하면서 별로 힘들다고 느껴지지 않았다. 산성 중턱에 있는 사모정(思慕亭)에서 뒤따라 올라오는 가족들을 기다리며 남한강을 아득히 내려다보다가 문득 천년의 세월을 넘어 내 귀청을 울려오는 겨울바람 소리에 평강공주와 고구려 병사들의 울음소리가 들려오는 듯 했다.

이곳 사모정에서 전사한 온달장군의 관이 땅에서 떨어지지가 않아 평강공주가 관을 어루만지면서 "죽고 사는 것은 결정되었습니다. 자, 돌아갑시다"라고 하며 눈물로 달래어 모셔간 자리이다. 그날의 울음소리와 눈물은 다시 천년 후에 이 곳 사모정을 찾는 누군가의 마음도 오늘처럼 어지럽게 하지 않을까?

1400년 전에 쌓은 산성이 무너지지 않고 현재까지 잘 보존될 수 있는 고구려의 축성기법은 이곳 온달산성을 찾은 외국의 학자들에게 놀라운 감탄을 자아냈다고 한다. 인적이 끊긴 온달산성은 겨울 매서운 바람소리만이 고구려군과 신라군의 아우성이 되어 가득 메우고 있었다. 산성을 둘러보고 축성한 돌무더기를 손으로 만져보면서 나에게도 고구려의 피가 감돌고 있음을 느꼈다. 그리고 이처럼 훌륭한 요새에서 용장인 온달장군이 한낮 신라군의 화살을 맞고 쓰러지셨다는 사실이 도저히 믿어지지 않았다.

중국 후주(後周)의 무제(武帝)가 고구려를 침공했을 때 선봉장이 되어 적진을 누비며 용맹을 떨치시고, 요동벌판을 말달리며 고구려의 기상을 세우시던 출중한 문무를 겸비한 고구려의 장군이 화살 하나 막지 못한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온달장군에게는 같은 동포인 고구려군과 신라군이 서로 피를 흘리며 싸워야 하는 현실이 얼마나 안타까웠을까? 온달장군에게는 요동 벌판에서 맞던 겨울 눈보라와 이곳 온달산성에서 바라보던 겨울 눈보라는 많이 달랐을 것이다. 끝없이 쳐들어오는 신라병사들의 목을 베면서도 무제의 침략군의 목을 벨 때와는 달리 얼마나 마음이 착잡했을까?

온달장군의 눈앞에서 서로 피를 흘리며 싸우고 있는 신라병사와 고구려 병사들을 보면서, 한 동포인 용맹한 신라와 고구려 병사들이 함께 흑룡강과 우수리 강억덕을 말달리며 광개토대왕의 영화를 다시 꽃피우는 것을 안타깝게 상상해 보았을 것이다. 평강공주도 멀리 국내성에서 온달장군의 이러한 마음을 헤아리고 내심 불안한 마음을 떨칠 수 없었을 것이다.

온달장군이 전사하던 그 날도 끝없이 밀려오는 신라병사들의 목을 베다가, 문뜩 언제까지 이런 무의미한 전쟁이 계속될 것인가 하는 깊은 회의에 젖어 멀리 남한강물을 내려다보고 있던 잠시, 신라병사의 시위를 떠난 화살 하나가 온달장군의 가슴에 박혔다. 뜨거운 가슴을 움켜쥐면서 온달에게 고구려를 눈뜨게 해준 사랑하는 평강공주 그리고 고구려의 겨울 산야가 오늘처럼 휘몰아치는 겨울 눈발과 함께 점점 흐려졌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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