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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뉴욕마라톤 원정기
시론 뉴욕마라톤 원정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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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5.03.19 1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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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우 원장(서울 강북 예일산부인과)
약 2개월 전 베를린에서 첫 해외 원정 마라톤을 뛰고 두 달도 안돼서 또 한 번 해외 원정 마라톤에 도전한다는 것이 약간 돌았다고 할지 모르지만 이번에는 뉴욕 친구도 볼 겸 예일대학에도 볼일이 있고 해서 진작부터 가고 싶었던 길이었는데 기회가 없다가 뉴욕마라톤이 촉매제가 되어 내친김에 가기로 하였다. 병원 일은 직원들의 이러저러한 일들로 마음이 쾌하지가 않았지만 산다는 일이 과연 쾌할 때가 얼마나 있더냐 하는 마음에 또 한 번 결심하였다.

한국사람 단 두 명이 참석했던 베를린마라톤 때와는 달리 이번에는 동행 한국인이 22명이 되어서 비교적 큰 선수단이 구성되었다. 하루라도 더 환자를 보고 가려는 알뜰한 마음에 11월 5일 레이스 날인데 11월 4일 아침에 떠나게 되어 11월 3일 아침에 단체로 떠난 한국 선수단과 떨어져서 혼자서 행동하게 되었다. 먹고 사는 일 때문에 외로운 생각이 들었다.

글루코겐 축적용으로 아내가 쪄준 감자를 조금씩 꾸역꾸역 먹으면서 15시간의 지루한 비행 끝에 JFK공항에 도착하자 곧장 마라톤 엑스포가 열리는 PIER(부둣가)에 가서 등록하고 배번표(23230)를 받고 마라톤 용품 몇 가지를 장만하고 나서 한국인 일행이 모여있는 뉴저지의 홀리데이 인 호텔로 가서 합류하였다.

내일 아침에 입을 운동복을 정리하고 저녁 10시경부터 잠을 청했으나 역시 잠이 오지 않았다. 계속 뒤척이다가 결국 04:00 모닝콜 소리를 신호로 일어나서 꾸물거리며 마라톤에 갈 준비를 시작하였다. 현지 가이드인 강대운 씨 부인이 준비한 찰밥과 미역국으로 간단한 아침식사를 마치고 단체용 버스를 타고 뉴저지의 Verazzano Narow Bridge로 출발하였다.

그 버스안에서 지평선에서 떠오르는 새벽의 첫 태양을 보게 되었는데 역시 넓은 땅을 가진 미국다운 장엄한 광경이었다. 지평선의 일출은 우리나라 동해바다의 일출과는 또 다른 맛이 있었다.

통제지역에 도착해보니 새벽 6시경이었는데 벌써 UPS(United Parcel Service)비닐백을 짊어진 참가자들이 떼를 지어 움직이고 있었다. 우리 한국팀도 여행춘추 여행사의 정동창 사장(3시간대의 유능한 선수)이 태극기를 앞세우고 입장하여 자원 봉사자 꼬마들이 나눠주는 생수를 하나씩 받는 것으로 선수촌 입장이 시작되었다.

각종 스폰서 회사에서 나눠주는 빵, 커피, 물, 요구르트, power bar, power gel 등을 조금씩 받고 power bar 회사에서 주최한 몸 풀기용 쇼를 보면서 기다리는 지루함을 달랬다. 추운 새벽날씨(영상 5도)에 바람까지 세게 불어 여간 추운 것이 아니었다. 보온용 쓰레기 봉투를 뒤집어 쓴채로 율동도 따라하고 스트레칭도 따라하면서 몸이 굳지 않도록 노력 하였다.

새벽 6시에 도착하여 10시 50분에 출발했으니까 근 5시간을 추위와 바람속에서 기다린 것인데도 워낙 수많은 전세계의 건강한 남녀들이 형형색색의 복장과 특이한 모습(담배로부터 폐질환을 방지하자고 몸 전체를 불붙인 담배의 모습으로 분장한 사람 등등)으로 움직이고 있어서 지루한 느낌은 없었다.

워낙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어서 화장실 앞마다 긴 줄이 형성되어 있어 급한 사람들은 대충 근처의 철조망 쪽으로 가서 차가 다니고 있는 자동차 도로를 향하여 쉬를 하고 있었다. 철조망 이쪽에 서서 쉬를 하고 있는 남자나 철조망 저쪽에서 운전을 하는 여자나 서로 쳐다보면서 싱긍싱글 웃고 있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그런 모습이 자연스럽고 이쁘게 보였다. 이따금씩 용변이 급한 여자들이 서서 쉬하고 있는 남자 뒤에서 용감하게 엉덩이를 까고 쭈구리고 앉아서 오줌싸는 모습은 여기가 아니면 볼 수 없는 진기한 광경이었다.

이런저런 광경에 시간가는 줄 모르다가 10시 30분이 되어 드디어 겹겹이 껴입었던 옷을 다 벗어버리고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쓰레기 봉투를 뒤집어 쓴 채로 1,000명 단위로 구분되어 그룹으로 사람들이 모여서 있는 곳으로 가서 서 보니 아직도 두툼한 오버 코트를 입고 있는 사람도 많았고, 담요를 뒤집어 쓰고 있는 사람도 있었다.

평에 있는 여자들은 약간 낡아 보이긴 하지만 두툼한 롱 모직코트를 입고 있었는데 출발 신호가 울리면 저것도 벗어버릴 건가 하고 설마설마 했는데 역시 훌륭해 보이기만 하는 롱 모직코트조차 벗어서 던져 버리는 것이었다. 그것 참!

출발 신호는 총이 아니고 대포였다. 참으로 미국다운 광경이었다. 대포의 굉음이 울려는데도 사람들은 움직이지 않고 서 있었다. 앞에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운집해 있기 때문에 선두의 사람들이 뛰어 나가고 한참이나 지나서야 비로소 천천히 걷기 시작할 수 있었고, 또 한참이나 지나서야 뛰는 시늉을 할 수가 있을 정도였다.

Staten Island의 맑은 하늘, 싸늘한 날씨, 매서운 바람(모자를 한 손으로 누르지 않으면 날아갈 정도), 출발을 알리는 대포소리와 마라토너의 환호성, 시민들의 함성, 그 넓은 Verazzano Bridge를 까맣게 뒤덮은 세계에서 모여든 사람들, 시작 대포소리에 이어 Staten Island 하늘 위에 울려 퍼지는 운명교향곡 도입부의 장엄한 삼연음부의 사우드! 가슴이 터질 듯이 벅차오르기 시작했다. 인간들이 이렇게 서로 서로 얽히고 키며 엮어가는 장엄한 드라마! 뉴욕 마라톤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Verazzano Bridge(1.6마일) 중간쯤 가니까 바람은 더 매서워지기 시작했다. 대서양 바닷바람이 Verazzano Bridge를 뒤덮은 인간군상을 일단 한번 후려갈기는 듯 하였다. 수많은 사람들의 인벽이 아니었더라면 아마도 몸이 흔들거렸을 것 같았다.

그러나 어쨌든 Verazzano Bridge에서 바라보는 대서양은 바람 때문에 가는 눈을 뜨고 바라보아야 했으나, 맑은 하늘 밑에 한없이 넓게 펼쳐져 있어 다리 위에서 약동하는 인간들을 바람으로 후려갈기면서도 넉넉히 감싸 안아주고 있었다. 워낙 길고 높은 다리라서 까마득히 올려다 보이는 Bridge 상판에서 움직이고 있는 사람들이 보였는데 개미새끼 같이 작아 보었다.

그 사람들은 아마 촬영팀일텐데 그곳은 얼마나 추울까. Bridge 저쪽 끝에는 헬리콥터 한 대가 공중에 정지하여 박힌 듯 서 있었는데 아마 촬영중일 것이다. Bridge 중간에 1 마일 표시가 있었는데 사람들이 그 표시를 보며 "Oh! one mile!"하면서 브라보를 외친다. 그 사람들 참!

뉴욕 마라톤의 상징인 이 다리를 건너면 Brooklyn Bronx를 거쳐 Manhattan으로 들어가서 central park에서 결승선을 밟게 된다. Queens borough bridge 위를 뛰고 있을 때 이미 Queens로 들어간 사람들이 Queens의 대로를 뒤덮고 뛰어가고 있는 모습은 보기만 해도 즐거운 장관이었다.

Borough와 borough를 연결하는 bridge마다 바람이 세차게 불어서 연도의 뉴욕시민들의 열광적인 환호의 응원에도 불구하고 여간 힘든 것이 아니었다. 캄보밴드가 곳곳에서 연주하고 있었는데 "young man" "YMCA" 등 힘차고 빠른 곡을 연주하고 있었고, 그 주위에 있는 시민들은 거의 다 즐겁게 춤추고 있었다.

마라토너들의 축제이면서 뉴욕시민들의 축제가 아닐 수 없었다. 2마일마다 있는 급수대에서 물을 나눠주고 있는 어린 손, 나이드신 분들의 손, 손, 손, 손. 자원봉사자의 나라 미국. 미국의 힘은 이렇게 눈에 잘 안띄는 고사리 손들 속에서 숨쉬고 잉태되어 가고 있음을 느꼈다.

Bronx와 Manhattan의 한창 무르익은 단풍속을 뛸때에 느꼈던 가을의 정취는 anoxic state의 헐떡거림 속에서 더욱 더 황홀하게 느껴졌다. 수많은 급수지점에서 수없이 여러번 생수와 게토레이를 마셨지만 급수대로 뛰어가서 아수라장 속에서 물컵을 잡은 것이 아니라 자원봉사자들이 한 손에 3~4개씩 손가락으로 끼어서 잡고 있는 물컵을 항상 나꿔채서 마실 수 있었다. 그것은 그들에게는 6~8시간 가까이 해야 하는 쉽지 않은 일일텐데 뛰기에 조금이라도 지장을 주지 않으려는 세심한 배려에 의한 것이었다.

이틀간 잠을 제대로 한 번 푹 자지못한 것이 큰 원인일텐데 28km 지점부터 어지럽고 다리가 아프고 무거워서 성큼성큼 뛰어지지 않는 상황이 거의 37km 지점까지 계속되었다. 내가 스피드가 급속히 떨어지니까 수많은 사람들이 나를 pass하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Bronx에서 Manhattan으로 들어오면서 곱게 물든 단풍들이 보이기 시작하니까 마지막 기운이 솟는 듯하여 결승선 약 4~5km를 남기고 스퍼트를 하기 시작하였다. 연도에서 환호하는 뉴욕시민들 보기가 미안해서 차마 낙오는 못하고 뛰고 있기는 했지만 거의 낙오 지경까지 갔었는데 이런 기운이 속에 남아 있다는 것이 신기하였다.

그러다보니 어느덧 central park에 들어와 있었다. 10년전 여기서 조깅했던 추억이 되살아나니까 아는 곳에 온 반가운 마음에 더욱 기운이 솟구쳐서 느릿느릿하게 뛰는 나에게는 질주에 가까운 속도가 나오기 시작하였다. 극도로 지친 가운데서도 꿈결같이 아름다운 가을 단풍을 감상했는데 헉헉 거리면서 한 그 황홀한 단풍구경만 해도 본전을 뽑은 느낌이었다.

central park에 수시로 몰아치는 찬바람에 하늘을 수놓으면서 비처럼 쏟아져 내리는 빨간 노란 낙엽의 소나기 속을 연도에서 환호의 격려를 보내는 엄청난 인파 한가운데를 수많은 형형색색의 운동복을 입은 런너들과 뛰어갈 때에는 차이코프스키의 피아노 협주곡 1번 1악장의 도입부의 멜로디가 웅장하게 울려 퍼지는 것 같은 환상에 사로잡혔다.

그 환청 속에서 나 스스로도 놀랐던 마지막 질주가 나오기 시작하여 나의 생애기록(Net time 4시간 9분 24초)이 탄생되었다. 차이코프스키의 피아노 협주곡의 환청이 이렇게 힘이 될 줄이야! 마라톤의 마지막 사력을 다한 질주와 피아노 협주곡의 환청이 무슨 연관관계가 있을까?

그런 힘든 상황속에서도 연도의 시민들에게 자기가 힘이 빠졌다고 하면서 자기를 위해서 함성 한 번 질러달라고 익살스럽게 어떤 런너가 요청하면 웃고 박수치면서 두 번 세 번 "go! go! go!"라고 함성을 질러대는 연도의 사람들.

소형 비디오 카메라를 허리 색에 넣고 뛰면서 고향에 돌아가서 뉴욕시민들이 자기를 환영하는 모습이라고 선전하겠다며 자기를 환영하는 척 해달라면서 왔던 길을 10m쯤 돌아가서 다시 뛰어 오면서 박수치는 사람들을 비디오로 촬영하면서 달리던 Oslo사람(팬티에 Oslo라고 적혀 있었으니까), Below Knee 의족을 달고 나보다 더 빨리 뛰던 사람, 나보다 계속 빨리 뛰다가 마지막 100m 남겨 놓고 겨우 내가 pass한 어떤 자그맣고 허리도 약간 구부러졌지만 다리 하나는 늘씬하던 할머니, 레이스 도중 길가에서 대충 궁둥이 까고 오줌누던 여성 런너들의 모습.

힘겹게 휠체어를 굴려가던 장애인들의 당당하고 행복해 보이던 모습들. 뛰면서 조금이라도 더 잘 뛰고 싶어서 모자고 런닝이고 무게 나가는 것을 다 벗어 던지던 수많은 남녀들. 한국 선수단이 입었던 유니폼은 가슴에는 태국기 등에는 KOREA라고 크게 새겨져 있어서 그것을 보고 "korea go!"를 외쳐주던 뉴욕시민들의 다정한 모습, 트럭위에 올라가서 밴드 연주에 맞춰서 맥주를 한 손에 들고 마셔가면서 청바지에 꽁지머리하고 춤추던 미국 할아버지, triborough 다리 밑을 지날 때 다리위의 철교위에서 기차를 세워놓고 기차 크락션을 우렁차게 울려주던 맘씨 좋게 생긴 기관사와 그를 향해 환호하던 런너들, 다리 밑이나 터널을 지날 때마다 소리의 울림을 이용해서 큰 소리로 환호하던 런너들의 함성 등등이 뛰면서 얼핏얼핏 내눈에 비친 그날의 스케치였다.

뛰고 또 뛰다보니 26마일 이정표가 나왔고 그때 전광판 시계가 4시간 11분을 넘기고 있었다. 10km 정도의 처지는 구간이 있어서 결국은 베를린 마라톤의 기록이 혹시 깨지는 것이 아닌가 하고 기대했다가 순간적으로 실망하였으나 이제 끝이나는구나 생각하니 기쁘기만 하였다.

마지막 질주를 하면서 스피드 센서를 밝을 때 전광판을 보니 4시간 13분 57초였다. 결승선의 스피드 센서를 밟고나니 갑자기 탈진하고 말았다. 온몸의 기운이 빠진 느낌이 들었지만 가슴은 감사의 기쁨으로 한없이 뿌듯했다. 26.2마일 완주의 건강을 허락하신 하나님과 부모님께 감사드리고 가족과 병원 직원들에게 속으로 감사의 인사를 하였다.

"good job! gratulation!"하면서 미국 아주머니 자원봉사자가 걸어주는 'finisher's medal'을 목에 걸었다. 체온 보온용으로 몸에다 두르는 은박지 같은 비닐로 목을 감싸고 출구 쪽으로 계속 걸으며 오후 3~4시 사이의 햇살을 듬뿍받고 익어가는 central park의 아름다운 단풍을 원없이 감상하였다.

시합 전 이틀동안의 불면, 15시간의 지루한 비행, Staten Island의 추위와 바람속에서 웅크렸던 5시간의 기다림, 4시간 9분 동안의 고통스런 달리기를 보상하고도 남을만한 central park의 환상적인 단풍의 아름다움을 1시간 동안 천천히 걸으면서 감상하였다. 이렇게 하나님은 긴 고통과 그 고통을 잊을만큼의 짧은 행복을 주시는구나, central park의 산책길을 똑같이 은박지 보온퍼대기(뉴욕마라톤의 로고가 사방무늬로 디자인돼서 그런대로 멋진)를 두르고 걸어가는 완주자들의 행복한 표정들.

눈이 마주치면 무조건 웃는 표정으로 눈 인사를 하는 세계 각국의 완주자들. 마라톤이라는 육체적인 극한 상황이 연출해내는 국경을 뛰어넘는 말이 필요없는 인간들끼리의 공감대. 내가 느꼈던 해외 원정 마라톤의 맛은 바로 결승선 뒤의 국경과 남녀노소를 뛰어넘는 인간들끼리의 눈 인사 속에 있었다.

비록 순간의 격정일지라도 좋다. 그 순간에 느꼈던 넉넉하고 풋풋하고 감사에 넘치던 가슴으로 살아보련다.
85번가에서 한국인 선수단과 합류하여 다들 절뚝거리며 버스위에 올라가서 휴식을 취하고 뉴저지 용수산에 가서 한국 음식을 먹고 호텔로 돌아갔다.

여성주자 한 분은 그날 2년간의 연습 끝에 첫 완주를 5시간 이상으로 마치고 자꾸만 울었다. 모두들 축하해 주고 격려해 주었다. 김완기 선수를 비롯하여 3시간 미만에 풀 코스를 주파하는 분들이 5명이 있었다(우리나라에 약 50~100명 정도 있다고 들었다). 뉴욕 한인 마라톤협회장인 브라운 유라는 분은 56세인데 2시간 46분만에 들어와서 모두의 부러움을 샀다.

성격도 겸손하고 자상하셔서 인기를 한 몸에 받았고, 김완기 선수는 역시 소문대로 과묵 그 자체였다. 화려했던 선수생활을 마감하고 겸손하게 일반 참가자들과 어울리는 그가 진짜 훌륭한 마라토너라고 생각되었다. 22명 참가자 중 나같은 의사가 4명이나 되어서 의사들의 마라톤 분야에서의 활약이 꽤 두드러진 느낌이었다.

새벽 4시에 움직이기 시작하여 모든 일정을 마치고 잠자리에 든 시간은 밤 11시였다. 정말 긴 하루였다. 그런데 너무 피곤해서 또 잠이 안왔다. 전세계의 아름답고 건강한 남녀들과 어깨를 나란히 겨루면서 뉴욕시내 다섯개 구역 전체의 교통을 완전히 통제시켜 놓고 발로 밟아보고 마지막으로 central park에서 뉴밀레니엄 첫해의 가을을 만끽하면서 4번째 풀코스 도전을 생애 최고기록으로 마감한 기쁨은 오랫동안 잊혀지지 않을 것 같다.

다음날(11월 6일 월요일) 뉴욕타임즈에는 3만명 중 석차 1만2,965등 Kim, S. 47male 4:13:57로 인쇄되어 나왔다. 나와 official time 4시간 13분 57초로 초까지 같은 사람이 10명이었다.

뉴욕 마라톤을 뛰면서 어떤 런너가 등에다 써 놓은 글씨가 인상적이어서 이번 마라톤을 통하여 자녀들이나 학생들이나 또는 늙어가는 모든이에게 남기는 메시지로 전하면서 이 글을 마친다.
"If you can dream if, you can do 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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