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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텔 디유(Hotel Dieu)병원

오텔 디유(Hotel Dieu)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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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5.03.16 0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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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년의 세월을 살아 온 박물관

파리를 방문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빠지지 않고 찾는 곳이 몇 군데 있는데 그 중 하나가 노트르담 성당이다. 노트르담 성당은 성모성당 정도로 번역할 수 있는데 사실 이런 이름을 가진 성당은 프랑스 전역에 수없이 많다.

어쨌거나 파리에 있는 노트르담 성당은 세느강 한 가운데 있는 작은 섬인 씨떼 섬에 자리잡고 있다. 세느강 자체가 한강에 비할 바 못되는 작은 강이므로 그 가운데 있는 씨떼 섬도 여의도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 작은 섬이다. 그러나 원래의 파리시가 바로 이 씨떼 섬에서 기원했으므로 이 작은 섬의 구석구석에 만만치 않은 역사가 숨쉬고 있다.

무심히 걷다가 힐끗 올려다본 집 대문의 한쪽 구석에서 '아벨라르와 엘로이즈가 살던 집'이라는 작은 팻말이 붙어 있는 것을 보는 순간, 시간은 이미 수세기를 거슬러 올라간다. 아무튼 관광객들이 빠짐없이 찾는 노트르담 성당 앞에는 우리나라의 광개토대왕에 해당하는 샤를마뉴 대제의 청동기마상이 있고 그 맞은 편에 가로수에 가려 입구가 잘 보이지 않는 건물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150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오텔 디유 병원이다.

카톨릭 국가인 프랑스(공식적으로 교회와 국가가 분리된 것이 1905년이나 문화와 전통이 그러하다는 의미이다)의 수도 파리는 중세기를 통하여 신학의 중심지였다. 그래서 유럽 각 국에서 내로라하는 신학자들은 모두 파리에 모여 학문을 겨루었고 파리대학 신학부에서 가르치기도 했다. 중세를 통틀어 최대의 신학자였던 토마스 아퀴나스도 이탈리아 출신이었으나 파리대학 신학부의 교수로 활동했다.

이처럼 파리가 신학의 중심지가 되면서 그와 함께 파리 시내에는 이런저런 수도원들이 많이 생겨났다. 그러나 중세기가 지나며 종교적인 열정이 잦아들고 특히 프랑스 혁명 이후 세속화의 물결이 거세지면서 파리 시내에 있던 많은 수도원들을 국가가 접수하게 되는데 그 중 많은 수도원이 병원으로 사용되었다. 지금도 파리 시내에 있는 역사가 오랜 병원들은 이전에 수도원이었던 곳이 많다.

그런데 오텔 디유는 파리 시내의 다른 병원들처럼 원래의 수도원이 '용도변경'을 거쳐 병원이 된 것이 아니라 애초부터 병원이었다.

파리의 오텔 디유가 세워진 시기는 정확하지 않지만 대체로 7세기 경으로 보고 있다. 중세기를 통해 일종의 자선기관으로 가난하고 병든 자들을 돌보던 이 기관은 17세기 푸코가 말하는 대감금의 시기를 거치면서 병자와 함께 각종 빈민과 부랑자들이 들끓는 곳이 되었다. 그 결과 위생 상태나 환경이 지극히 악화되어 그 자체가 도시 전체의 건강을 위협하는 질병의 온상처럼 인식되기에 이르렀다.

파리의 변두리에 자리 잡고 있는 다른 병원들과는 달리 파리 시내 심장부에 병원이 자리 잡고 있다는 사실이 문제가 되었다. 병원이 처음 들어서던 7세기에는 별로 문제가 되지 않았만 점차 파리의 인구가 증가하고 규모가 커지면서 이 병원의 존재가 문제로 대두되었던 것은 많은 사람들이 이 병원으로 인해 세느강이 오염되고 파리 시내 공기가 오염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염려는 근거 없는 것이 아니어서 그다지 넓지 않은 이 병원 안에 적을 때는 2000명에서 많을 때는 5000명의 환자가 수용되어 있었다. 따라서 한 침대에 너댓 명의 환자가 있는 것은 보통이었다. 그래서 18세기에 들어오면 전반적인 병원제도의 개혁에 대한 논의들이 활발하게 이루어지는데 오텔 디유를 몇 개로 분할하여 성밖으로 내보내자는 의견도 제기되었다.

그런데 병원에 대한 개혁에 결정적 계기를 제공한 것은 화재였다. 1772년 12월 29일에서 30일까지 일어난 대화재로 인해 병원이 크게 파괴된 후 새로운 병원 건립을 위한 다양한 공모를 거쳐 현재와 같은 모습의 병원이 세워졌다.

오텔 디유의 안으로 들어가면 건물로 둘러싸인 정원이 나온다. 규모는 크지 않으나 정성스레 가꾼 예쁜 정원이다. 파리에는 이런 정원이 많아 겉에서는 건물밖에 보이지 않는데 막상 건물 안으로 들어가 보면 의외로 잘 가꾼 널찍한 정원이 나타나 놀라는 경우가 많다. 정원 양측으로 있는 건물에 들어가 보면 긴 복도의 벽에는 이 병원의 역사와 관련된 여러 가지 그림이나 사진 자료들이 걸려 있다.

그리고 병원 입구 쪽 벽면에는 커다란 동판이 하나 붙어 있는데 거기에는 1차대전 기간 중 참전했다가 전사한 이 병원 출신의 인턴(interne)들의 이름이 나열되어 있다. 말은 인턴이지만 지금 우리나라의 인턴과는 달리 인턴과 레지던트를 합한 것으로 보면 되는데 병원에 상주하면서 일하며 배우는 수련직 의사를 말한다. 올해는 이 인턴 제도가 만들어진지 200주년이 되는 해로 이를 기념하는 전시회와 여러 행사가 열리기도 하였다.

병원의 옆과 뒤쪽 모습을 보기 위해 병원 밖으로 나왔다. 이 병원은 전체적으로 건물과 건물을 연결한 형태인데 이는 별개의 건물들로 이루어진 전통적인 병원과는 다른 모습으로 이 병원이 비교적 최근에 지어졌음을 말해준다. 오텔 디유를 비롯하여 서양의 병원은 원래 가난하고 불쌍한 사람을 위한 기관이었다. 부자들은 의사들이 왕진을 갔고 어떠한 경우에도 그들이 병원에 입원하는 경우는 없었다. 이것이 적어도 19세기 말 20세기 초까지의 상황이었다.

그러나 병원을 통한 임상의학의 발달과 현대의학이 병원을 중심으로 발전하는 양상을 보이자, 또 엑스레이 기계와 같은 전문적인 의료장비들이 개발되면서 병원에 와야만 이러한 시설들을 이용할 수 있는 상황이 되자 병원은 단지 가난하고 병든 자를 돌보아 주는 자선기관이 아니라 최신의 의학기술이 시술되는 현대의학의 최전선으로 바뀌게 되었다.

그런 의미에서 오텔 디유는 천 년이 넘는 세월 동안 일어난 의학의 발달과 병원의 기능이 변모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살아있는 박물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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