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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악산 자락에 '사랑의 정' 가득 이젠 한가족
설악산 자락에 '사랑의 정' 가득 이젠 한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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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5.03.10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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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회 보령의료봉사상 수상자 이기섭 박사

· 1938년 세브란스의전 졸업                                                                                                              
  속초도립병원 외과과장을 끝으로 현직에서 물러난 그는 고희를 맞아 미국 여행길에 오르게 된다. 그런데 우연히 들른 백화점에서 나이든 노인들이 죽 줄을 서 있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이유인즉 매주 한 번 65세 이상 노인들을 대상으로 무료검진을 해주기 때문이라는 것.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이 백화점에 들른 김에 건강도 체크하는 기회를 제공하기 위함이다. 그때 그는 퇴직 후 자신의 할 일이 바로 이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평생 의사로서 쌓아온 경험과 기술을 퇴직 후 무의촌 진료를 통해 계속 이어나가야 한다는 생각이 그의 머리속을 스쳤다.

  ■ 속초 이기섭 박사

  
매주 목요일, 여든 여덟 고개를 훌쩍 넘은 할아버지 의사인 이기섭 박사는 양양군 서면 서림리행 버스에 몸을 싣는다. 속초 시내에서 직행버스를 타고 양양읍에 도착해 다시 서림리로 가는 시내버스를 갈아타야 하는 번거로움도 마다 않고 그는 벌써 18년째 산간 벽지에서 무료진료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한결같은 이 박사는 수요일부터 마음이 설렌다고 한다. 일주일 동안 자신을 목 빠지게 기다리고 있을 주민들의 얼굴이 하나 둘 떠오르면 얼른 만나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고.

  이 박사가 설악산 기슭의 양양군 서면 서림리, 황이리, 갈천리, 영덕기 주민들을 찾기 시작한 것은 지난 198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속초도립병원 외과과장을 끝으로 현직에서 물러난 그는 고희를 맞아 미국 여행길에 오르게 된다. 그런데 우연히 들른 백화점에서 나이 든 노인들이 줄을 서 있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이유인즉 매주 한 번 65세 이상 노인들을 대상으로 무료검진을 해주기 때문이라는 것.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이 백화점에 들른 김에 건강도 체크하는 기회를 제공하기 위함이다.

  그때 그는 퇴직 후 자신의 할 일이 바로 이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평생 의사로서 쌓아온 경험과 기술을 퇴직 후 무의촌 진료를 통해 계속 이어나가야 한다는 생각이 그의 머릿속을 스쳤다.

  의사의 손길을 받기 힘든 산간 오지를 찾아가 조그만 힘이나마 여력이 되는데까지 돕고 싶었다. 그래서 그는 여행에서 돌아오자마자 왕진가방을 챙겨들었다.

  우선 그는 현직에 있을 때 매년 방문했던 산간 오지들을 찾아 떠나서 나이 든 노인들에게 무료로 안경을 제공했다. 자신 역시 나이가 들면서 시력이 나빠지는 것이 얼마나 불편한지 새삼깨닫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홍콩에 있는 의사인 셋째 딸과 평소 알고 지내던 제약회사의 도움을 받아 마련한 약을 가지고 주민들을 한 사람 한 사람 만나기 시작했다. 그의 환자들은 대부분이 나이 지긋한 노인들이다. 게다가 어려운 시절 고생한 사람들이기 때문에 골다공증을 앓는 경우가 많다고

  “처음 진료를 시작했을 때, 마을 이장님이 한 노인을 소개해 주셨습니다. 백내장으로 앞을 보지 못하는 분이었어요. 상태가 무척 심각해서 인근 대도시의 종합병원으로 옮겼지만 시기가 늦어서 수술을 해도 별 효과가 없더군요. 그때 다시 한번 이 일의 중요성을 깨달았습니다. 조금만 일찍 진료를 받았더라면 충분히 고칠 수 있는 병인데…”

  산간 오지 사람들에게 이 박사는 너무나 고마운 사람이다.

  아픈 곳을 제대로 짚어주고 약을 가져다주는 것은 물론이고 술을 좋아하는 사람을 위해 소주를 챙겨가기도 하고 작은 사탕이라도 준비해 사람의 따뜻한 정을 나누어 주고 오기 때문이다. 그러니 주민들과 가족 이상의 끈끈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고. 최첨단 시설의 병원에서 진료를 받는 것보다 그의 손길이 훨씬 낫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면 그는 말로는 표현할 수 없이 큰 힘을 얻는다.

  “무료 진료 활동을 하면서 저 역시 배우는 것이 너무도 많습니다. 저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으니 마음이 너무 즐겁고, 그들을 찾아가는 길목의 산이며 물을 통해 사계절의 변화를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으니까요. 사람과 자연이 저를 치유해주는 힘입니다.”

  이 박사는 서울 적십자병원 부원장과 이화여자대학교 부속병원 부원장으로 재직하다가 홀연히 1962년 속초로 이사했다. 사랑을 나누는 기독교 정신을 몸소 실천하고자, 그리고 방학 때 계속했던 설악산 구호반 활동을 현지에서 직접 하고자, 아무 연고도 없는 이곳을 찾았다. 그의 유일한 평생의 업인 의술을 그가 좋아하는 곳인 설악산 자락에서 펼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그는 좋은 자리를 다 마다할 수 있었다.

  그리고 또 하나, 그의 어머니는 현재의 그를 있게 장본인이다. 의사가 된 것도 사람들에게 인술을 베푼 것도 어머니의 영향이 크다. 황해도 산골이 고향인 그는 해주고보 2학년 때 어머니를 잃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간경화가 아니었을까 싶단다. 당시 한 군에 공의(公醫) 한사람이 있으면 다행일 정도로 열악한 상황에서 의사의 치료 한 번 못 받고 어머니는 돌아가셨다. 그래서 그는 공과를 가려다 의과로 마음을 돌렸다.

  “어머니는 살아생전 사람들을 참 좋아하셨어요. 다들 뻔히 어려운 살림 가운데서도 음식 하나를 해도 넉넉히 해서 이웃을 나누어 주셨고 어려운 사람들은 그냥 지나치시는 법이 없었어요. 작은 마음 씀씀이 하나 하나가 다 기억되는 걸 보면 자라면서 그 모습을 이어가고자 애쓴 것 같아요.”

  최근 의약계의 논쟁이 되고 있는 의약분업을 바라보며 그는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된다. 의사들의 파업으로 갑자기 자신에 대한 이야기가 부쩍 신문기사에 실리는 상황이 부끄러울 따름이라면서 모두의 현명한 판단을 바란단다.

  아흔을 바라보는 나이에 이르다보니 너무 급하게 모든 일을 추진하면 체하기 마련인 것이 세상 사는 이치라는 걸 알았다고, 차근히 단계를 밟아나가는 것이 조금 더디 가도 제대로 이르는 길이라는 말도 잊지 않는다.

  그는 매일 손에서 책을 놓지 않는다. 특히 한 일본 제약회사에서 보내주는 잡지는 그에게 최신 의학정보를 제공해 주는 소식통이다. 자신이 나이 든 의사임은 분명하지만 그의 의술까지 나이를 먹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다. 그리고 계속 공부를 해야 그의 체력이 다 하는 그날까지 환자들을 만날 수 있으니 밥을 거르지 않듯 공부도 게을리 하지 않는다.

  어찌 보면 자신의 몸을 가누며 지내기에도 많은 나이, 환자들을 만나러 가는 일이 쉽지는 않을 터인데 그는 여든 여덟이라는 나이가 무색할 만치 건강하다. 그가 오래도록 양양군 서면 주민들과 인술과 더불어 사랑을 함께 나눌 수 있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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