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계없는 대합실'의 주인
'시계없는 대합실'의 주인
  • Doctorsnews kmatimes@kma.org
  • 승인 2005.03.10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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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회 보령의료봉사상 수상자 홍사용 원장

· 1914년 충남 당진 출생
· 1987년 5월25일 별세  

  보건지소장으로 취임한 이래 가장 중점을 두었던 사업중의 하나가 주민들에 대한 보건교육이다. 매달 2회씩 관내의 5개 국민학교를 순회하며 보건 교육과 무료 진료를 실시하는 그의 정성으로 정안면 주민들은 보건의식을 갖게 되었다.

 

 

  ■ 충남 정안 보건지소 홍사용 소장

  공주로 정암면 광정리의 보건지소는 ‘시계없는 대합실’이다. 시계가 없으니 언제든지 찾아가 언제까지고 그 주인과 대화를 나눌 수 있다. 그래서 주인이 손님 같고 손님이 주인 같은 곳이 이 대합실이다.

  시계 없는 대합실의 주인 홍사용 소장이 이곳 공주로 부임한 것이 1959년 3월이니 30년에 가까운 세월을 이곳에서 보낸 셈이다.

  산도, 물도, 들도, 모두 넉넉한 정안면 광정리는 공주에서 서울로 가는 길에 볼 수 있는 마음인데, 바로 이곳에 ‘시계 없는 대합실’의 홍사용 소장이 정안면 보건지소장으로 일하고 있다. 어느 타양살이가 쉬울까만 홍사용 소장의 30년 세월은 이제 그를 누구보다 이 지역을 사랑하고 아끼는 사람으로 만들어 놓았다.

  ‘시계 없는 대합실’에서 그와 얼굴을 마주한 적이 있는 사람이면 다 알겠지만 홍사용 소장은 정안면의 모형도에 ‘한국 보건의 발상지’라는 작은 팻말을 붙여 놓았다.

  자전거를 타고 산길과 들길을 달리며 지역 주민들을 잘 살고 건강하게 살기 하기 위한 30년 세월이 이제 그를 70을 넘어선 노의사로 변하게 했다. 그러나 그는 아직도 분주하게 이 마을 저 마을을 오가며 일하는 즐거움에 산다.

  이러 저러한 일들로 그는 이제 상당히 알려진 사람이 됐으나 ‘의사도 평범한 인간’이라는 홍소장은 정안면의 1만여 주민 가운데 평범한 주민이고 싶어한다. 공주에 있는 정신병 환자 수용소의 환자들에게 보낼 옷가지와 양말을 싸는 그의 손길이 이 정안면 곳곳을 매만져 온 바로 그 손길이다.

  이곳에 전기를 끌어 들이고, 전화를 끌어 들이고 큰 길을 놓고 하는 궂은 일, 좋은 일에 발벗고 나섰던 그가 요즘에는 학생들이 열심히 공부하는 모습을 보길 즐겨한다. 그래서 지난 79년에는 보건소 2층에 자비로 도서실을 꾸며 놓고 학생들이 언제든 들어와 책을 보고 공부할 수 있게 새마을 독서대학을 만들어 놓았다.

  그가 이 마을에 삶의 뿌리를 내리며 해 온 일들은 이루 헤아릴 수가 없다. 정암면 박춘섭 면장이나 윤석현 지서장이 입을 모아 ‘정암면의 슈바이처’라고 하는 말이 아니더라도 그의 얼굴에선 그 세월의 흔적을 엿볼 수가 있다.

  그러나 홍사용 소장의 손길이 정안면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다. 3년 전에는 옷 10,000여점을 수집하여 소록도 나환자촌에 전달하기도 했다. 그쪽에서 보내달라고 요구한 것도 아니지만 옷이 부족하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은 홍 소장은 새벽 5시에 옷을 실은 트럭을 타고 출발, 새벽 1시에 도착하여 전해 주기도 했다.

  정안면 보건지소장으로 취임한 이래 가장 중점을 둔 사업 중에 하나는 주민들에 대한 보건교육이다. 특히 매달 2회씩 관내의 5개 국민학교를 순회하며 보건 교육과 무료 진료를 실시하는 그의 정성으로 정안면 주민들은 이제 우리나라에서 으뜸가는 보건의식을 갖게 되었다. 병을 치료하는 일도 물론 중요하지만 철저하게 예방을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평소의 신념을 실행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병들기 쉽고 자주 아픈 노인들의 복지를 위해서도 크게 마음을 쓴다. 10여년 동안 노인회 회장직을 맡고 있는 그는 노인회를 거의 자비로 운영하고 있다. 또 요즘에는 농기구사고, 농약사고, 독사에 의한 사고 등을 뿌리뽑기 위해 철저한 예방책을 강구하려고 연구하고 있다.

  주민들의 보건을 담당한 보건지소장으로서의 역할 뿐이 아니라 그는 이 곳을 완전히 자기 고향으로 만들고 있다.

  보건소가 있는 광정(廣亭)리에 정자가 없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며 이리저리 쫓아다녀 기어코 큼직하고 시원스런 정자를 만들어 놓았다. 이 정자를 세우기 위해 그는 본의 아니게 거짓말을 했다. 이 마을에 있던 정자가 임진왜란 때 불에 타 없어졌다고, 그러나 홍소장은 그의 말이 마을 이름으로 보아 전혀 근거가 없는 이야기는 아닐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다. 뿐만 아니라 청전 이상범 화백의 출생지도 발굴해 냈고 3·1운동 당시의 정안면 출신 27의사(義土) 만세비 건립을 추진하는 등 홍사용 소장은 이 고장의 역사까지 자기화(自己化) 시키려고 노력하고 있다.

  특히 보람 있었던 일은 김옥균 선생의 고향 집터를 발굴해 낸 일이다. 일본에 망명한 김옥균은 고향을 그리며 이런 시를 썼다. ‘해마다 먹을 팔며/병주 땅 지나누나/내 집은 저 북두칠성 아래/칼은 남창 일각에 걸렸어라.’ 김옥균이 그리워 하던 고향, 광정리 감나무골의 옛 집터를 찾아낸 홍 소장은 손수 열쇠를 간수하며 보살피고, 그의 사상을 연구한다. 홍 소장은 ‘시계없는 대합실’에는 김옥균 선생의 글씨가 걸려 있어 김옥균 선생을 기리는 홍사용 소장의 마음을 엿볼 수 있다. 홍 소장은 ‘김옥균 선생의 옛 집터에 다시 집을 세워 그의 넋을 기리고 싶다’고 한다.

  홍사용 소장이 보건·의료사업뿐만 아니라 이 지역의 역사·문화에 크게 관심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그를 알고 있는 사람들은 다 안다. 그 자신이 지난 1978년에 열린 제24회 백제 문화제 백일장에서 한시부(漢詩部) 장원을 차지할 정도의 글솜씨도 지니고 있다.

  그의 봉사활동이 알려짐에 따라 각계에서 홍사용 소장에게 감사패와 표창장을 전달해 왔는데 그 숫자를 헤아리기 힘이 들 정도이다.

  베풀기 좋아하는 홍 소장의 사람됨 탓이겠지만 그는 마치 무소유를 실천하는 사람같다. 전에 웅진 봉사상이란 상을 받을 때 상금 20만원을 함께 받았다. 그는 이 상금을 농협을 1년간 저금해 두었다가 사재 40만원을 보태 새마을 문고를 만들기도 했다. 그것이 바로 보건소 2층의 마을 문고다. 그는 이 마을 문고를 만들어 놓고 어린이 도서 헌장을 정해 독서하는 어린이 상을 세워놓기도 했다. 또 여느 사람들 같으면 외국 여행을 하고 돌아올 때 작은 선물이라도 사오겠으나, 홍사용 소장은 병에 그 나라의 흙을 퍼 담아 올 뿐이다. 홍 소장은 “사육신의 글씨를 소장하고 있는데 사후에는 박물관에 기증할 작정”이라며 어린아이처럼 웃는다.

  이제 그는 누구보다 더 철저한 정암면 토박이가 되어 있으며 정암면 주민으로 이 땅에 묻히고 싶어한다. 일생을 이 지역주민들을 위해 바친 홍사용 소장의 얼굴에는 보람된 삶을 살아온 자신감이 넘쳐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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