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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2024-03-29 21:36 (금)
정창원의 인삼
정창원의 인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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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5.02.16 1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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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살 나이를 먹은 인삼이 있는 곳

호류지에 들러 나라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1시 경이었다. 간단히 점심을 때우고 도다이지(동대사)로 올라갔다. 도다이지 가는 길에 유명한 사슴공원이 있다. 여기저기 무리지어 한가롭게 노닐고 있는 사슴을 보고는 아이들이 좋아한다. 처음에는 조금 겁을 내더니 다가가서 쓰다듬어 주기도 하고 뿔도 만져본다. 도다이지 앞은 조용하고 정돈된 호류지 앞과는 달리 관광객들로 북적이고 상가들도 번잡스럽다. 우리나라의 유명 사찰 주변에서 보는 소란스러움이 여기서도 그대로 보인다. 도다이지 본전은 세계에서 가장 큰 목조건물이라는 평가답게 엄청나게 큰 규모를 자랑한다. 본전 안의 불상도 어마어마하게 크다. 이것 역시 세계 최대의 청동불상이라고 한다. 거대함이 경이감을 불러일으키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도다이지가 보여주는 거대함은 작위적이고 정치적인 목적이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거대함이다. 도다이지의 역사를 잘 모르지만 무척 정치적인 색채가 짙은 절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청동대불 뒤쪽으로 돌아가다 보니 기둥 아래에 있는 구멍을 어떤 아가씨가 기를 쓰고 통과하려고 한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구멍의 크기가 본전 불상의 콧구멍 크기와 같은데 거기를 통과하면 1년 동안 운이 좋다고 해서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한다는 것이다. 본전을 둘러보고 나오려는데 마침 소나기가 쏟아졌다. 처마 밑 돌계단에 앉아 비가 그치기를 기다렸다. 족히 이십 미터는 되어 보이는 처마 끝에서 아래로 시원스레 떨어지는 낙수가 볼 만 했다.

잠시 후 비가 그치자 도다이지의 소란스러움을 뒤로 하고 절 뒤로 난 작은 길을 따라 일본 왕실 보물창고인 정창원으로 향했다. 정창이란 나라 시대의 사원이나 관청에 있는 창고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을 가리키며 그 일부를 정창원이라 불렀다. 현재 남아 있는 것은 도다이지의 정창원뿐이어서 정창원이라고 하며 의례 도다이지의 정창원을 말한다. 도다이지를 세운 쇼무 천왕이 죽자 고묘 왕후가 천황이 애용하던 물품을 도다이지에 헌납했는데 이것들이 정창원에 수납되었다. 이후에도 도다이지의 보물이나 귀족들의 기증품을 보관하여 오늘날 일본이 세계에 자랑하는 보물창고가 되었다. 특히 여기에서 8세기 신라 4개 촌락의 장적이 발견되어 신라사 연구에 큰 도움을 주고 있다. 정창원 앞에 도착하니 막 관리직원이 문을 잠그고 나오고 있었다. 하루에 몇 시간밖에는 개방하지 않으므로 일찍 문을 닫는 것이다. 소나기 때문에 시간을 지체한 탓이었다. 정창원에 보관된 유물은 일년에 한차례만 공개되기 때문에 어차피 건물의 겉모습밖에 보지는 못하지만 그나마도 문이 잠겨 먼발치에서 볼 수밖에 없어 아쉬웠다.

정창원에 보관된 왕실보물에는 공예품, 전적, 악기, 무기 등 그 가운데서 우리의 관심을 끄는 것은 각종 약재들이다. 정창원 소장품 목록에 의하면 55가지의 각종 한약재가 보관되어 있다. 천수백 년 전의 약재가 지금까지 그대로 보관되어 있는 것이다. 특히 목록대장에 따르면 인삼은 그동안 7회에 걸쳐 창고에서 나와 사용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최근에 이루어진 조사에 따르면 목록에 기재된 인삼은 진짜로 인정할 수 없고 오히려 다른 이름으로 기록된 것이 진짜 인삼이라고 한다. 어느 뿌리가 진짜 인삼이건 천 년 이전의 인삼이 아직까지 실존한다는 사실이 놀랍다(정창원에 수장된 유물의 사진은 정창원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볼 수 있다. 인삼을 포함한 각종 약재들의 사진도 모두 볼 수 있다(홈페이지 shosoin.kunaicho.go.jp). 이 인삼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 어차피 당시 일본 땅에서는 인삼이 나지 않았기 때문에 중국이 아니면 한반도에서 왔을 것이지만 위치나 당시 상황으로 보아 한반도에서 온 인삼이 분명하다. 한반도에서 인삼이 언제부터 나기 시작했으며 약초로서의 가치를 언제부터 인정받기 시작했는지를 알려주는 자료는 없다. 한반도에서 나는 인삼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천오백 년 전 양나라의 도홍경이 편찬한 '신농본초경집주'에 처음으로 나타난다. 그 기록을 옮기면 다음과 같다. "인삼은 백제산을 중히 여긴다. 형태가 가늘며 단단하고 흰색이다. 맛은 상당산보다 얕다. 다음은 고(구)려 것을 치는데 고(구)려는 요동지역이다. 형태가 크며 허하면서 부드러워 백제산에 미치지 못한다." 여기에 덧붙여 도홍경은 고구려인이 지은 인삼에 대한 노래까지 우리에게 전해주고 있다. "갈라져 나온 줄기 셋에 잎이 다섯, 햇빛을 등지고 그늘을 향하네." 이 인삼찬(人蔘讚)은 인삼의 형태적 특징과 자라는 곳의 특징을 노래로 잘 표현하고 있다. 한반도에서 인삼재배가 시작된 것은 조선시대에 들어와서이므로 이 때의 인삼은 지금 말하자면 모두 산삼에 해당한다. 이처럼 백제와 고구려에서 나는 인삼의 명성은 5세기의 중국 본초학자가 기록해둘 정도로 대단한 것이었다. 특히 백제와 일본의 긴밀한 관계를 생각해본다면 정창원에 보관된 인삼이 백제에서 온 것이라고 주장해도 전혀 무리가 없을 것이다.   

인삼에 대한 기록이 처음 등장하는 것은 지금부터 약 이천여 년 전인 전한시대이다. 전한시대 '급취장'이라는 책에 처음 등장한 인삼은 이후 각종 사전이나 의서, 박물서 등에 광범위하게 등장한다. 특히 인삼은 중국의 의서에서도 중요한 약물로 취급된다. 그럼 인삼의 원산지는 어디일까? 중국에서는 지금의 산서성 태행산맥 아래에서 나는 상당산 인삼을 제일로 치고 그곳을 인삼의 기원지로 본다. 그러나 최근 필자가 몸담고 있는 과에서 연구한 바에 따르면 상당에서 나는 중국 인삼은 우리가 지금 알고 있는 진인삼(Panax ginseng)이 아니고 다른 종류의 유사한 삼이다. 또 한문의 '삼(蔘)'이라는 말도 인삼을 뜻하는 우리 고유어인 '심'을 한자로 가차한 것으로 생각된다. 따라서 진인삼의 기원은 한반도와 만주이며 이것이 중국으로 건너가 명성을 얻은 것으로 추정된다. 만약 중국에서 나는 상당산 인삼이 최고라면 지난 수백 년 동안 중국인들이 자기 땅에서 나는 인삼을 두고 조선의 인삼을 그토록 선호해온 사실이 설명되지 않는다. 중국 시장에서 조선인삼은 항상 가장 고가로 거래되었던 것이다. 인삼에는 여러 종류가 있으며, 또 산지에 따라 효능에 많은 차이가 있다. 예컨대 미국은 19세기부터 인삼을 재배해 홍콩과 중국 등지로 수출했는데 미국산 인삼은 조선인삼에 비해 시장에서 1/10 정도의 가격밖에 받지 못했다. 효능이 조선산 인삼에 비해 현저히 떨어지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한때 미국 농무부는 19세기 말 당시 한국의 공사로 있던 알렌을 통해 한국의 인삼뿌리를 공수 받아 미국에서 재배를 시도하였으나 인삼은 토질에 지극히 민감한 식물인지라 성공하지 못했다.

인삼은 특별한 약초임에 분명하다. 하나의 약초가 이천 년이 넘는 장구한 기간 동안 변함없이 귀한 약재로 인정받고 지금도 여전히 그 효능이 연구되고 있다는 사실은 놀랍다. 그리고 천 년도 훨씬 이전 한반도에서 난 인삼의 현물이 오늘날까지도 일본에 남아있어 볼 수 있다는 사실은 더욱 놀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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