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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창립]의료개혁 원년 선포/의료계 자율정화

[2000창립]의료개혁 원년 선포/의료계 자율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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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0.11.15 1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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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상익(서울의대 교수·의사학)

풀어야 할 과제 '윤리성 회복'

 

 

지석영 선생의 우두술 시술(1879년)로부터 보자면 이 땅에 근대의학이 도입된지도 120년을 넘어섰고, 대한의사협회의 모체인 의사연구회(醫事硏究會)의 결성(1908년)을 `의사운동'의 효시로 본다면 그 또한 100년을 헤아리게 되었다.


이 100여년의 기간 동안 우리나라 의학과 의사사회에는 수많은 변화와 발전이 있었지만, 필자는 역사를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올해의 `의사 대투쟁'을 가장 중요한 사건 가운데 하나로 꼽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2000년 의사 대투쟁'은 의료계 뿐만 아니라 한국사회 전체로도 엄청난 파장을 불러일으켰을 뿐만 아니라 장기적 영향도 지금의 충격만큼이나, 아니 그 이상일 것이라는 점에서 그러하다.

`의사 대투쟁'은 국민들에게는 의료의 중요성과 우리나라 의료의 문제점을 널리 인식시키는 성과를 거두었고 의료계내에서는 의사의 정체성에 대해 깊은 성찰을 하는 계기가 된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의사직은 고대문명 이래 어느 시대 어느 사회에서나 가장 중요한 전문직으로서의 위치를 차지해 왔다. 전문직의 특성은 전문성과 윤리성으로 요약할 수 있으며, 그러한 특성은 고대 그리스의 `히포크라테스 선서'나 고대 인도의 `의사 선서'에서부터 찾아볼 수 있다.

의사는 한편으로는 일반인들에서는 기대할 수 없는 전문적 지식과 기술을 오랜 학습과 수련 과정을 통해 습득해 왔으며, 또 한편으로는 그러한 전문적 지식과 기술에 버금가는 높은 도덕성과 윤리성을 개인적으로 집단적으로 형성해 오면서 사회의 지지와 인정 받기를 노력해 왔다.

이미 고대 사회에서 의사의 윤리성을 얼마나 강조했는지는 `히포크라테스 선서'의 다음 귀절들을 보아도 잘 알 수 있다. “의사의 규범을 선서한 학생들에게만 교범과 구두 지시와 다른 모든 가르침을 전하고 그밖의 다른 누구에게도 전하지 않을 것입니다, 나는 그렇게 하도록 요청받을 때라도 누구에게든 독약을 투약하지 않을 것이며, 이제 내가 이 선서를 지켜 나가고 그것을 깨뜨리지 않으면 내 삶과 내 기술로 모든 사람 사이에서 영원히 명성을 얻게 되고, 만일 내가 그것을 어기고 맹세를 저버린다면 그 반대가 나에게 닥칠지어다.” 그러한 모습은 고대 인도의 `의사 선서'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네 자신의 목숨이 위태롭다 해도 전적으로 환자에게 헌신하여라. 생각만으로도 환자에게 해를 주지 말 것이며 늘 네 지식을 완벽하게 하도록 노력하여라, 네가 이를 지킨다면 신은 너를 도와 주실 것이요, 그렇지 않다면 신은 너를 벌하리라.”

이렇게 엄격한 윤리성을 뛰어난 전문기술과 더불어 강조하였지만, 사회가 의사들을 처음부터 지지한 것은 아니었다. 의사들이 면허제도에 의해 의료에 대한 독점권을 완전히 인정받게 된 것은 가장 빠른 서유럽에서도 19세기 중반의 일이었고 다른 나라들에서는 그 이후에야 가능한 일이 되었다.

미국의 경우를 보자. 미국의 `정규의사'들은 19세기 중엽부터 20세기초에 이르는 기간 동안 동종요법사나 약초치료사와 같은 `유사의료인'들과 치열한 투쟁을 벌였다. 그들이 그 투쟁에서 결국 승리하게 된 것은 국민들로부터 신뢰를 얻었기 때문이며, 그렇게 된 데에는 세균학과 외과술 등 당시 발전하던 `과학적인' 의학 지식과 기술도 중요하게 작용했지만 그것과 더불어 의사사회 내부의 자율정화 노력도 큰 몫을 했다.

그래서 국민들의 지지를 이끌어냈고 의사들의 `직업적 권위'를 확립하게 되었다. 이런 식으로 미국 의사들은 스스로의 권위와 권리를 `쟁취'해 왔고 `형성'해 왔으며, 국민들은 그것을 `부여'해 온 것이다. 그리고 그 성과물 가운데 하나가 오늘날 많이 언급되는 미국의사협회의 윤리지침(Code of Medical Ethics)이다. 이러한 사정은 유럽의 경우도 비슷하였다.

`의사 대투쟁'은 다른 요인들도 함께 작용했지만 주로 전문성의 침해에서 비롯된 것이고 국민들도 그 점에 대해서는 상당히 공감하는 것처럼 비친다. 그럼에도 국민들의 절대적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는 데에는 파업이라는 투쟁의 방법 및 그 기간과 더불어 의사들의 윤리성에 대한 불신 내지는 회의가 작용하는 것 같다. 의사들은 그 동안의 파행적인 의료를 거의 모두 재정부담 부족과 과다한 규제 등 정부의 실정 탓으로 돌렸다.
예를 들어 부당한 방법의 이익 취득을 주로 원가에도 미치지 못하는 보험수가에 전가하였다. 그리고 그런 점에서 국민들을 설득하는 데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기도 했지만, 국민들은 의사들의 주장과는 달리 모든 것이 정부의 잘못 때문이라고는 여기지 않는 듯하다.

“그렇게 하도록 요청받을 때라도 누구에게든 독약을 투약하지 않을 것”이라는 `히포크라테스 선서'의 귀절처럼 잘못된 제도와 정책 하에서도 의사들 나름의 주체적이고 윤리적인 모습을 기대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대다수 국민들이 드라마 속의 `허황된' 허준의 모습을 바라는 것은 결코 아니라고 생각한다. 물론 윤리적으로 살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어야만 윤리적인 행위도 가능하다.

그러나 인간은 환경의 규정을 받으면서도 그것을 뛰어넘는 존재이다. 특히 전문직임을 자임하는 개인과 집단일수록 그러해야 한다는 것이 인류사회의 모습이다. 이것은 의사들에게 당위일 뿐만 아니라, 그 이전에 생존의 법칙이고 지혜이기도 하다.

`의사 대투쟁' 기간 동안 자성의 목소리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대개는 추상적이고 원론적이고 선언적인 것이고 진실이 별로 담기지 않은 것으로 국민들에게 비쳤다. 이런 형편에서 우리 의사들은 진정으로 자성과 자정의 노력을 벌여나가야만 할 것이다. 무언가 새로운 모습을 보여 주어야 하는 것이다.

그럴 때 오히려 국민들이 의사들에 앞서서 “그것이 어떻게 의사들만의 탓이냐. 그렇게 된 데에는 구조적인 잘못이 더 크다”는 식으로 의사들의 현실을 이해하고 의사들의 주장에 더 큰 힘을 실어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국가의 형벌권에 비견되는 `자율적 징계권'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필자는 지금 그러한 주장이 받아들여지기를 기대하는 것은 현실과 너무나 멀다고 생각한다.

또 의료계가 자정을 위해서 국가의 형벌권과 같은 `무기'를 반드시 가져야만 한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의사사회 내부에 윤리적 기준(의사윤리지침)이 확고히 서고 그 실천 주체(윤리위원회)가 의사들과 사회로부터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다면, 정부기관에 의한 `의사면허 박탈'보다 `회원자격 정지'가 더 무서운 형벌이 될 수 있다. 그리고 그러할 때에야 비로소 국가로부터 징계권도 얻어낼 수 있을 것이다.

요컨대 의료전문직이 사회로부터 정당성을 확보하는 요소는 전문성과 더불어 윤리성이다. 그것이 의사들 스스로의 노력으로 확립될 때 자율성도 확보되고 `국민을 위한, 국민과 함께하는 의료개혁'을 통해 국민건강권도 신장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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