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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창립]의료개혁 원년 선포/올바른 의약분업 정착
[2000창립]의료개혁 원년 선포/올바른 의약분업 정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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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0.11.15 1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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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욱(서울의대 학장)

"원칙은 협상 대상 아니다"

 

 

의약분업이 시작된지도 벌써 3개월이 지났지만 아직도 의약분업의 시행에 대한 의료계·약계와 정부간의 뜨거운 논란이 지속되고 있다.


의약분업은 의사와 약사의 업무한계를 분명히 하여 의약품의 오·남용을 막아 국민의 건강을 증진시킨다는 명분으로 추진되었다. 좋은 명분으로 추진되었던 의약분업이 시행 3개월이 넘도록 의료대란을 일으키면서도 아직도 정착되지 못한 이유는 무엇인가?

가장 큰 이유는 정부가 준비도 갖추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원칙에서도 크게 훼손된 의약분업안을 무리하게 밀어 부쳤기 때문임을 부인할 수 없다. 의약분업을 시행하려는 정부의 의지는 강력하였으나 불행하게도 우리 사회는 이를 시행할 제도적·구조적인 여건을 전혀 갖추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정부의 안이 발표되자 당시 의료계를 비롯한 사회에서는 정부안의 중대한 문제점을 지적하고 정부가 주장하는 `선시행, 후보완'은 전국민을 대상으로 실험을 하는 것과 다름이 없으니 `선보완, 후시행'할 것을 강력히 주장하였고 정부의 안대로 시행하려면 일정 지역에서 시범사업을 먼저 하여 그 결과를 보고 전국으로 확대할 것을 주장하였으나 당시 정부는 이를 애써 외면하였으며, 오히려 전문성이 결여된 시민단체에 재정지원까지 해가면서 정부안의 홍보에만 열중하였다.

우리나라의 의약분업 추진사를 간단히 보면 1994년 당시 정부는 의약분업을 도입하기로 하고 이에 관련된 약사법을 개정하였다. 그러나 1985년에 이미 목포와 보성지역에서 시범사업을 해보고 실패한 경험이 있고, 이에 대한 보완이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법 제정만으로 의약분업을 추진한다는 것은 어렵다고 판단하여 준비기간을 두기로 하고 약사법 부칙에 의약분업을 1997년에서 1999년 사이에 시행한다고 명기하였다.

그러나 1997년이 되어도 의약분업을 실시할 여건은 여전히 마련되지 않았고 이를 인식한 당시의 정부는 의약분업을 2005년까지 9년간에 걸쳐 단계적으로 실시하기로 결정하였다. 즉 3년씩 3단계로 나눠 필요한 제도와 장치를 마련하고, 단계별로 의약분업 대상이 되는 의약품을 분류해 나간다는 계획이었다.

그러나 1998년 현 정부는 특별한 준비도 없이 의약분업을 6년 앞당긴 1999년 7월에 강행하기로 결정하였고, 반발이 일자 이를 1년 연기하여 2000년 7월에 시행하기로 하였으며, 이후는 무리하게 이 입장을 고수하여 오늘에 이른 것이다.

현재 우리 눈앞에서 시행되는 의약분업은 도대체 어떤 문제점을 갖고 있길래 이렇게 표류하고 있는가?
첫째, 의약분업 실시를 위해 개정한 약사법은 의사와 약사의 직능을 분리하여 의약품의 오·남용을 막는다는 의약분업의 근본취지와는 전혀 거리가 먼 것이었다.

당연히 금지하여야할 명백한 불법진료 행위이며 의약품 오·남용의 주범인 약사의 임의조제를 개정된 약사법에서는 도리어 허용하고 합법화시켰다. 또 의사가 처방한 약품을 약사가 대체 조제할 수 있도록 하였다. 더구나 대체 조제약품의 범위를 약국의 약품관리 편의성에 맞추어 제한하고 비전문가가 관여할 수 있게 하였다.

대체조제시 처방한 의사의 동의는 조제 후에 통보로 대신하였고, 이에 대한 조제 기록부 작성을 명시하지 않아 약화사고에 대한 책임소재를 명확히 할 수 있는 법적,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어 있지 않았다. 이렇게 편파적인 약사법 개정은 의사들의 직업적 자긍심을 심각하게 훼손시켰다.

둘째, 약계도 의약분업에 대한 준비가 안 되어 있었다.
약사들은 의약분업을 대비하여 어느 정도의 약들을 구비해야 하는지 파악하지 못하였고, 특히 소규모 동네 약국의 경우 다양한 종류의 약품 구비, 약품관리시스템의 도입, 환자 대기실의 설치 등이 이루어지지 않아 병의원에서 발행되는 처방전의 약들을 조제할 능력을 갖추지 못하였다.

셋째, 의약분업을 시행하는데 소요되는 자금이 확보되지 않았다.
의약분업을 제대로 시행하려면 의료기관은 진찰료, 검사료만으로 생존하여야 하고 임의조제가 없어지는 약국은 조제료만으로 생존할 수 있어야 하며 당연히 엄청난 추가 부담이 따른다. 그러나 정부는 추가부담은 없다고 강변하면서 가뜩이나 열악한 의료재정 상태에서 더 많은 의료비 소요가 예상되는 의약분업을 추가 의료재정의 확보도 없이 추진하였다.

넷째, 의약분업에 대한 국민적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진단·처방·조제가 한 장소에서 이루어지는데 익숙해져 있는 환자들은 처방전을 들고 약을 구입하기 위해 아픈 몸을 이끌고 약국으로 다시 가야한다는 사실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였다. 게다가 약국은 필요한 약들을 미처 구비하지 못하고 있고, 환자들은 아픈 몸으로 약을 구하기 위해 약국들을 전전할 수밖에 없었다.

또한 의약분업 실시로 환자의 의료비 추가 부담이 예상되었으나 이러한 상황을 국민들은 모르고 있었다. 한마디로 의약분업이 환자나 국민들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한 정부의 솔직한 설명이 부족하였고, 따라서 의약분업에 대한 국민적 합의가 없는 상태였다.

준비 안된 의약분업은 시행 초기부터 의료계가 우려하였던 점들을 고스란히 현실로 내보이고 있으며 국민의 입장에서는 불편함 이외에도 추가적인 의료비 부담의 증가, 의료보험료의 인상으로 불만이 높아 가고 있다.

이제 어떻게 하면 올바른 의약분업이 정착될 수 있겠는가?
이 세상의 다른 문제들과 마찬가지로 의약분업이라고 하여 지름길이나 왕도가 있을 수는 없다. 제대로 정착하려면 우선 그 내용이 올바른 것이어야 한다.

올바른 내용의 첫째는 제대로 된 약사법이다. 약물 오·남용의 근원인 약사의 임의조제는 엄격히 금지되어야 하며 대체조제는 생물학적 동등성시험을 거친 약에 한해 허용되어야 하고 이 경우에도 의사가 불가사유를 명시하면 금하게 하여야 한다. 또한 대체 조제시 의사의 사전 동의를 원칙으로 하고 이에 대한 조제기록부를 작성하도록 보완되어야 한다. 전문의약품과 일반의약품의 분류도 다시 하여야 한다.

올바른 내용의 둘째는 의료재정의 확보이다. 더 많은 의료비 소요가 필연적인 의약분업 실시에 재정을 조달하지 못한다면 그 내용이 아무리 좋아도 성공할 수 없는 것이다. 정당한 비용의 부담 없이 좋은 결과를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진료 및 의약품의 원가를 명확하게 산출하고 소요 원가와 적정 이윤이 보장되어야 한다. 정부는 추가 의료재정확보에서 정부의 역할을 분명히 하여야 한다. 사회가 선진국 수준의 제도인 의약분업을 원한다면 그에 상응하는 비용부담을 하겠다는 사회적 합의가 전제되어야 하며, 의약분업의 필요성에 대한 국민의 동의도 구하여야 한다.

올바른 내용의 셋째는 의약분업에서 의사와 약사의 역할에 대한 정직한 이해이다. 의료는 의사 외에 약사·간호사·의료기사 등 다양한 전문인력들의 상호 보완적인 역할로 이루어지는 고도로 전문화된 분야이다. 의료에 관여하는 여러 직종의 전문성은 인정되어야 하지만 의료는 의사의 진료를 중심으로 이루어져야 하며, 환자를 진찰, 진단하고 약 처방전을 발행하는 것 외에 약을 투여한 뒤 환자상태의 변화를 관찰해 나가는 것은 의사의 역할임을 이해하여야 한다.

이렇게 올바른 내용을 가지고 정부는 의료계를 의료정책의 수립과 추진의 동반자로 인식하는 발상의 전환을 하여야 한다. 의료처럼 고도로 전문화된 분야에서 해당분야 전문가의 의견을 존중하지 않고서는 올바른 정책을 추진할 수 없는 것이다.

그 다음은 국민에게 올바른 홍보를 하는 것이다. 올바른 홍보란 이제껏 해왔던 대로 홍보비를 많이 투입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이 겪어야 할 불편, 추가부담을 솔직히 알리고 장점을 설명하여 이에 대한 국민적 합의를 이끌어 내는 작업이 될 것이다. 이 과정에서 세계적 사회추세인 원스톱 서비스 개념이 의약분업에서는 어떻게 받아들여져야 하는지 등도 국민들에게 설명되어야 할 것이다.

의료문제는 이제 의사-환자간의 문제만이 아닌 범사회적 문제이다. 따라서 국민의 건강과 직접 관련된 의료정책은 어느 특정 집단의 이해관계에 따라 또는 이해 당사자간의 타협, 합의에 의해 결정되어서는 안되며 의료의 궁극적인 대상인 환자의 입장에서 결정되어야 한다. 의약분업도 이러한 시각에서 추진되어야 하며 원칙을 협상의 대상으로 삼아서는 결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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