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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창립]의료계 휴·폐업 투쟁/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었나
[2000창립]의료계 휴·폐업 투쟁/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었나
  • 조명덕 기자 mdcho@kma.org
  • 승인 2000.11.15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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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알 모여 거대한 바위로

단단한 결속력 바탕 투쟁 의료환경 개선 새 길 열어

 

 

지난해 11월 30일 장충체육관 집회를 시작으로 전개된 올바른 의약분업을 비롯한 의권쟁취를 위한 투쟁이 1년 가까이 됐다.

그동안 숨죽이고 있던 의료계가 학생부터 전공의·전임의·봉직의·개원의 및 교수까지 세대를 넘어 투쟁의 전면에 나선 것은, 더이상 잘못된 의료정책에 의사들만 희생을 강요당할 수 없다는 자각과 잘못된 의료정책을 바로 잡지 못할 경우 우리나라 의료체계가 붕괴일로를 걷게 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에서 비롯된 것이다.
1년 가까운 투쟁속에 한 때 일부에서 이긴 하지만 ‘국민의 생명을 담보로 자기이익만 주장하고 있다’는, ‘국민의 건강보호와 생명유지’를 최대 선으로 알고 살아온 의사들에게는 치욕적일 수도 있는 모함(?)을 들으면서까지 투쟁을 계속해 온 의료계가 과연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었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의료계 결속’ 큰 소득

아직 의료계 내부의 의견이 완전히 조율되지는 않았지만 의-약-정협의회가 약사법 개정안에 합의한 시점에서, 설령 이번 투쟁이 마무리되더라도 우리나라와 같이 결코 정상적이라고 할 수 없는 의료제도와 의료체계를 가진 현실에서는 언제 또 다시 투쟁이 시작될지 모를 뿐 아니라 투쟁이 정례화 될 수도 있기 때문에.

투쟁에서 얻은 성과라고 평가할 수 있는 부분중에 가장 크게 다가오는 것이 의료계 결속이다. 그동안 모래알같이 흩어져만 있던 의료계가 비록 일부 직역간 이견이 있기는 했지만 올바른 의료제도 정착과 국민건강 수호라는 대명제 아래 하나된 모습을 보일 수 있었던 결속력이다. 이러한 결속력은 의료계에 대한 정부와 국민의 시각을 바꾸는 힘이 되기도 했다.

단단한 결속력을 바탕으로 한 오랜 투쟁은 향후 의료계내부의 문제를 해결할 능력을 키워주는 훌륭한 경험으로 작용할 것이며, 요원하기는 하지만 우리나라 의료환경이 개선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한 것도 성과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보험 문제점 국민 이해

아울러 의사들의 희생으로 시작된 건강보험제도의 비합리성과 비현실성을 노출시킴은 물론 이같은 문제점이 의료의 질을 저하시키고 의료비용을 증가시킨다는 점을 언론과 국민에게 이해시켰다는 사실은 평가될 만 하다.

이를 통해 약사법 재개정이 진행되고 대통령직속의 의료발전특별위원회가 설치됐으며 의료보험 재정의 국고지원 50% 약속이 실현될 가능성이 제기된 점 또한 빼놓을 수 없다.

또 경제적인 측면을 무시할 수 없는 현실에서 차등수가제 등을 통한 의료보험수가 인상, 그동안 몰랐던 또는 모른 채 했던 의료계 내부의 문제점을 자각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된 점, 무분별하게 신증설된 일부 부실 의과대학이 정리될 수 있다는 희망 등을 얻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이번 투쟁을 통해 의료계는 국민들의 부담능력에 따른 의료혜택의 정도를 정확하게 전달하지는 못했으나 막연하게나마 의사나 의료기관에 돈이 필요하다는 점은 이해시켰다.

모두는 무엇을 잃었나

그렇다면 잃은 것은 무엇인가.

투쟁의 전면에 나서며 얻은 마음의 상처일 것이다. 보이지도 않고 볼 수도 없는 부분이지만, 올바른 의료제도와 국민건강 수호라는 거시적인 목표를 위해 잠깐이나마 가운을 벗고 진료실을 떠난 의사들의 상처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이와 함께 의료계 각 직역간 의견차이가 외부에는 내분으로 비쳐진 부분과 진료실을 떠나며 시작된 비난 등으로 인해 국민으로 부터 신뢰를 잃은 점을 잊어선 안될 것이다.

또 가장 강경한 투쟁을 전개해 온 전공의들과 의대생들이 유급 등 희생을 당할 가능성, 이 문제가 사회문제로 대두될 경우의 파장, 가뜩이나 어려운 의료환경에서 장기간의 파업으로 인한 병원·종합병원급 의료기관의 경영손실과 향후 계속될 경영압박을 꼽을 수 있다.

특히 의료기관들의 경제적 손실은 존립자체를 위태롭게 하고 있으며, 장기간 투쟁으로 수련과 수업을 제대로 받지 못한 전공의들과 학생들에 대한 의학교육의 질저하, 전문의시험·의사국시 거부가 현실화 될 경우의 손실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는 점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장기간의 강경한 투쟁으로 향후 보건복지부 등 정부당국이 의료계에 대한 각종 규제를 강화할 지도 모른다는 우려는 기우에 지나지 않길 바란다.

정책수행능력에 큰 타격

한편 정부와 정치권도 의료계의 투쟁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잃은 것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정부의 가장 큰 손실은 국민으로 부터 정책수행 능력에 의심을 받고 신뢰를 잃은 것이며, 정치권도 정권차원에서 우려할 만큼 민심이 떠난 점을 자각해야 하나 더 심각한 문제는 정부도, 정치권도 뼈아픈 고통을 느끼지 못한 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정부나 시민단체의 배후에서 의약분업을 디자인한 의료사회주의자들은 의료계의 집중공격을 받기는 했으나 원래 잃을 것이 없는 집단이라 큰 피해를 보지 않았다. 의료계의 집중공격이 힘의 낭비라고 지적될 만큼.

약사들은 어떤가. 이번 투쟁에서 약사들은 의료집단의 일원으로 투쟁에 동참해 의료질서를 바로 잡는데 협력해야 할 위치였음에도 불구하고 불법의료행위를 방치해 온 정부의 정책때문에, 약사들은 자기위치와 약사행위를 착각한 채 약을 통해 의사와 동등해지려는 과욕만 부리고 있었다.

따라서 약사들의 피해여부는 논의의 대상이 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약사업무의 원형을 찾아주어야 한다는 정부와 국민과 의사의 부담만 늘어났다고 할 수 있다.

정부, 해결찾기 적극나서야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의료계에 대한 정부와 국민의 인식이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는 한 이번 투쟁이 마무리되더라도 또 다른 투쟁이 필연적으로 시작될 것이라는 점을 감안해 다시는 이러한 불행한 사태가 일어나지 않고 의료계의 발전과 국민의 의료욕구 충족을 위해서는 의료계와 정부가 현안의 초기부터, 적극적으로 협의에 나서야 한다.

대통령직속의 의료발전특별위원회를 통해 의·정협의가 초기에, 적극적으로 진행되기를 기대할 수 있지만 지금까지의 예를 볼 때 난망하다고 밖에 할 수 없다.

따라서 의료계가 의협을 중심으로 정부와 국민을 진정으로 이해시키고 공감을 끌어낼 수 있는 공론의 장을 마련해야만 올바른 의료제도를 통한 국민건강 수호와 의료계 발전을 이끌어 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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