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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창간]참 의료를 위한 개혁과제/DRG 제도를 재평가한다
[2000창간]참 의료를 위한 개혁과제/DRG 제도를 재평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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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0.03.21 1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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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희(이화醫大 교수·예방의학)

1997년부터 수행되어온 DRG 분류 기준에 의한 포괄수가제(이하 DRG 지불제도)에 대해 정부가 애초 계획했던 시범사업 기간을 연장하면서 2000년 7월부터 전면 확대실시를 천명하고 있어 의료계가 반발하고 있다. DRG 지불제도에 대해선 시범사업 수행전부터 긍정적, 부정적 영향을 놓고 많은 논란이 있었으며 정부의 이같은 판단은 시범사업 결과, DRG 제도로 의료비 절감 효과가 예상되며 부작용은 크지 않을 것이라는 시범사업 평가결과를 토대로 하고 있다.
그러나 현시점에서 DRG 지불제도의 도입은 다음과 같은 측면을 감안할 때 재고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된다.

첫째, 세계적 동향을 고려할 때 민간 의료기관들에 대해 국가적으로 DRG 지불체계를 적용하는 것은 유례가 없는 정책적 실험이라고 할 수 있으며 특히 한국과 같이 민간의료체계가 90%에 육박하는 상황에서 DRG 지불체계의 도입은 심각한 의료서비스의 질적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세계적으로 DRG 지불체계를 활용하는 나라들은 공공의료체계의 특성을 가진 나라이거나 공공의료기관에 한하여 적용하고 있으며 이들 공공병원에 대한 예산지불의 기준으로만 활용하고 있을 뿐이다. 또한 활용목적도 의료비 절감보다는 공공의료의 생산성을 높이기 위한 유인체계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민간의료영역에 적용하는 나라는 미국이 유일한데 이 또한 메디케어와 메디케이드라는 일부 사회보험 대상인구(전체 인구의 20%)에만 국한하여 적용되고 있다. 이렇게 제한적으로 적용되고 있는데에는 각 나라마다 의료체계의 특성이 다르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민간의료체계에 적용시 지불의 정확성 문제와 DRG 지불제도의 부정적 측면이 강화될 수 있다는 우려에 기인한다. 실제 미국의 경험에서 의료서비스 질저하나 중증도높은 환자기피 등의 문제가 민간 의료기관에서 뚜렷하였다는 보고는 이러한 우려가 현실화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둘째, DRG 지불제도의 긍정적인 효과로 제시되는 의료비 절감효과에 대해서도 미국내에서 비판적인 의견들이 광범위하게 제기되고 있으며 국내 시범사업결과 역시, 사업기간이 짧아 명시적인 효과를 거론하기 힘들다고 할 때 의료비 절감을 위한 대안으로서 성급하게 도입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판단된다. 미국에서의 비판의 요지를 보면, DRG 지불제도로 인한 재원일수 감소효과는 과대평가된 측면이 있고 효과도 도입초기에 비해 시간이 경과할수록 둔화되고 있으며 병원입원진료비의 상당부분이 외래나 다른 요양시설, 비적용인구에 대한 진료비로 전환되었기 때문에 실제 총의료비 절감효과는 크지 않다는 지적이다. 이러한 지적은 국내의 경우에도 유사하게 적용될 수 있기 때문에 이에 대한 심층적인 검토와 도입여부에 대한 신중한 판단이 필요하다고 사료된다.

셋째, DRG 지불제도를 전국적으로 확대실시하기에는 제도 운영상 보완해야할 사항이 많고 국내 여건도 미비하기 때문에 이를 대비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필요하다고 판단된다.

우선 운영상의 문제점으로서 DRG 분류체계 및 수가산정 과정의 합리성을 재고할 필요가 있다. 현재 시범사업에 활용되는 DRG 분류체계는 미국의 분류체계를 거의 그대로 도입하고 있으나 이는 다음과 같은 측면에서 국내 여건에 맞게 전면 재조정될 필요가 있다. 즉, 미국과 한국간 DRG 제도 대상인구가 다르며 65세이상 인구가 대다수를 차지하는 집단을 대상으로 개발한 분류체계를, 전혀 인구특성이 다른 집단에 그대로 적용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또한 미국과 한국의 진료비 구조가 다른 바, 미국은 의사 진료비를 제외한 병원관리 비용만을 대상으로 하는 반면 한국은 병원과 의사진료비가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자원소모량의 기준이 달라질 수 있다. 그외에도 DRG 분류체계에 대한 책임있는 전문가단체의 검증과정이 결여되어있고 의료보험 연합회에서의 임의적인 운용, DRG 분류를 위해 사용되는 grouper 프로그램의 오류 등, 분류체계 신뢰성의 전제가 되는 많은 요건들이 미비한 실정이다.

각 DRG에 대해 수가산정하는 과정에서도 보완되어야 할 사항들이 있으며 수가산정을 위해 사용된 자료의 제한성(대상병원수가 너무 적고 1994년 자료를 사용하므로서 시간적 차이가 존재함) 문제, 비급여 진료비와 중증도 수가산정시 간접적 추정방법을 사용하므로써 발생할 수 있는 오류 등이 이에 해당한다. 따라서 지금까지 대략적으로 지적한 문제점들은 향후 국가적인 지불체계로 도입된다고 할때, 제도의 신뢰성에 대한 걸림돌로 끊임없는 논란을 불러 일으킬 수밖에 없으며 이에 대한 보완이 제도확대 이전에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국내여건의 미비사항으로는 DRG제도로 인한 부작용에 대해 충분한 대처방안을 갖고 있지 못하다는 점을 들 수 있다. DRG 지불제도의 부작용으로 지적될 수 있는 문제들을 보면 필수 서비스 제공감소, 조기 퇴원, 이로 인한 합병증 증가와 사망률, 재입원율 증가, 중한 환자의 기피에 따른 접근도 저하, 질병의 분리치료(DRG split)와 진료정보 왜곡 등을 들 수 있다. 이중 국내의 경우엔 조기퇴원의 문제, 서비스 질저하에 대한 문제, 질병분리치료 및 중한 환자기피 등이 심각한 문제점으로 대두될 수 있다.

미국의 경우 DRG도입후 조기퇴원으로 인한 장기요양시설의 입원이 급증하였다는 결과를 많은 연구들에서 보고하고 있거니와 국내의 경우 장기요양시설이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는 상태에서 조기퇴원에 대한 대처를 어떻게 할 것인지 자못 우려스럽다. 또한 국내 의료기관의 경우 질관리 활동은 초보적인 단계로서 기술적 경험 및 기초자료도 불비한 가운데 서비스 질저하에 대한 자체 대응능력도 결여되어 있고 국가적인 지원여건도 미약한 상태에서 의료사고와 분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으며 의료분쟁에 대한 국가적 방안 또한 부재하다는 현실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질병의 분리치료 문제나 중한 환자의 기피를 통한 환자의 불편 및 의료기관과의 마찰증가는 의료계에 대한 불신을 심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넷째, DRG 지불체계의 도입에 있어서도 역시 보험재정의 문제가 밀접하게 관련된다. DRG 지불체계가 제기능을 하기 위해선 적정수가수준이 기본전제가 되어야 하는데 현재 시범사업에서 상당부분 비급여를 급여화하면서 보험자 재정부담이 증가한 상태이다. 이를 전국적으로 확대실시할 경우 재정부담은 더욱 늘어날 것인바 현재 보험재정에 대한 비관적 전망이 우세한 상태에서 과연 확대적용후 적정수가수준이 유지될 것인가에 대해 의료계의 시각은 회의적인 실정이다. 이러한 우려는 미국에서도 현실화되었던 사항이며 국내의 경우 저수가로 인해 경영난이 심화되어 있는 상태에서 수가통제가 이루어진다면 의료공급 기반이 위축되는 심각한 문제가 야기될 것이다. 결론적으로 이상의 논의를 종합할 때 DRG 지불체계의 도입은 전면 재검토되어야 하며 좀더 충분한 시간을 통해 긍정적 측면과 부정적 측면에 대한 다양한 검토 및 보완 그리고 지원여건 마련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더구나 2000년 7월은 의약분업을 비롯하여 국내 의료계를 뒤흔들 많은 정책변화들이 예견되는 시기로서 이때 DRG지불제도를 성급하게 도입하는 것은 제도의 졸속시행으로 국민과 정부, 의료계 모두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결과가 초래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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