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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창간]참 의료를 위한 개혁과제/의료전달체계 확립
[2000창간]참 의료를 위한 개혁과제/의료전달체계 확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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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0.03.21 1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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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창석(서울·오창석가정의학과)

<3차기관 이용 제한 이유>

환자들로서 보면, 내 돈 내고 내 마음대로 병의원을 이용 할 수 없도록 만드는 것이 이해할 수 없는 노릇이다. 진료의뢰서니 뭐니를 끊기 위해 동네의원을 들려야하는 불편을 왜 감수해야하는가, 참 잘못된 제도라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그래서 종이 한 장을 얻기 위해 시간 버리는 것도 아까운데, 거기다 3,200원이라는 거금을 새로 지불해야하는 것도 동의할 수 없다.

그래서 '우리의 친절한 동네의원의 원장 아저씨는 그러한 제도의 불합리성을 잘 알고 있어서, 내가 원하면 언제나, 또 대학병원에 먼저 들렀다가도 그곳에서 시키는 대로 '떼 오랬어요'라는 말만 전하기만 하면, 3200원을 받을 생각도 않고, 웃으면서 '저는 그런 병 치료할 줄 몰라요. 이 환자 치료 잘 해 주세요'라고 `진료의뢰서'를 써 주는가 보다'라고 생각할 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이러한 번거로운 제도가 존재하는 데에는 다 그만한 까닭이 있을 터인데, 그러한 제한이 다음의 기능을 수행한다고 알려져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의료자원의 효율적인 이용, 의료기관의 균형적 발전, 종합병원에 대한 환자 집중현상의 방지, 국민 의료비 증가억제, 보험재정 안정화'

이러한 좋은 제도가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모르겠는데, 필자가 공중보건의 시절에도 진료의뢰서라는 것을 써주었던 기억이 있는 것을 보면 최소한 10년은 넘은 것이 틀림없다. 그렇다면 10년 사이에 이런 좋은 뜻이 얼마나 달성되었는지 살펴보자.

<전달체계 존재하는가>


<표1>에서 보면, 3차 병원으로의 보건 의료비의 흐름이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늘어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그 진료내용을 보아도 동네의원과 종합병원에 차이가 없어, 동네의원에서 주로 진료하는 다빈도 질병 17가지 중 12가지(70.5%)를 종합병원에서도 똑같이 진료하고 있다〈표2〉.

특히 '본태성 고혈압은 대학병원에서 치료받아야 하는 병'이라고 교과서에 적어 넣어야할 지도 모르겠다.
이러한 결과를 보면, 지난 10여년 동안 우리 나라에서는 소위 `의료전달체계'의 목적은 달성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자, 이제 의료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모든 분들께 묻는다. 대한민국에 의료전달체계란 존재하는가?
왜 되지도 않는 쓸데없는 제도를 만들어, 환자와 보호자를 불편하게 만들고, 그렇지 않아도 하찮은 개원의들에게 굴욕감을 주려고 하는가?

모든 의료전문가가 의료전달체계 확립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이것이 꼭 필요한 제도라면, 현실은 왜 이 지경일까? 혹시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이를 방해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 의문에 대하여 확신 있게 답을 할 수는 없지만, 현재 의료의 여러 주체들이 의료전달체계 확립에 역으로 기여하고 있다는 것만큼은 자신 있게 이야기할 수 있다.

우선 일차적 책임은 복지부 등 행정 당국이 져야할 것이다. 의료전달체계를 제대로 하려면 1차 의료인을 우대하고, 1차 의료기관을 지원하는 것이 너무나 기본적인 일이다. 그런데, 1차 의료를 담당하는 의료인 양성에 말로는 지원하고 있다고 하지만, 수련 기관에 대한 우대나 정원비율 향상, 그리고 개원전후의 지원에 있어서 실제로 어떤 정책을 펴고 있는지 전혀 느끼지 못한다.

그 외에 1차 기관에 불리하게 책정되어 있는 수가 가산률, 필요 없는 구비 조항을 만들어 놓아 1차 기관에서 실질적으로 불가능하게 되어 있는 성인병 검진 기준, 약국에서의 사이비 의료행위, 국민을 우롱하는 불법 의료행위 들에 대한 무대책 등, 정부 당국은 일차의료를 육성하거나, 의료전달체계를 확립하겠다는 의지가 없어 보인다.

가장 앞장서서 의료 전달체계 훼손에 기여하고 있는 측은 보험자일 것이다. 특별한 전문가적 지식과 기술이 필요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단지 1차 의료기관이라는 이유로 많은 진료행위와 약품사용을 제한하고, 온갖 구실을 부쳐 의사들의 정당한 진료행위를 심사조정하고 있다.

본래의 기능을 져버리고 진료 행위 열중인 보건소, 소위 '명의열전' 등 3차 기관의 특정한 의사만이 올바로 진료할 수 있는 것처럼 떠들어대는 언론들도 빠질 수 없는 주역이며, 감기환자를 놓고 동네의원과 다투고 있는 3차 의료기관들과, 스스로 개혁하고 자정하고 있지 못하는 나 자신도 오늘날 대한민국의 의료전달체계를 왜곡시키고 있는 주범들이라고 할 것이다.

<어떻게 완성될 수 있는가>

첫째, 1, 2, 3차 의료기관의 기능과 역할을 명확히 규정하여야 한다.
의료전달체계 내의 기능적 연계를 강화하여 의료공급체계의 효율성을 극대화해야한다. 강제적 행정 규제보다는 수가차등화, 의약분업, 일부 2차 병원의 요양병원화 등의 정책적 수단을 통해 의료전달체계를 정비하여야 한다. 또한 3차 의료기관은 본연의 업무인 연구, 교육기능의 강화를 위해 제도적, 재정적 지원을 하여야 한다.

둘째, 유능한 일차 의료인력을 양성하여야 한다.
의사인력 수급에 있어 단과 전문의의 양산을 억제하고, 1차 의료를 담당할 수 있는 의사들을 양성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어야 한다.

셋째, 1차 의료 육성책을 마련하여야 한다.
의료 수가를 1차 의료에 유리하도록 개선해야하며, 의뢰비, 회송비를 보험수가에 책정하고, 전달체계에 따라 의료이용을 하는 환자에게는 의료보험적용비율, 본인부담금 등을 우대 받도록 하는 등, 수가 부분에서의 유인책을 마련하여야 한다.

역의뢰율 증가를 위한 정책을 시행할 것으로, 의뢰된 환자는 반드시 회송시켜야 한다거나, 회송률이 일정 비율 이상 되어야 한다거나 하는 진료 회송에 대한 강제규정을 두어야 한다.
또한 불필요한 형식적인 규제를 철폐하고, 보다 자유로운 환경에서의 진료가 가능하도록 보험자의 간섭을 배제시키고, 1차 의료에서의 예방서비스와 건강증진프로그램 실시에 대한 보험급여를 확대하여야 한다.

1차 의료는 많은 장점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또한 의료전달체계의 확립은 이러한 1차 의료의 장점을 최대한 살릴 수 있는 방법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이를 실현시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좋은 것이 있고, 그것을 해야한다는 합의도 있는데, 이를 실천하지 않는 것은 죄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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