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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창간]참 의료를 위한 개혁과제/의료의 사회화
[2000창간]참 의료를 위한 개혁과제/의료의 사회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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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0.03.21 1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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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홍관(인제대교수·가정의학)

2월 17일 여의도공원에서 벌어진 `잘못된 의약분업 바로잡기 전국의사대회'에 갔었다. 여의도 광장에는 수만명의 의사들이 운집하였고, 큰 북을 울리며 행사가 진행되었다. 의사면허증 1만7,000여개를 반납하였고, 13명의 의협 시도지부장과 여의사 한 명이 머리를 깍았다. 머리를 깍는 동안에 눈물을 글썽이는 사람들도 있었고 분위기는 숙연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전국 개인 병·의원 1만9,500여 곳 가운데 76%인 1만4,800여곳이 문을 닫았다고 했다.

<민주화시위때 어디 있었나>

의사치고, 의사들의 진찰료나 기술료가 제대로 책정되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심지어는 사람의 상처를 5cm 꿰메는 기술료가 양복 1cm 짜리 꿰메는 것보다 기술료가 적다든지, 송아지 분만비보다도 사람을 분만하는 분만비가 적다든지 하는 이야기를 들으면 화가 치밀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나는 여의도 광장에서 의사들의 분노를 보면서 엉뚱한 의문이 떠올랐다.
 
과연 이렇게 모인 많은 사람들 중에서 우리나라의 민주화를 위해 광화문이든 대학로든 시위에 나섰던 분들이 몇 분이나 될까? 아니면 그동안 자기 문제가 아닌 다른 사람들의 어려운 처지를 해결하기 위해 뛰어다닌 몇 분이나 될까?

의사들은 대체로 돈많고 여유있는 사람이었다. 손쉽게 중산층으로 올라설 수 있었고, 사회의 변화를 싫어하는 보수주의자가 되어서 사회의 개혁을 싫어했다.

의과대학생들도 워낙 많은 공부에 쫓겨서도 그랬지만 기본적으로 사회 문제에 무관심했다. 그 나라의 정부가 독재정권인지에 대해서도 무관심했고, 자기가 속해있는 사회가 불평등한 사회는 아닌지, 어려운 소외계층은 없는지에 대해서도 관심이 적었다. 의과대학 다니면서 잠시라도 봉사활동에 몸을 담는 학생들도 있었지만 대개는 대학시절의 추억 정도로 여기기 일쑤였고 대학을 졸업하면서 언제 그런 일에 관여했느냐는 듯이 잊고 마는 일이 흔했다.

<부러움 그리고 분노, 불만>


국민들은 의사들에게 두가지 상반된 감정을 가지고 있었다.
하나는 자식을 의대에 보내고 싶어하거나 아니면 사위라도 의사를 얻어보겠다는 부러움이었다면, 또 하나는 의사들에 대한 분노와 불만이었다.

사람들은 병원에 찾아와서 진료를 받고는 의사들의 태도에 대해 `생명을 다루는 의사가 저래서야...' 하는 식의 불만을 갖는 경우가 흔하다. 올해 2월말에도 전여옥이라는 방송작가는 한 스포츠 신문에 `3류 의사는 가라'는 선정적인 제목의 칼럼을 썼다. 내용인 즉 아이가 감기로 인한 고열이 있어 응급실에 갔는데 의사가 오만불손했다는 것이었고, 나중에 보니 처방도 엉터리였다는 내용이었다.

의사 입장에서 그 사건을 되짚어보면 분주한 응급실에 열도 높지 않은 상태에서 감기로 찾아갔기 때문에 환자 대접을 못받은 사건이었지만 본인의 분노는 대단했다.

전씨의 결론은 섬뜩하다. `...의약분업을 앞두고 의사들이 생존권을 사수하기 위해 거리로 나섰다. 하지만 이제 의사들이 알아두어야 할 것이 있다. 의사들도 굶어 죽을 수 있다는 것이다. 왜 의사만 가난하고 굶어 죽으면 안되는가?

서양의 3류의사들은 다 굶어 죽는다. 즉 의사라는 것 하나만으로 환자를 얕잡아보고 그것도 인턴 레지던트들이 유달리 오만하게 구는 의료현장은 궁극적으로 많은 의사들을 굶어 죽게 만들 것이다.'
비록 흥분한 상태라곤 하지만 인기있고 교양도 있다고 간주되는 방송작가가 의사들 일부가 굶어 죽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왜 의사말을 안듣는가?>

의약분업과 약가 실거래가제 때문에 많은 의사들이 병원 경영이 어렵다고 아우성칠 때마다 국민들은 냉소를 짓는다. 설마 의사들이 굶어 죽겠느냐? 자기들이 원래 벌던 수입이 줄어드니까 아우성치는 것이려니 하고 지나쳐 버린다.

잘 사는 의사들이 있지만 그들은 물려받은 재산이 많거나 아니면 형편이 좋을 때 많이 벌어놓은 분들이거나 그것도 아니라면 성형외과와 같이 비보험 진료를 많이 하는 의사라고 아무리 설명해도 곧이 곧대로 들어주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민주의사회에서 일간지에 광고를 내면서 `자식은 의대를 보내지 않겠습니다'라고 주장했지만 올해도 여전히 의대의 인기는 최고수준이었다. 국민들은 의사들의 말이라면 도대체 들을 생각을 하지 않는다.
의사들이 이렇게까지 국민들의 불신을 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형편이 좋을 때 국민 입장에서 애써서 노력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의사와 비슷하게 선망의 대상이 되기도 하고, 원망의 대상이 되기도 한 집단으로 변호사들이 있다. 그러나 변호사들의 단체인 대한변호사회가 대한의사협회와 결정적으로 다른 점이 한가지 있다.
그들은 군부독재의 엄혹한 시절에도 심각한 인권문제에 대해서는 자기 목소리를 냈다.

그래서 그들이 성명서를 내면 존중되었고, 일간지의 사회면이나 정치면에 크게 다루어졌다. 민주화를 향한 길목에 한복판은 아니었지만 한 귀퉁이나마 차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의협은 의료에서 소외받는 국민들을 위해 보건복지부의 문을 드나들지도 않았고, 잘못된 의료제도를 개선하기 위해 성명서 한번 내지 않았다.

대다수의 의사들은 그저 자기가 얻게 된 중산층으로서의 삶을 즐기기 바빴다. 우선 집을 사고, 자기 병원 건물을 사고, 부동산을 사두었다. 신문에 불법과외다 병역비리다 발표되는 곳마다 의사들의 이름이 실려 있었다.

<우리들 과거에 대한 분노>

지금 이 시점에서 의사들은 이제야 현실을 깨닫고 세상을 향해 뛰쳐 나온 것 같다.
의사들이 몇 만명이 모였다는 것 자체가 우리나라 의료의 역사에서 기록될만한 사건이다. 많은 의사들이 지금 서로 모이기만 하면 심각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나누고 분노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 무엇을 반성하고 누구에 대해 분노하고 있는가? 의사들이 가장 분노해야 할 대상은 보건복지부 관계자가 아니다. 이번 의약분업 과정에서 의사들의 입장을 잘 몰라준 시민단체들이나, 시민단체에 자료를 제공해준 의료정책전문가들도 아니다. 가장 분노하고 반성할 점은 우리 의사들의 과거의 모습이다.

국민들이 의사들을 보건의료의 전문가로 인정하고, 보건의료제도를 결정할 때 의사들의 의견을 존중하는 분위기가 만들어 졌다면 이렇게까지 벼랑에 몰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소외층 건강문제 관심>

가장 늦었을 때가 가장 빠른 때이다. 이제라도 국민의 동의를 얻기 위해서는 국민의 신뢰를 얻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국민의 건강을 위해서 보건의료전문가로서 내가 할 일은 없는지 생각해야 한다.

질병과 재해가 발생하면 정부나 보건소와 협조를 해서 문제를 해결하는데 보건의료인으로서 일조할 줄 알아야 한다. 또한 어려운 소외계층의 건강문제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 한다. 가진 자들은 스스로 건강문제를 해결 할 수 있지만 이들은 스스로는 해결할 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 잘못된 의료정책으로 자기 병원 경영이 어려워질 때만 광장으로 나설 생각을 하지 말고, 국민들이 잘못된 의료정책으로 어려움을 겪을 때도 피킷을 들고 나설 수 있어야 한다.

<책임 다한 후 요구해야>


물론 우리 사회에 존경받는 선배 의사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장기려박사처럼 많은 사람들에게 귀감이 된 분도 계시지만 지난 IMF 금융관리체제에서 노숙자을 꾸준히 진료해 온 이름없는 의사들도 있다.

의사들이 이처럼 국민들을 위한 사회적 책임을 다할 때만 국민들도 의사의 정당한 요구에 귀 기울인다는 평범한 진리야말로 의료가 위기에 처한 지금 우리가 되새겨야 할 매서운 교훈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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