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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신년]미래 대비하자/외국의료정책의 실험장
[2004신년]미래 대비하자/외국의료정책의 실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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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4.02.02 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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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윤형(의협 기획정책이사)

외국의료정책의 실험장이 된 한국의료계

부작용만 양산…'현실 맞춤 정책' 절실

 

의약분업으로 시작된 소위 의료개혁 정책이 의학전문대학원, DRG, 면허재등록제도, 총액계약제, 의약품처방방법평가(DUR: Drug Utilization Review)등 외국의 갖가지 정책이 도입되거나 도입이 검토되고 있으며, 의료보험수가는 또 다시 생소한 지속가능한 성장률(SGR: Sustainable Growth Rate)이라는 척도를 이용하여 물가인상률 보다 낮은 2.65%로 조정되었다.


바야흐로 한국의료계는 외국 특히 미국에서 거론되는 정책이면 모두 한번씩 적용해 보는 정책의 실험장으로 변하고 있다.
하나씩 살펴보자.

의약분업은 준비없이 시작된 실패한 정책이었으며 보험재정 파탄으로 마무리 지어졌다는 것이 정평이니 더 이상 논하지 않아도 된다고 본다. 그러나 도입시 정책목표를 외국에서 설정된 '전문의약품의 약사의 자유판매 또는 국민의 자유구매금지'에서 의사의 경제적 동기에 의한 과잉투약금지, 약사에 의한 처방·투약의 감시로 바뀌어 도입되었다는 점만 거론한다. 즉 외국의 정책도입시 필요한 것만 도입하거나, 왜곡해서 도입할 수 있는 사례가 될 것이다.

의학전문대학원은 그야말로 왜 도입해야 하는지에 대한 논의보다는 미국에서 시행하고 있으니까 도입된 것으로 보인다. 배경에는 물론 의학공부만 하는 의사의 무식함으로 의료대란이 일어났으므로 의사의 교양을 높이기 위해서는 현재 2년에서 4년으로 교양과정을 늘려야 한다는 정책고위당국자의 생각과 의대에만 우수한 학생이 모이니 의대를 대학원으로 옮겨서 이공계로 갈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자는 의견-실은 이공계 대학이 의대 입시학원화 될 우려가 있어 제 발등을 찍었거나 죽을 꾀를 내었다고 생각되지만- 또는 의료계에서 6년 공부하고 왜 석사학위를 안주느냐고 항의하자 대학원이 되어야 석사학위를 줄 수 있다고 하고 전문대학원을 제시하자 순진하게 따라간 의료계 인사들이 주도했다는 점, 법학전문대학원을 추진하려다 현직 판·검사들의 반대로 어렵게 되자 만만한 의사들을 상대로 한 건 하려고 한 교육부의 전략과 재정지원 및 교수정원증원이라는 당근에 넘어간 국·사립의과대학 등이 배경이 되었다고 생각된다.

주지하다시피 대부분의 나라가 대학에서 5년 또는 6년과정으로 의사를 양성하고 있으므로 우리나라는 거의 처음으로 미국식 의학교육과정을 따르는 나라가 되었다. 그러나 미국과는 달리 국방의무기간이 있어 의사가 되어 활동하려면 대학 4년, 대학원 4년, 군 3년, 전문의과정 5년의 16년에다 요즈음은 세부전문의를 위한 필수과정으로 여겨지는 전임의 1~2년까지 합치면 17~18년이 소요되니 최소 37세에 의사를 시작할 수 있으며, 대학·대학원 입학시 재수라도 하게 되면 마흔을 훌쩍 넘기게 된다.

DRG는 미국의 경우 의료의 질저하 때문에 의사비용을 제외하고 입원비용에 대해 적용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보험심사기준에 맞추어 각색되기 때문에 학문적으로는 전혀 신뢰성이 없다고 인정되는 보험신청자료를 이용해 질병분류를 하여 한국형 질병군(KDRG)을 구성하고, 당근(carrot)으로 수가를 올려 시범시행하면서 병원들이 좋아한다는 시행주체들의 평가에 힘입어 강제시행하려하다가 미국에서의 여러가지 문제점, 우리나라에서의 질저하의 사례 등이 밝혀지자 일보 후퇴하였다.

한편 행위별단가를 나타내는 상대가치(RBRVS: Resource Based relative value scale 자원기준상대가치)의 경우도 당초 사용하던 일본의 수가표가 우리나라 현실에 맞지 않다는 논란이 일자 미국에서 개발된 노력의 정도에 따른 행위별수가체계를 들여오자고 연구용역을 시작하다가 실제 연구는 못하고 2000년 수가조정시 당시의 수가를 환산지수 55.4원으로 나누어 점수로 나타내고 이름만 상대가치로 바꾸어 버렸다.

점수로 바꾸니 수가계산시 환산지수를 곱하여 계산하여야 하므로 수가표에 친절하게 다시 환산지수를 곱한 금액을 표시해 주니, 같은 행위의 같은 수가가 이름만 의료수가(일본식)에서 상대가치 점수(미국식)로 바뀐 셈이다.

최근에는 의약품처방을 평가하는 프로그램인 DUR이 서서히 등장하고 있다. 이는 심사평가원의 용역의뢰로 정보관련 벤처기업에 관계하는 모약대 교수가 미국프로그램을 기본으로 하여 제시한 결과이다.

용역결과에 의하면 동시에 처방하면 가장 해로운 1등급부터 5등급까지 있다. 그중 2등급에는 우리나라 결핵의 표준처방인 아이나(INM)와 리팜피신(RFP)이 포함되어 있는 등 국내 현실과 맞지 않는 부분이 있어 다시한번 검증해야 할 사안이다.

그 외에 면허재등록제도(recertification) 또는 독립개원 면허 등록제도 등 미국에서 일부 실행되고 있는 각종제도가 검증과정도 없이 마구 거론되는 것을 볼 때 그야말로 미국의료정책의 할인매장이 된 것 같다. 의료정책 분야도 외국의 정책도입을 감시하고 나쁜 정책을 선별하여 도입을 방지하는 '의료정책방역과'를 만들어야 할 것 같다.

최근 의료수가조정시 사용된 지속가능성장율(SGR)이란 미국의 Medicare(저소득층· 장애인에 대하여 정부가 지불하는 의료비, 우리나라의 의료급여와 유사) 진료비의 상승을 통제하기 위하여 정부가 계속 지속적으로 부담할 수 있는 진료비 증가율을 추계하여 다음해의 Medicare 예산을 편성하는 방식으로 우리나라의 경우 의료보험 보다는 의료보호(의료급여) 예산 편성시에 사용할 수 있다.

왜냐하면 재정부담자와 수혜자가 다르기 때문에 재정부담자의 부담능력에 따라 수혜의 정도를 조절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의료보험은 부담자와 수혜자가 같기 때문에 서로 계약하여 정하도록 하기 때문에 원리에 맞지 않는다.

참고로 미국의 Medicare는 약 4천만명에 대해 1년에 300조원을 사용하고 있다. 4천5백만명이 20조원을 사용하는 우리나라에서 SGR을 적용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일 뿐이다.

1998년부터 닥친 경제불황 후에 아시아 각국은 각나라의 문화에 맞는 정책을 구상하기 시작하였다. 우리나라에서도 새뮤얼 헌팅턴의 <문화가 중요하다>라는 책이 베스트셀러가 될 만큼 우리나라 문화에 맞는 각종 사회제도를 고안하자는 생각들이 확산되고 있다.

그 책에 의하면 군사독재와 경제발전을 추구한 한국과 남미중에서 한국만 성공한 데는 한국의 정치문화 때문이라고 기술하고 있다. 보건의료분야도 이제 외국의 정책을 무작정 수입 만 할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의 보건의료환경과 발전과정에 맞는 우리나라 자체의 보건의료정책을 연구하고 공론화하여 제시 할 때가 되었다.

새해에는 한국의료계가 두눈을 부릅뜨고 지켜 백가쟁명식 세계의료제도의 실험장이 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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