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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창립]의협 창립 100주년/연세의료원 타산지석 삼자

[2004창립]의협 창립 100주년/연세의료원 타산지석 삼자

  • 김영숙 기자 kimys@kma.org
  • 승인 2004.11.15 1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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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겨진 자료'를 찾아라"

연세의료원 경험 타산지석 삼자

 

1885년 4월 10일 미국인선교사 알렌에 의해 한국 최초의 근대식병원 광혜원이 문을 연다. 그로 부터 100년 연세대학 및 연세의료원은 1985년 한 세기를 맞는다.  연세 100년은 한국사학 100년을 의미하는 것으로 한국 교육의 근대사,의학발전이 기록이라고 할 수 있었다.


연세대학은 1985년 한세기를 맞아 지나온 100년을 성찰하고, 새로운 2세기에 걸맞는 비전을 제시하는 행사를 마련했다. 당시 치러진 100주년 기념 행사는 동창, 교직원들이 힘을 합쳐 지난 1세기를 뒤돌아보고 새로운 세기를 맞아 자랑스럽고 영광스러운 역사를 만들 의무와 책무를 다짐하는 대회로서 성공적으로 치러졌다.

100주년 행사는 85년 5월6일부터 11일까지 100주년 기념관·광혜원 복원·알렌관 건립 합동기공식, '미래 세계의 대학'를 주제로 한 국제학술회의, 제1회 아시아기독교의과대학협의회, 기념 음악회, 알렌, 에비슨 박사 유품 전시회 등 성대하고 다채롭게 마련됐다. 100주년을 축하해 체신부에서 창립 기념 우표(언더우드 홀 도안) 30만매가 발행되었으며, 한국조폐공사에서 기념메달이 제조되었는가 하면 100년의 발전과정을 담은 기념 비디오 제작, 의료원 내 각 대학별로 재상봉행사, 학술행사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치뤄졌다.

연세대는 당시 이 행사를 위해 '창립 100주년 기념사업회'를 82년 6월 15일 조직하면서 100주년 행사 준비를 시작했다. 당시 안세희 총장을 회장으로 부회장(교학부총장/의무부총장) 밑에 총무간사 및 재무간사를 두었으며, ▲100주년 편찬위원회 ▲100주년 학술행사위원회 ▲100주년 기념 건립위원회 ▲100주년 행사 준비위원회 ▲의료원 기념사업위원회 등 5개 분과위원회를 구성했다 .

보다 구체적인 행사 준비는 연세의료원 내에 '의료원 기념사업위원회'가 만들어 지면서 산하에 기획 및 조정위원회, 그리고 행사위원회를 구성했으며, 연세의대 및 부속 병원, 원주의대 및 병원분과, 치대 및 부속병원 분과, 간호대 분과, 보건대학원 분과와 함께 각 동창회가 중심이 되어 기념행사 준비에 돌입했다.

당시 행사준비를 맡았던 의료원 관계자는 "의료원 내에 기념사업위원회가 구성돼 행사를 치르기까지는 1년 정도에 불과했다"고 말해 한 세기를 기념하는 준비기간 치고는 비교적 짧았다. 이렇다 보니 행사를 앞둔 3~4개월 동안 실무진들이 매일 밤을 꼬박 새울 정도였다고 한다.

이성낙 가천의대 총장은 당시 연세의료원 기획조정실장으로서 85년 2월 의료원 기념사업위원회 위원장으로 투입돼 막판 준비를 모두 총괄했다.

이 총장은 "역시 짧은 기간동안 많은 행사를 하면서 어려운 점이 많았다"고 회고한다. 그러나 시간이나 예산 등 물리적인 것 보다도 "우리나라 사람들이 역사 개념, 자료에 대한 개념, 역사관이 없었다는 점이 가장 큰 어려움이었다"고 지적한다.

"한 기관이 100년을 맞았다는 것은 결코 짧지 않은 기간이다. 그러나 막상 100년의 역사를 간직한 연세대학이 내놓을 자료가 없었다"는 이 총장의 말은 많은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일제시대와 6·25라는 혼란기를 겪은 점을 감안하더라도 10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기관이 '내놓을 자료'가 없었다는 사실은 기록에 취약한 한국인, 한국사회를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며, 2008년 100주년을 맞이하는 의협으로서는 가장 새겨 들어야할 부분이다.

이 때문에 당시 기념사업위원회는 이 총장이 총장이 주축이 돼 행사가 끝난 다음 100주년 기념 연필, 필통, 로고, 각 기관장이 배포한 선물 등 100주년을 기념하는 것은 무엇이든 모두 모아 사진을 찍고, 당시의 행사 내용을 요약해 <연세창립백주년 의료원 기념행사>라는 제목으로 앨범을 제작 연세대와 연세의대 도서관 등 관련 부서에 모두 분산 소장케했다. 다음 100주년에는 이 자료집이 귀중한 사료가 될 수 있다는 인식 때문이었다.

이같은 경험에서 이 총장은 의협이 지금부터라도 의사 회원 및 그 후소들에게 2008년 100주년 행사를 한다는 사실을 널리 홍보하고, 하잘 것 없다고 생각되는 물건, 기록까지도 모두 모으는 캠페인을 전개할 것을 조언한다. 이런 것들이 하나 하나 쌓여 1세기의 역사를 만들어가는 역사적 유물로서 기능하기 때문이다.
한편 연세대학교 100년 사(4권)는 85년 발간됐으며, 의학100년사는 이듬해인 86년 발간됐다. 이 역시 생존해 있는 원로 회원, 언론, 또는 자손들을 대상으로 이들의 회고 및 자료를 수집하는 일에서 부터 시작되어야 한다고 조언한다. 세브란스의학교 한국인 첫 교장이었던 <오긍선 전기>의 경우 오긍선 선생을 기억할만한 인사 수백명을 선정하고, 이들에게 편지를 보내 오긍선 선생과 관련된 기억들을 하나 하나 끄집어 냈고 이를 근거로 충실한 전기를 작성할 수 있었다.

당시 예산은 100년사를 제외하고 순수하게 행사비만으로 1억7천만원 정도가 집행된 것으로 기록돼 있으며, 모금 외의 재원은 의료원 예산에서 집행해 예산상의 어려움은 없었던 것으로 이야기된다.

한편 고려대학은 2005년 100주년을 맞아 2000년 9월 준비위원회를 출범시켜 비교적 발빠른 준비에 들어갔다. 교수 1인, 직원 3명 등 4명이 상주하면서 100주년 행사를 준비중이며, 편찬실은 따로 둬 700쪽 분량의 3권 짜리 100년사를 준비하고 있어 2008년 100주년 행사를 앞둔 의협이 참고할 모델이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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