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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에서 보는 이원제 한국의료-1
외국에서 보는 이원제 한국의료-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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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5.02.15 1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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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훈(재미의사/의학칼럼니스트)

의학계의 최대 과제는 의료일원화

'한의사의 CT 진단 허용'이라는 창피막심한 후진 법조계 판결에 대해 우수한 논평들을 감명 깊게 읽었으며, 여기에 필자가 느낀 점을 적어 본다.

요즘 미국에선 의학계만이 아니라 일반 미디어(주간 TIME 2004년 4월 26일자와  Business Weekly 2005년 1월 5일자)에서도 한국이 세계 첨단의학 줄기세포연구에 선두주자임을 보도하고 있다.

이렇듯 자랑스러운 한국에서 의료제도만은 사회주의 의료후진국 중국을 옛날처럼 종주국으로 받들고 있는 사실을 알고 있는 미국의사는 거의 없고, 만일 알게 되면 납득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저을 일이다.

미국의사들의 한의학에 대한 인식은  옛날 '신비의 나라' 동양에서 수 천 년 이어온 전통의학으로서, 산간벽지 사람들이 아직도 애호하고 있는 '민속의학'이라는 정도에 불과하다.  

중국의 전통한약과 더불어 인도의 민속의학(Ayurveda)의 존재는 미국에도 알려져 있고, 이들 일부는 미국대체의학에 흡수되어 가고 있다.

그러나 동방의 주요국 한국ㆍ일본ㆍ중국ㆍ인도 등 4개국 중에서 천년 전 '전통의학'과 '현대의학'이 국가법에 의해 동등하게 인정받아 서로 호형호제 하게끔 '이원제 의료제도'가 설정되어 있는 나라는 중국과 한국뿐이다. 세계 최하위 의료국가 북한의 '한의'(동의)는 여기에 논할 가치조차 없다.

경제적으로 개발도상국인 인도는 풍성한 전통의학에도 불구하고 그들 의료제도는 오직 현대의학 한 가지다. 그렇게 된 중요한 이유는 많은 인도 지도자들이 서구식 고등교육 받은 현대 지성인이기 때문이다.

일본은 개국이후 선진국에 동참하고 과학입국하려는 정부와 의회의 강력한 근대화의지에 의해 1875년에 이미 한의학을 전폐하고 국민보건을 '현대의학' 일변도로 몰고 갔다. 오늘날 그들이 차지하고 있는 세계 최장수국의 축복은 바로 여기서 비롯한다(2002년 11월 4일자 본지 필자 칼럼 29번, 의학은 과학이다 참조).

그리고 20세기 초반 중국혁명정부는 근대화의 기수 닥터 손문의 영도력에 의해  1929년 한의학과 결별한 바 있다. 그러나 중일전쟁 중 피난수도(중경)에서 부패정권으로 악명 높은 장개석 정부에서 한의사 로비의 대공세가 성공하여 '한의'를 '현대의'와 동격으로 격상시켜 이원제 의료제도가 성립되고, 그 후 중공에 인계되어 오늘에 이르렀다.

사스 유행 때 중국이 세계에 노출시킨 야만적인 보건의료대책은 결코 우연한 결과가 아니다.

마찬가지로 한국도 부패한 자유당 정권시절 부패국회에서 한의사에게 국민보건을 담당시키는 의료 이원제가 탄생했으니 바로 장개석 정부의 전철을 밟은 셈이다.  

자유당시대 당시 혼돈한 세태 속에서 부패 조류를 저지하는 일이 불가능했겠지만 한 가지 애석한 일은 의학계에서 문제의 심각성에 조금이라도 관심을 갖고서 한의학을 현대의학의 일부로 흡수하기 위해 기존 의과대학에 '한의학연구소'를 설치하고, 대학원에 '한의학전공'과정을 두었더라면 오늘날과 같은 '이원제'로 고착되어 버린 의료후진국 신세는 모면했을 줄 안다. 꼴불견인 의료 이원제의 책임은 자유당 부패정권만이 아니라 우리 의료계에도 있음을 통감한다.     

또 한 가지 더 아쉬운 일은 1970년대 경제발전과 공업입국 과정에서 일원제를 향한 의료개혁시도가 없었다는 점이다. 당시 군사정권은 그들 정권의 '비도덕성'을 만회하고자 경제발전과 국력증강에만 혈안이 되어 의료제도 현대화를 등한시했다. 다음 문민정치는 무능정치에 그치고 그 후 잇따른 민주화정치의 두 지도자는 고등교육의 배경이 없는, 말하자면 과학교양이 결여된 자들이다. 그들이 잘못 설정한 '전통의학 육성'이라는 시대착오적인 정책은 이원제 의료제도를 영구화시키는 역사적인 범죄행위를 감행했다. 18세기 아브라함 링컨시대는 지났다. 21세기 국민의 지도자는 최고의 교육배경과 과학소양을 지녀야 하는데, 국민이 그렇지 못한 지도자를 잘못 선택한 만큼 불행하기도 하다. 일원제 의료개혁에 대한 의료계의 미온적 반응도 문제였다.

그러던 중 '한의사 CT 허용 사건'을 계기로 의료계 전체에 의료일원화의 바람을 일으키게 했으니, 불행 중 천만다행이라 하겠다. 엎질러진 물이라 크게 기대되는 타협안은 없을지라도, 국민보건의 백년대계를 위해 의료일원화는 기어코 성취해야 할 한국의학의 최대 과제라는 점을 의료계 전체가 자각하게 되었으니 경하할 일이다.

한의사 CT 허용 판결

'인간의 오감' 운운하는 형이상학적인 수식어에다 "한의사가 CT를 사용하는 것은 망진의 수단"이라는 역설적이고도 도사연(道士然)한 표현으로 일관된 '한의사에게 CT 사용을 허용'한 판결논고는 마치 19세기 개화기 조선시대에 방금 도입된 서양의학에 대항해서 자랑스러운 우리 전통의학을 옹호하는 갓 쓴 유신(儒臣)법관 3인방의 픽션논설을 읽는 환각에 사로잡히게 한다.

전문학계의 견해를 참작했거나 인용한 흔적이 전혀 없이 "환자를 관찰하는 방법과 수단은 의학이나 한의학은…모두 본질적인 차이가 없다"고 단정하여 본질적으로 다른 현대의학과 한의를 동등시하는 철면피하고도 유신다운 유아독존적인 판례를 남겼다.

그래도 한국법관은 현대 지식계급에 속하는 지라 과학적 의학과 본질이 다른 한의의 CT사용은 국민의 의료비만  낭비한다는 사실을 잘 알 것이고, 따라서 첨단의 이기(利器)를 사용하겠다는 한의사의 황당무계한 소송을 일축하리라 믿었는데, 그 기대가 무산되었으니 말문이 닫친 사람은 필자만이 아닐 것이다.

좋게 해석해서 이들 판관 3인방은 막강한 주체분자와 전통세력이 외치고 있는 한의학육성에 대항하기를 두려워하는 보신책으로 이러한 유야무야한 판결을 내렸을지도 모를 일이다.

이러한 세태에 아첨하는 못난 무리를 2500년 이전 공자는 '곡학아세(曲學阿世)의 도배'라 일컬었다.

CT 촬영기는 암과 각종 질병소견을 정확히 진단하여 환자의 생명을 다루는 과학의 이기(利器)이다. 그런데 한의계에서 이러한 이기를 환자의 체질이상이나 음양오행과 사상의학적 병변을 보기위해 CT를 이용하고자 주장한다면, 그것은 마치 63빌딩에 올라가서 불로초를 캐겠다는 시대착오적인 환상에 불과하다. 말도 안 되는 잠꼬대 주장이 사회의 주요 이슈가 되어있다는 자체가 슬픈 일이다.   

CT 영상을 '반 코흐'의 그림 같이 감상하기 위한 천재 예술작품과 혼돈해서는 안 되며, 더구나 무당들이 사주팔자 감별에 이용할 수 있는 신기(神器)라고 여겨서는 안 된다.

한마디로 CT 사용 허용 판결은 시대착오적인 난센스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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