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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2024-03-29 15:21 (금)
전면시행 의약분업 그 문제점-계도기간의 문제점
전면시행 의약분업 그 문제점-계도기간의 문제점
  • 이석영 기자 dekard@kma.org
  • 승인 2000.07.3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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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계도기간'이란 편법을 동원, 법을 어기면서까지 7월부터 실시키로 돼 있는 의약분업을 사실상 1개월 연기한 것은 턱없이 부족한 의약분업 준비상황을 스스로 인정한 것이었다.

복지부는 1개월의 말미를 통해 약국의 준비에 만전을 기하고 국민에게는 `의약분업은 무조건 좋은것'이란 환상을 쇄뇌시켜, 본격적인 시행이 가져올 충격을 최소화 한다는 계획이었다. 그러나 한달간의 시범 기간에서 얻은 것은 ▲약국의 준비 부족 ▲대국민 홍보 결여 ▲병·의원 참여 의지 부족 등 비관적인 결론 뿐이었다. 한달 동안 준비상황을 최종 점검, 문제점을 파악해 본격실시에 대비하고자 하는 것이 계도 시행의 목적이었지만, 일선 의료기관들은 처방약 조차 구비못한 약국으로 처방전을 보낼 수 없었으며, 환자들은 여전히 약국과 병원을 오가야 하는 이유를 알지 못했다.

계도기간 동안 거의 대부분의 의료기관은 종전과 마찬가지로 원내처방전을 발행했다. 시행 첫날 의원급 의료기관은 종전대로 원내처방을 시행했고 대학병원 등 대형병원의 원외처방전 발행률도 20%에 불과했다. 첫날 서울시내 주요 병원의 원외처방전 발행률은 ▲서울대학교병원 26% ▲서울중앙병원 21% ▲신촌세브란스병원 11.5%를 보였고 삼성서울병원, 고대의료원, 국립의료원, 가롤릭의료원, 한림대의료원 등 대부분의 의과대학 부속병원들은 단 한건의 원외처방도 발행하지 않았거나 극히 미비한 것으로 조사됐다.

지방도 마찬가지여서 대구시의 경우 경북대병원, 영남대의료원, 계명대 동산의료원 등 주요 대학병원은 병원내 외래약국을 운영했으며, 경기·인천 지역과 전북·전남·광주 지역, 강원도 등 거의 전지역에서 환자들이 약국으로 처방전을 들고 가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이같이 원외처방전 발행이 저조했던 가장 큰 이유는 인근 약국의 준비 상태가 턱없이 부족했기 때문. 환자들이 약국에서 허탕을 치고 병원으로 다시 돌아올 것이 뻔한데, 그렇게 되면 모든 비난의 화살이 병원으로 쏠릴 것이 분명하므로 원외처방전 발행에 소극적일 수 밖에 없었다는 것이 일선 병원들의 한결같은 하소연이었다. 구비 약품 뿐만 아니라 환자 대기 및 주차 시설, 약품 저장 공간, 약품배송 시스템 등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약국으로 무책임하게 환자를 보내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었다.

실제로 처방전을 들고 인근 약국으로 간 환자가 약을 구하지 못해 병원으로 되돌아오는 사태가 계도 시행 첫날부터 속출했다. 방광암으로 아주대학교병원을 찾은 한 70대 환자는 인근 약국 2곳을 돌아다녔으나 결국 약을 구하지 못해 병원으로 돌아왔다. 그 환자는 “철저한 사전 준비 없이 의약분업을 실시해야 하는 것인지 모르겠다”며 하소연 했다.

복지부는 7월3일 전국 시·군·구별로 일제히 의약분업 지역협력회의를 열고 지역 의사회로부터 처방약 목록을 넘겨받아 약사회에 전달, 10일 이전에 약국들이 처방약을 완비토록 하라고 지시했다. 그러나 일선 약국들은 필요한 약품 구비에 난색을 보였다. 1개 종합병원당 처방약이 1,200여 품목에 달하며, 이들을 모두 구비하는데 1억원 가까운 비용이 소요돼 대부분의 약국이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제약회사들이 도매상이나 약국에 이전보다 높은 담보를 요구하는 경우가 많아 약국들이 약품 구입에 더 큰 어려움을 겪고있다. 심지어 자금이 있어도 약품을 구입하기가 쉽지 않다. 의약분업 본격 실시를 앞두고 약품 포장단위를 바꿔야 하는 제약회사들이 해당 약품의 소요량 측정이 어려워 이로 인한 재고부담을 우려해 생산량을 크게 줄였기 때문이다.

경기도가 자체 조사한 의약분업 준비 이행 실태 결과는 약국의 준비 부족 상태를 그대로 보여줬다. 3일부터 일주일간 도내 병·의원 부근 약국 113곳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병·의원 처방의 95%선을 소화할 수 있는 700종 이상의 의약품을 갖춘 약국은 전체의 35%인 40곳에 불과했다. 전체 약국의 30%가 필수 의약품의 절반 밖에 갖추지 못해 의약분업이 시행되면 사실상 제기능을 하지 못할 것으로 분석됐다.

이같은 상황은 계도기간이 끝나가는 7월 하반기까지 변함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충청북도는 상황이 더욱 나빠 25일 현재 600종 이상의 약품 보유 약국이 전체의 21%에 불과했다. 무려 33%에 달하는 약국이 200종 이하의 약품만을 보유, 의약분업 참여가 불가능한 정도다.

준비 상황이 타 시도에 비해 낫다는 서울도 예외는 아니어서, 우리나라 병원 중 하루에 제일 많은 외래환자를 진료하는 서울중앙병원의 경우 인근 지역 약사회장이 “약국들이 준비가 안됐으니 원외처방전 발행을 자제해 달라”는 요청을 받을 정도였다. 가톨릭의대 강남성모병원은 도보로 갈 수 있는 인근 약국이 고작 1개소에 불과한데, 그나마 약품 준비 상황이 좋지 않아 원외처방전 발행은 꿈도 꾸지 못하고있는 실정이다.

사실 구비 의약품은 의약분업 본격 실시에 맞춰 어떻게든 억지로 준비할 수는 있을 것이라는게 전문가들의 예상이다. 그러나 환자들이 대기할 수 있는 공간과 주차 장소 등 부대시설을 준비하는 일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것이어서 이로인한 환자들의 불편과 혼란은 불가피할 전망이다. 서울시내 대형 약국들은 이미 100% 가깝게 의약품을 완비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주차 시설, 환자 대기시설은 전혀 마련하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하루 6,000명의 외래환자를 진료하는 서울중앙병원의 경우 의약분업 실시 이후의 상황은 극히 비관적이다. 인근 약국중 10대 이상 주차 장소를 확보한 약국은 전무하며 약국내 환자가 앉아서 대기할 수 있는 공간 조차 제대로 확보한 약국은 단 한군데도 없는 실정이다. 이같은 형편은 전국 거의 모든 대형병원 인근 약국이 공통으로 겪는 문제다. 특히 약국의 부대시설 확충 문제는 정부도 어떻게 손쓸 방법이 없어 속수무책이다.

“약품 구비에만 최소 4천만원 이상이 드는데, 주차장·대기실 같은건 꿈도 못꾼다. 환자들이 북새통을 이루며 약국 밖에 줄을 늘어선 모습이 눈앞에 선하다.” 한 대형 병원 앞 약국 주인의 하소연이다.

의약분업의 긍정적인 면을 부각시켜 국민의 참여를 최대한 끌어내기 위한 계도 시행은, 오히려 국민들로부터 의구심과 반발만을 사는데 그쳤다는게 중론이다. 대부분의 환자들은 원외처방전의 불편함을 예상, 원내처방을 요구했으며, 원외처방을 자원한 환자들 마저 혼란과 불편함을 호소했다. 준비가 비교적 잘됐다는 병원과 인근약국도 의약분업이 전면실시됐을 때 환자들의 온갖 불만이 터져나올 것을 두려워 하고 있다. 인천 길병원의 경우 병원 바로 옆에 대형 약국이 3개나 들어서는 등 인천지역에서 가장 여건이 좋은 편인데도 원외처방전을 희망한 환자는 하루 10명에 불과했다. 환자들의 인식이 이처럼 낮은 상태에서, 과연 8월부터 전면 원외처방전 발행이 가능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의약계 모두 의구심을 나타내고 있다.

그동안 의약계 눈치만 보며 숨죽이고 있던 제약업계가 시험 시행을 겪으며 본격적으로 불만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한국제약협회가 처방약 공급에 대비, 소포장 생산설비를 도입하는 등 추가 부담 비용을 앞으로 보험약가에 반영하거나 금융세제지원을 통해 보전해 줄것을 복지부에 건의한 것이다. 협회는 약사의 대체조제를 위해 약효동등성시험을 실시하는 과정에서 품목당 10만∼50만원 가량의 시험비용을 지출하는 등 분업준비로 수백억원의 추가부담을 지게됐을 뿐만 아니라 처방약 공급을 위해 포장용기 및 포장단위 변경에도 상당한 추가비용을 부담하고 있다며 볼멘소리를 내고 있다.

계도기간이 끝나고 본격적으로 의약분업이 실시되면 의약품 반품이 잇따를 것으로 예상돼 제약업계가 입을 추가 피해 규모는 수천억원대에 이를 것이라는게 이들의 주장이다. 제약업계는 정부시책의 변경으로 초래된 추가 부담인 만큼 어떤 식으로든 보상받아야 겠다는 입장이어서 앞으로 이들과의 마찰도 순탄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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