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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의료과오 현황과 보험위기-19

미국 의료과오 현황과 보험위기-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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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5.02.02 1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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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훈(재미의사/의학칼럼니스트)


미국 간호사와 의료사고-2


담당의사와 윤리갈등

미국병원에서 의사와 간호원(RN)은 제각각 독립적인 전문직업이며, 개방병원의 환자주치의인 개업의는 병원과 계약관계에 있고, RN은 병원고용인이란 차이가 있을 따름이다.

환자진료 책임을 맡은 주치의는 회진할 때나 환자와 직접 대면하지만, RN은 교대로 24시간 환자를 보살피는 책임을 지므로 환자와 대화하는 기회가 많을뿐더러 그들의 상태를 가장먼저 파악하는 위치에 있고, 환자의 문제점을 의사에게 전달할 의무가 있다. 그리고 여러 의사들의 진료행위를 직접 목격하고 관여하는 RN은 각 의사들의 실력과 성의를 가장 잘 알고 있는 존재이기도 하다.

진료에 무성의한 주치의를 두고 “의사를 바꿔라”고 환자에게 권고했다가 병원에서 쫓겨난 RN이 제소한 사건을 먼저 소개한다.

NC(노스캐롤라이나)주의 케이스로, 간호사 `A'는 어떤 병원환자가 환상증상을 나타내며 정신이 이상해지고 갑작스런 고통이 있어 보여, 이를 병상일지에 기록한 뒤 누차 주치의에게 연락하고 메시지를 남겼으나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그러던 중 환자상태는 악화되어만 가고 있어 당황한 환자가족들은 어쩌면 좋을지? 담당 RN에게 물었다. 딱한 입장을 동정한 A는 가족에게 “다른 의사로 바꾸면 좋겠다”고 권고했으며, 이 말이 탄로나 A는 고용주인 병원당국으로부터 파면됐다.

여기에 A는 병원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으며, “자기는 RN으로서 환자와 가족에게 교육과 상담(teaching and counselling)을 제공할 의무가 있다”는 소송이유를 내세웠다.

법률 이슈와 결과: 이 소송에서 논란의 핵심은 ‘환자 케어 책임을 진 RN이 환자에 대한 ‘의무와 책임’의 한계가 어디까지냐?’가 문제이다. 특히 환자가 악화되는 상태에서 반응이 없는 경우 “의사를 바꾸라”는 말이 윤리적이고 합당한 ‘RN 의무사항’이냐는 것이 이슈이다.

환자의 최선을 위해서 파면을 각오하고 대담한 충고를 해야 하나? 하는 윤리적 난관은 RN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일이다.

이번 케이스에서 법정판결은 “RN은 주저하지 말고 환자를 위해 최선을 다하라”는 방향을 제시해 주었으며, 의사를 바꾸라는 말이 환자에 대한 `교육과 상담'의 역할임을 인정했다. 더구나 노스캐롤라이나 주의 간호원 업무법(Nurse Practice Act)에도 `교육과 상담'이 RN의 의무라고 명시되어 있다.

병원측은 “RN의 그러한 언동(환자상담)은 의사면허증도 없는 RN의 의료행위에 속한다”고 주장했으나 법원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리고 RN의 결정을 뒷받침하는 RN기록 즉 환자의 건강상태와 악화경위 및 RN이 취한 행위를 상세히 기록한 병상일지를 법정은 존중한다고 강조했다. 의사의 의료행위는 물론 간호업무에 있어서도 기록의 중요성을 말해주고 있다.


정맥주사 기술 부족

필자가 수련의시절 겪은 일이지만 정맥혈관주사(IV)를 여러 번 시도하다가 환자의 미움을 산 일이 더러 있다. 의대교육과정에 주사 놓는 기술훈련은 없고 RN의 경우도 교육보다 경험을 통해 IV 요령을 습득하는 일이 주다. 그리고 특히 급성병원에서 IV는 RN 일과의 기본기술에 속한다.

캘리포니아주의 어떤 병원에 입원한 여자환자 B는 남자 RN C가 주사바늘을 2번이나 아프게 찔러 실패하고 3번째 고통스럽게 겨우 IV를 시작했다고 비난하며, RN의 태만결과 주사부위에 상해를 입어 오른편 손이 불편하게 되었다고 비난했다. 퇴원 후 B여인은 “서툰 IV 때문에 오른 손에 RSDS(Reflex Sympathetic Dystrophy Syndrome, RSDS는 총탄이나 파편 등 고속도의 상해로 인한 피해부위의 신경장애증후군이며, 주로 수족에 입은 상처에 온다. 상처부위의 심한 동통과 과민한 피부감각과 부종을 동반한다)이 생겼다”는 이유를 들어 병원과 RN C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담당 RN과 함께 병원을 소송하는 근거는 Respondeat Superior(라틴어. let the master answer)주의, 즉 고용인의 과오행위는 고용주도 책임져야 한다는 원칙에 의해서이다. 가령 현대회사의 운전기사가 자동차사고를 일으키면 그 책임은 현대회사에게 전가된다. 이를 미끼로, 의료사고소송에서 원고는 병원이라는 큰 몫을 겨눌 수 있게 된다>.

치료를 요하는 병원환자의 약 90%는 IV를 요하지만 IV 전문팀이 없는 병원이 많으며, RN이 IV를 시작해야만 한다. 한 RN이 한두 번 IV를 시도했다가 실패하면 다른 RN에게 의뢰하는 것이 병원규칙이며, 드문 예로 정맥을 발견하기 힘든 경우는 담당의사에 보고하거나 전문기술의 RN을 불러야만 한다.

그리고 환자가 주사부위의 통증이나 불쾌감을 호소하면 RN상부나 경험 많은 RN에 알려야 하고, 주사부위가 붉게 되거나 붓거나 하는 증세를 기록하여 주사부위감염이나 주사액의 외부조직침윤 등 주사합병증을 감시해야만 한다. 그래서 만일 문제가 있을 경우 주사부위를 옮기고 적절한 합병증치료를 하는 것이 상식이다.

여기서 IV와 관련된 RN과 병원의 태만행위가 제소될 경우 IV 기술의 좋고 나쁨은 거론되지 않으며, 이번 케이스처럼 법정에서 논란이 된 항목은 다음 3가지다.

a. 3번째 시도해서 성공했다는 주사는 문제가 없었는가.
b. IV에 수반한 합병증에 대한 관찰과 기록이 잘 되어있는가.
c. 원고가 주장하는 RSDS가 당일 피고 RN의 주사시도와 인과관계가 있는가.

여기서 a와 b는 아무런 하자가 없었으며, 병원고용기록에서 RN C는 자격과 능력을 갖춘 간호원으로 인정받고 있었다.

RSDS와의 인과관계(위의 c)에 대해서도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전문인 증언이 우세했다.

판결: 이상의 결과로 지방법원에서 원고는 패소했으며, 상소심에서도 RN과 병원의 태만을 찾아볼 수 없었다. 여기서 주목할 일은 가장 흔한 주사요법이 RN의 기본업무에 불과하지만, 그 합병증 때문에 의료과오가 그림자처럼 따른다는 사실이다.


Restraint 시비


미국에서 매년 1만2천명이 전도(顚倒)사고로 사망하며 이 사망률은 자살을 제외한 사고사망 중 자동차사고에 다음가는 순위다.

미국노인(65세 이상)의 1/3은 해마다 한 번 이상 전도사고를 겪고, 사고환자 10명 중 1명은 대퇴부골절을 비롯한 여러 골절 또는 뇌출혈 등 치명적인 두부손상을 입게 된다.

그래서 응급실에 실려 오는 노인의 10%는 전도사고 때문이고, 그중 60%가 긴급 입원한다.

병원의 노인환자사고 중에서도 특히 정신상태가 혼미한 환자의 전도사고가 가장 높아 문제가 되고 있다. 이럴 경우 사고예방책으로 의사는 ‘환자의 거동을 제약하는 Restraint’(제약. 여기서 Restraint라 칭함) 명령을 내린다. 여기엔 2가지방법 즉 진정제 등 약물을 이용하는 화학적인 Restraint와, 기계를 이용하거나 또는 가죽이나 벨트로 좌석이나 침대에 환자를 고착시키는 물리적 Restraint가 있다.

Restraint이라는 구속자체로 인한 상해사고도 많으며, 이는 제3자 특히 가족에게는 극히 비인도적으로 보이는 달갑지 않은 방법이다. 그러나 간호원 1명이 20∼50명 환자를 보살피는 요양원 등에서 불안전한 환자를 24시간 옆에서 감시한다는 일은 실제 불가능하며, 더구나 게으른 간호원은 전도 등 사고를 피하기 위해 Restraint를 남용하는 경향이 있다.

감독기관에서는 약물과 물리적 Restraint를 남용하는 직접원인이 인력부족, 부적격한 치료프로그램, 부족한 회복기 서비스 등이라고 지적한 바 있지만 뾰족한 해결방법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병원이나 요양소에서 환자 Restraint 명령은 의사의 재량에 속하지만, 대개의 경우 “Apply Vest PRN or As Needed for confusion”으로, “필요할 때만 사용하라”라는 애매한 처방명령만 내리고 있다.

평소 간호원은 불가피할 경우에만 최후수단으로 이 방법을 사용하라는 교육을 받아 왔기 때문에, 갑자기 정신이 혼미해진 환자와 직면하고서 의사와 즉시 연락이 안 될 때는 당황하기 마련이다.

이 문제와 관련된 케이스를 소개한다.

병원에서 대퇴골수술을 받고 회복기에 접어든 한 노인여자환자가 요양원에 입원했다. 입원서류에 의하면 환자정신상태가 혼미하고 보행이 불안전함으로, 보행은 반드시 보행기(walker)를 이용해야한다고 적혀있다. 더구나 ‘전도 위험도가 높은 환자’라는 표식이 붙어있으며, ‘환자는 말을 듣지 않아 병원에서 Restraint가 필요했다’는 기록도 있다.

요양원 입원시 환자가 몹시 혼미했음으로 RN은 즉시 의사에게 전화메시지를 남겨 연락오기를 기다렸으며, 그 동안 환자를 Restraint 없이 감시 중 그만 전도사고가 나서 환자는 큰 타박상을 입었다.

감독기관(주 정부)에서 나온 조사원(RN)의 보고는 “반드시 Restraint를 요하는 환자”라고 지적하고, 사고원인을 “요양원과 간호원의 태만행위”에 돌렸다.

환자가족은 소송 제기했으며, 법정전문가의 증언도 ‘주 정부보고’를 인정했다. 그런데도 법원판결은 전문가증언서류접수가 법정시효일자를 초과했다는 이유로 무효로 돌려, 소송을 기각해 버렸다. 여기에 불복한 원고는 상소했으나 마찬가지 결과였다.

이러한 판결사실은 회색지대에 놓인 애매하기 짝이 없는 Restraint 문제를 과학자나 윤리학자가 아닌 법관이 관여할 바가 아님을 시사하며, 기술적인 하자(시효초과)를 이유로 소송을 기각한 판사의 지혜를 필자는 높이 평가하고 싶다.

Restraint의 한계는 귀에 걸면 귀고리라 아직 아무도 모르기 때문이다.


골절이 누구 탓이냐?

말기 암 환자가 병원에서 입은 골절사고를 두고 법정에서 누구 탓이냐? 하는 논란이 된 케이스를 소개한다.

오하이오주 어느 병원에 휠체어를 요하는 암 말기환자 K가 입원하여 소정의 화학요법을 받았다. K는 폐암 3기며 여러 골격에도 이미 암이 전이되어 있었다.

아시다시피 폐암은 미국에서 가장 사망률 높은 암이고, 매 3분마다 1명 꼴로 발생하며 매 1시간마다 18명이 죽어 가는 흔한 암이다.

환자퇴원예정 날 아침 담당 RN은 침상에서 환자 K를 일으켜 침대 옆에 잠깐 서있게 하고서, 환자를 태우기 위해 휠체어를 고정시키고 있었다. 이 잠깐 사이에 K환자는 땅바닥에 넘어져 대퇴골절사고가 발생한 것이다. 대퇴골절의 X선-소견과 넘어지기까지의 캐어 과정을 정밀검사해 봤으나, 넘어졌기 때문에 골절이 생겼는지? 아니면 병리(Pathological)골절 때문에 넘어졌는지 결론이 나지 않았다.

환자는 말기 암으로 곧 사망했으며, 사후 가족은 거금을 얻고자 담당 RN과 병원을 걸어 고소했다. 그러나 원고는 “넘어졌기 때문에 골절”이라는 주장에 충분한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1심에서 패소했고, 상소심의 전문가증언에서도 전도가 먼저냐? 골절이 먼저냐? 입증할 수 없었다. 특히 “병리골절위험도가 있는 환자에서는 원인감별이 불가능하다”는 정형외과전문의의 증언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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