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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의학의 금과옥조 EBM

현대의학의 금과옥조 EBM

  • Doctorsnews kmatimes@kma.org
  • 승인 2005.02.02 1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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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훈(재미의사/의학칼럼니스트)


최근 주목받게된 EBM(Evidence-based Medicine, 과학적 근거에 바탕 둔 의료)은 의학연구에서 얻은 지식중 가장 신빙성 있는 증거를 골라, 이를 임상의학연구를 통해 인체에 도움되고 해가없다고 실증된 의료만을 환자에 적용하는 의학을 말한다.

예를 들어 동물실험상 또는 임상실험이나 경험상 인체에 좋은 효과가 있다고 알려진 약물이나 식품이라도, 과학적(통계학적)으로 인체에 유익하다는 타당성이 입증된 증거만을 바탕으로 해서 의료(진단과 치료 등)에 이용하는 새로운 의학이 EBM이다.

미국의 AHCPR(Agency for Health Care Policy and Research, 의료정책 및 연구기구)에서 임상의학연구의 타당성평가의 기준을 제시해 주고 있다.

종전에 의사들의 경험이나 또는 권위자들의 의견을 토대로 시행해온 경험위주의 의료는 현대과학이 진보됨에 따라 주먹구구식 의료로 격하되어 신뢰성을 잃게 되었으며, 여기에 대치하여 새로 나타난 증거(Evidence)본위주의가 임상을 지배하는 시대가 되었다.

EBM의 불가결한 요소로 RCT(Randomized controlled trial, 무작위임상비교시험)가 등장했다. RTC는 미국서 약품효과 판정에 많이 이용되고, 여기서 무작위로 플라세보 그룹과 비교하여 약품사용이 플라세보 효과보다 낫다는 사실을 입증해야 판매가 허용된다. 더 나아가 진단과 모든 치료에도 RCT가 많이 적용되고, 임상에서 외과요법과 내과치료의 효과성비교에도 쓰인다.

약복용 후 그에 대한 검사결과 수치개선만으로 치료효과가 있다고 판정했던 시대는 지났으며, 그 약을 사용함으로써 사용 않는 자보다 더 수명연장이 되거나 중대한 질병예방에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입증해야만 한다.

가령 콜레스테롤 강하제의 사용으로 심장병(심근경색)예방이 되고 약 부작용이 적어, 같은 조건하에서 약 복용하지 않는 자보다 수명이 길다는 사실을 증명해야만 약 효과가 있다고 단정할 수가 있다.

이러한 RCT는 그 범위가 대규모라서 큰 기관에서만 연구가능하고 너무나 장기간 세월이 걸리기 때문에 도중 중단하는 경우가 많다는 등 여러 결점도 있지만, 그래도 의학연구의 평가기준으로 학계의 인정을 받고있다.

질병치료와 예방에서 임상 역학(Clinical epidemiology)의 중요성이 나날이 강조되고 있으며,
코호트 연구는 각 집단에 대한 생활습성의 요인을 조사한 후 그 집단의 질병 발생상황을 장기간 추적하는 연구조사를 말한다.

역사상 가장 세인의 이목을 끈 연구는 '영국의사들의 흡연조사'이며, 이 연구의 창시자들은 모두 왕실의 작위를 얻는 영광을 누렸다. 1950년대 초 영국의 의사 4만 명을 대상으로 이들을 4 코호트 즉 비흡연, 가벼운 흡연, 중등도 흡연, 심한 흡연의 4개 그룹으로 나누어 오랜 세월에 걸쳐 이들의 질환별 사망원인을 추적하였다.

그리하여 10년 지난 1964년의 중간검토에서 흡연담배분량과 폐암사망률이 비례한다는 사실이 입증됨에 따라, "담배를 많이 피울수록 폐암에 걸릴 찬스가 크다"는 결론을 발표했다. 그리고 이 기념비적인 연구의 20년(1976) 및 40년 추적조사(1994, BMJ 309)는 "흡연유해론"을 확고히 했다.

코호트 연구 중 특히 암과 순환기질환의 1차 예방연구는 국제적 학술협력기관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다. 1948년에 출발한 순환기질환연구 Framingham Heart study는 54년이 지난 현재도 계속되고있으며, 이 연구결과 생활습성과 연관된 특정위험인자, 즉 고혈압과 높은 콜레스테롤과 흡연이 심장혈관질환발생의 큰 위험인자라는 사실과 여러 가지 중요한 예방 및 치료법이 입증되었다.

그리고 프랑스의 Lyon에 본부를 둔 WHO의 국제암연구기구(International Agency for Research on Cancer)의 주도하에, 세계전지역에 걸쳐 생활습성과 연관된 암의 분포와 발생률 및 사망률을 비교조사 연구해서 암의 예방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EBM 실천을 위해서는 다음 과정이 필수적이다.
1. Formulating a key question(임상문제에 대해 주요한 의문점 설정)
2. Information collection(임상문제에 대해 과학적 연구정보수집)
3. Critical Appraisal(정보의 비평적 평가)
4. Clinical application(환자에의 적용)

즉 주요 임상문제에 대한 의문점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여기에 대한 광범위한 정보와 연구결과를 수집하고, 이를 과학적 선별적으로 평가분석 하여 타당한 결과를 임상에 적용하는 현대 임상의학이 EBM이다.

오늘날 임상의료에 불가결한 EBM이 각광을 받게된 것은 미국서 근래 JAMA(1992.11.4.)에 EBM 연구팀의 논문이 소개된 이후이다.

이 논문에서 과거 1960년대 이후의 급속한 임상의학 연구발전으로 과거의 의료결점이 누적됨에 따라, 1990년대에 이르러 임상의학의 범례변동(範例變動, Paradigm Shift)이 불가피하게 됐음을 의료계에 알리고 있다.

새 시대의 새로운 패러다임이 바로 EBM이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종전의 여러 불확실한 패러다임을 제거하게 되었다.

EBM의 No(과거)와 Yes(현재)

A. 비체계적인 임상경험을 믿지 말아야 한다: 전통의학이 바로 이것이다. 만일 그것이 가치있는 의료라고 인정되더라도, 반드시 EBM과정을 밟아 최소한 RCT라는 현대의학의 검증을 거쳐야만 한다. 일본은 130년 전 과학입국이라는 정부의 강한 의지와 영도력으로 전통의학에서 탈피하는데 성공했다.

한국에서 여기에 대한 문제제기는 한이 없으며, 멀지 않은 장래에 현대의학의 테두리에서 전통의학을 흡수하고 연구하는 날이 한국에 오기를 기원할 따름이다.

B. 기초의학연구결과를 임상의학에 무조건 적용할 수 없다: 과거 연구실에서 쥐실험 연구에서 생체에 유익하다고 결론 얻은 지식을 그대로 인체에 적용하는 일은 1세기 전 옛이야기다. EBM 시대에 있어서는 이러한 쥐실험 결과가 다음 여러 과정을 거쳐서 인체에도 유익하다는 증거를 제시하지 않는 한, 사람에 함부로 적용해서는 안된다. 쥐와 인체는 완전히 다른 생체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동물학자들에 의한 쥐 실험에서 소식하는 쥐가 포식하는 쥐보다 오래 산다는 연구가 오래 전에 나왔다. 가치 있다고 귀를 기울일만한 연구였다.

다음에 미국노화연구소에서는 인간과 유사한 원숭이를 몇 10년간 사육하면서 쥐에서와 같은 실험을 했던 바 역시 같을 결과를 유도했다. 그렇다고 해서 만물의 영장인 인간에게 동물실험결과를 함부로 적용시킬 수는 없으며, 비인도적인 인체실험을 해서도 안된다.

그러나 장기간에 걸친 코호트 연구 즉 인간의 집단적인 역학연구를 통한 조사결과 소식집단이 대조그룹보다 장수한다는 결과를 유도해 냈으며, 그 기전설명도 제시하기에 이르렀다. 쥐와 인간에 동일한 결론을 얻은 좋은 예라 하겠다.
이와 달리 상반된 결론이 나온 예도 있다.

동양인이 좋아하는 녹차(green tea)에 함유된 polyphenol이 세포손상을 막는 작용이 있다는 여러 보고가 있다. 세포배양과 쥐실험을 통한 연구며 녹차에 의한 '암 예방의 가능성'을 시사했다는 점에서 주목을 받았다. 그후 중국과 일본에서 녹차복용과 위암발생이 반비례한다는 여러 보고가 나왔다. 그 결과 "녹차가 위암을 예방한다"는 소문이 퍼지게 되고, 미국사회에 녹차가 '건강식'으로 부상했다. 허지만 녹차를 마시지 않는 미국에 위암발생이 가장 낮다는 사실로 미루어 내용이 의심되기도 했다.

알고 보면 동양의 임상연구는 RCT(무작위임상비교시험)가 아닌 단순한 '증례 대조연구'라는 방법을 사용했기로 신빙성이 적었다.

그런데 일본의 M지역에서 40세 이상 2만6천명을 대상으로 9년간 추적한 녹차조사연구(전향적인 코호트 연구)에 의하면, 녹차복용과 위암 위험도는 하등 연관성이 없는 것으로 확인됐고(NEJM, 2001. vol. 344), 이 기사는 뉴욕타임을 비롯한 세계 뉴스에 보도되었다.

일본서 같은 해(2001년 8월) 발표된, 3만9천명을 14년간 추적한 연구조사도 같은 결론이었으며, 여기선 하루에 녹차 5잔 이상을 마셔도 위암이나 다른 암의 감소는 볼 수 없었다. 뿐 만 아니라 하와이 일본계 1만2천명을 20년간 추적연구에서도 녹차의 위암 예방효과는 전혀 없었다.

이러한 사실은 몸에 좋다는 전통적인 믿음과 선입견에도 불구하고, 기초연구를 임상에 적용할 수 없는 좋은 예이다. 그러나 녹차조사에서 몸에 해롭다는 증거는 나타나지 않은지라, 개인 취향에 따라 마셔도 괜찮은 것으로 되어있다. 과거 다이어트 약제(fen phen 등)가 판매금지 되고, HRT(여성호르몬요법)가 경고를 받은 조치와는 다르다.

C. 전통적인 의학교육과 상식만으로 충분했던 종래의 의료지식에서 벗어나야 한다: 항상 의학문헌을 가까이 친숙해서 잘 해독하고, 인터넷과 정보화시대에 적응한 새로운 의료지식에 도전해야만 한다. 불확실한 상황에 대응 할 실력을 준비해야하며, 그런 경우 의료결정을 내릴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

그래서 "의사는 평생교육을 요하는 직업"이라는 말은 세월이 갈수록 더욱 실감케 된다.
오늘의 옳은 치료가 내일의 첨단연구결과 달라질 수 있으니, 수시로 변동되는 의료문제에도 적응해야 할 것이다.

요즘 말썽이 있는 여성호르몬이 좋은 예라 하겠으며, 득보다 실이 크다는 최근 연구결과(2002년 7월 미국 NIH 발표) 호르몬사용이 재검토되고 있다.

D. 임상의료가이드라인작성에 있어서 대가들 의견은 금물이다: 특히 과거 임상의료가 유명한 교수나 성공한 개업의사의 말과 경험을 인용하던 모순을 새로운 패러다임인 EBM에서 경고하고 있다. 지금도 전통 의약광고에 횡행하고 있는 이러한 처사를 현대의학에서 본받아서는 안된다는 말이다.

듣기로 최고의사만 찾는 일부 한국상류층의 경향도 결코 건전하다고 보기 힘들다. 전문분야 교육과정과 자격증과 경력을 갖춘 의사라면 큰 차이가 없다. 일부 의사들이 실없이 인기획득에 신경 쓰는 이유는 한국인의 '최고'병 탓일 것이다.

30년 전 필자가 겪은 농담 아닌 진담 이야기를 하나 들어본다. 미국서 대학교직에 있다가 한국에 나간 인문계 교수친구가 있다. 몸에 불편한 곳이 있어 C대학병원의 M박사에게 꼭 진찰을 받고싶으니 소개해 달라는 부탁이 왔기로, 연락해 주었다. 훗날 M박사를 만났을 적에 그 친구 병을 물어봤더니, '치질'이라는 말을 듣고 미안했다. 치질진단을 대통령주치의한테서 받아야만 안심이 되는 것이 일부 상류층의 의식구조라면 할말이 없다.

미국에서는 FDA(Food and Drug Administration)의 엄격한 규제 때문에 허위광고가 드물지만, 한국언론엔 문명국답지 않게 아직도 "만병통치 한다"는 약제광고나 대체의학의 과대망상적인 의료선전문을 이따금 본다. 전통 의약광고에서 무당꾼의 우상같은 카리스마사진을 내세우는 일은 새롭지 않으나, 현대의학교육 받은 위인이 자기출신학교와 학위를 팔며 대체의학의 약장수노릇 하는 모습은 한심한 일이다. 이런 것들 모두 현대의학에 이르는 과정이라고 보아 넘길 일이 아니며, 불법의료광고에 대한 엄격한 규제도 필요할 것이다.

의학에서 권위주의시대는 옛날에 지났고, 현대는 과학지식에 의한, 과학적인 치료를 위한, 과학의료라 할 EBM 시대가 되었다고 하겠다.
결론적으로 귀중한 인간의 생명을 다루는 최신임상의학에서, EBM은 우리 임상의사의 금과옥조(金科玉條)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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