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사가 아니라 내 자신의 일입니다
봉사가 아니라 내 자신의 일입니다
  • 김병덕 kmatimes@kma.org
  • 승인 2005.01.26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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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마천동 서내과의원 서대원 원장

마천동의 슈바이처로 불리는 서대원 원장은 사전조사에 의하면 38세의 젊은 남자 의사라는 점, 서울 마천동에 있는 '청암요양원'과 '소망의 집'에서 꾸준히 환자들을 돌보며 봉사를 하고 있다는 점이다. '슈바이처로 불리는 젊은 의사는 어떤 모습일까?'라는 호기심이 가득한 채, 병원 문에 들어선다. 훤칠한 키에 호남형의 의사가 활짝 웃으며 반긴다. 그의 첫마디는 "어서 오세요. 어디가 편찮으신지..." 이런, 환자로 착각한 모양이다. "저 오늘 인터뷰하기로 한 기잖데요."라고 말하자, "아차! 제가 깜박 잊고 있었습니다. 제가 요즘 좀 정신이 없거든요. 내일이 결혼식이라서…." 다급하게 인터뷰 일정을 잡은 이유를 이제야 알아냈다.

 

서대원 원장은 2000년 9월, 서울 마천동에 서내과의원을 열면서 청암요양원과의 인연이 시작됐다. "2000년 7월에 의약분업이 있었는데, 그때 의사들이 파업하면서 청암요양원의 상근의사 자리가 공석이 됐어요. 대부분의 할머니들이 고혈압, 당뇨병 등 질환을 앓고 있었기 때문에 지속적인 치료가 필요했죠. 그때 저는 개원한 지 얼마 되지 않아 할일도 별로 없고... 하하. 상근의는 아니고 촉탁의로 일주일에 3번 진료하기로 했죠." 하지만 내과전문의의 특성상 매일 환자들을 회진하는 습관이 있어서 출근하기 전 매일같이 청암요양원을 방문했다고. 그곳에 있는 할머니들은 무려 120여명. 오전 8시30분부터 시작된 진료는 꼬박 1시간이 걸렸고, 이는 일요일에도 이어졌다.

처음에는 할일이 없어서(?) 촉탁의로 시작을 했다지만, 지난 4년간 이어진 데는 특별한 이유가 있을 듯. "병원에서 환자를 보는 것은 다분히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것이지요. 영리를 위한 진료만 했으면, 저 스스로 굉장히 짜증스러웠을 겁니다. 그리고 제가 할머니들한테 굉장히 인기가 좋거든요. 하하." 그곳에 있는 할머니들은 사실, 질병을 치료하는 것보다 외로움을 달래주는 것이 우선이라고. 때문에 서 원장이 방문하는 시간인 오전 8시 30분을 손꼽아 기다린다. 그런 할머니들의 마음을 알기에 서 원장은 청암요양원을 들어서면서 "어머니~ 안녕하세요! 안녕히 주무셨죠?"라고 큰소리로 외친다. 요양원을 나설 때면 어김없이 그의 손엔 할머니들이 아껴두었던 우유와 과자 등이 들려있다고.

"연세가 많으셔서 위급한 상황이 많이 생기죠. 한번은 주일에 할머니 한분이 가슴에 통증을 호소하며 실신해서 눕혀놨다는 연락은 받았는데 심근경색인거 같았어요. 119를 부르기에도 시간적으로 촉박한 상황이었고, 다행히 제가 요양원 근처에 있었기 때문에 바로 달려가서 혈관조형술을 했죠. 지금은 건강한 모습으로 지내고 계십니다." 그렇게 치료한 할머니들을 볼 때마다 흐뭇해지는 것이 보람이라면 보람이다. 지난 4년간, 아니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할 수 있는 원동력이기도 하다.

그의 일이 알려지면서 2003년 1월, 보건복지부 장관으로부터 감사패를 받았다. "별거 아네요. 그냥(?) 주시길래 받았죠. 사실 청암요양원이 서울에서 꽤 좋은 요양원이거든요. 그래서 영부인도 가끔 오시고, 보건복지부 장관도 가끔 오시죠. 서울에서 좋다는 말은 전국에서 좋다는 말입니다. 이는 우리나라에 이런 시설이 많이 부족하다는 반증이죠."라며 서 원장은 씁쓸한 미소를 짓는다.

현재 그의 최대 관심사는 노인병과 노인복지이다. 점점 고령사회로 가는 것을 보며 노인에 대한 전반적이 대책이 있지 않으면 사회적으로 큰 몸살을 앓을 것이라고. "의대생일 때부터 노인병에 대한 생각이 많았어요. 차에 비유하면, 새차는 문에 기스가 날 경우 도색만하면 그만이거든요. 하지만 오래된 차들은 한 가지가 고장 났을 경우, 그걸 고친다고해서 다 해결되는 게 아니잖아요. 머지않아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하죠. 사람의 몸도 똑같습니다. 전반적인 문제를 해결해야하죠. 사실, 청암요양원에서 촉탁의 제의를 받았을 때, 흔쾌히 승낙한 이유이기도 합니다."라고 말하며 여력이 된다면 노인을 위한 사회단체를 운영하고 싶다고 말한다.

 

서 원장은 청암요양원에서의 일은 봉사가 아닌 자신의 일이라고 생각한다. 진정한 봉사는 레지던트 때부터 시작한 '소망의 집(서울 마천동 소재)'에서부터라고. 소망의 집은 3~4세에서 20세까지의 지체부자유자인 아이들이 있는 곳. 95년부터 이곳을 방문했으니, 올해로 딱 10년째다. 지금은 청암요양원에 묶여(?) 있어, 한달에 한두 번 정도밖에 방문할 수 없다며 아쉬워한다. "소망의 집은 진료하는 것이 아니고, 아이들과 놀아주러 갑니다. 제가 아이들을 무척 좋아하거든요" 단순히 놀아주러 간다고 말하지만, 강원도로 공중보건의를 갔을 때도 서울만 올라오면 틈틈이 이 곳을 찾았을 정도로 애정을 갖고 있는 곳이다.

사실 서 원장이 청암요양원에서 촉탁의를 시작한 때인 2000년은 아버지 회사의 부도로 굉장히 어려운 상황이었다고 한다. 그래도 청암요양원의 촉탁의를 흔쾌히 받아들였고, 소망의 집에서의 봉사도 꾸준했다. 보통 자신이 여유로울 때 봉사란 단어를 떠오르기 십상이다. 하지만 이 젊은 의사는 다른 사람과 달리, 극한 상황에서 봉사를 시작한 데는 특별한 이유가 있었는데…. "저한테 위안이 됐어요. 저 또한 많이 힘들었거든요. 청암요양원의 할머니들은 보며 저희 부모님을 생각했고, 소망의 집의 아이들의 똘망똘망한 눈을 보며 '나도 한번 살아볼까?'하는 힘을 얻었죠. 어차피 시간도 없는데, 잠깐잠깐 들르면서 그 분들이 저에게 그 이상의 안식을 준 거 같아요."

 

 

그가 의사의 길을 선택한 데는 특별한 이유가 있다. "고등학교에 입학하기 전, 교회에서 양쪽 하지를 쓰지 못하는 소아마비 친구를 봤습니다. 우연히 고등학교 입학식에서 그 친구를 봤죠. 무심코 "업어줄까?"라고 말했는데, 그 친구가 흔쾌히 응하더군요. 자존심이 굉장히 센 친구였는데, 그 뒤로 3년간 그 친구의 등하교 길을 같이 했죠." 고등학교 2학년 때 그 친구가 음독자살을 시도했는데, 감수성이 예민한 시기의 서 원장에게는 꽤나 큰 충격이었다고. "시작은 순수했어요. 단순히 그 친구를 보며 '소아마비를 고쳐볼까?' 하는 생각을 했으니까요. 사실, 고칠 수 없는 병이란 걸 의대에 들어와서 알았지만…." 순수한 의도에서 시작했다지만, 그때의 그의 마음이 아직까지도 전해지는 듯하다.

"저는 봉사가 거룩하고 훌륭한 일이라고 생각하는 사회 인식이 없어졌으면 좋겠어요. 그냥 사회를 위한 매너고 내가 받은 것에 대한 환원으로 생각하죠. 저한테도 정신적으로 많은 도움이 되거든요. 사실 의사들은 봉사가 참 쉬워요. 이거(청진기를 들고) 하나면 어디서든 봉사가 가능하거든요." 라며 아직까지 같이 할 동료나 후배들이 많지 않다는 것이 아쉬울 따름이라고. "앞으로 기회가 된다면 다른 분들이 봉사하는 곳에서 같이 봉사하며 자연스럽게 그 분들과 만나고 싶어요."

 

인터뷰 내내 싱글벙글 웃음 짓는 그를 보며 내일 결혼할 이연희 씨에 대해 간단히 묻기로 했다. "그냥 모.. 좋은 사람이에요. 하하." 요양원의 할머니들에게 넉살좋게 "어머니"를 연발하는 그가 쑥스러운 듯 고개를 들지 못하고 얼굴까지 빨개진다. "청암요양원에 계신 분의 소개로 만났습니다. 현재 간호사고요. 저의 일을 모두 이해해주죠. 이렇게 생각하면 평일 오전이랑 일요일도 투자할 만 합니다. 하하. 저에게는 마음의 안정을 주고, 병원 직원과 지역 주민들도 '돈만 아는 의사는 아니구나'하는 생각을 하고, 또 평생을 함께할 동반자도 얻고…. 하하."

오늘 난 젊은 의사가 생각하는 봉사에 대해 배웠다. 시종일관 호탕하게 웃으며 별거 아니라고 말하는 그의 패기가 느껴진다. 그는 내일도 분명 오전 8시 30분에 우렁찬 목소리로 청암요양원을 방문해 넉살좋게 말할 것이다. "어머니~ 편히 주무셨죠? 소화는 잘 되시나요?".    

글_김순겸(보령제약 사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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