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와 이웃에 마음의 정 나누기
환자와 이웃에 마음의 정 나누기
  • 김병덕 kmatimes@kma.org
  • 승인 2005.01.26 12: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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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순명 선생

장순명 선생(63세)의 '슈바이처 박사'에의 동경은 이제 그리 선명하지 않은 듯하다. 동경에서 '동감'쯤으로 바뀌었다고 할까. 어릴 때 입버릇처럼 '크면 아프리카에 가서 일하겠다'라고 말했다는 친구들의 기억을 전해주었다.

한 가지 분명한 말은, "어릴 때부터 종교를 가지고 있어서 신부가 될까, 의사가 될까 고민했는데, 의사가 되는 게 하느님을 위해서 더 적극적으로 일할 수 있는 일이 아닌가? 해서 의대에 입학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1968년 서울대 의대(일반외과 및 흉부외과)를 졸업하고 수련의 과정을 마친 1973년, 신문에 난 아프리카에서 진료할 '의사 모집 공고'를 보고 지원했다.

"당시, 우리 나라가 쇄국 정치를 했었어요. 그러니까 일반 서민들이 외국에 한번 나가본다는 것, 국제선 비행기를 타본다는 건 굉장히 어려웠어요. 아무나 못했어요. 일반 서민들은 저 바다 건너 뭐가 있나 굉장히 궁금하고 동경했거든요. 그때 의사 일곱 명이 갔어요. 저는 리라병원으로 배치받았죠."

우간다의 수도 캄필라에서 400킬로미터쯤 떨어진 리라병원, 그곳에서는 2년간 근무했지만 전적으로 슈바이처 박사의 삶을 닮지는 않은 듯했다. 병원 시설에서 물자, 인력 등 모두가 결핍된 상황만큼은 같았을 터. "그만큼 내 일손이 더 여러 군데 갔어야 했죠. 근데 그건 생각하기 나름이고, 뭐니뭐니 해도 사람들이 참 순해요."

아프리카에서의 2년 생활, 거기서 얻은 가장 큰 것이라면, '인간은 결국 다 같고, 얼마든지 이웃해서 같이 살아갈 수 있다'는 것. "수술해준 환자들이 닭도 가져오고 염소도 갖다 주고  그랬어요. 내가 염소를 못 잡으니까 간호원이나 그곳 관리 직원들이 잡아서 같이 먹곤 했죠. 재밌는 추억들이 많아요."

 아프리카에서 돌아온 후로는, 생활을 위해 울산 등지에서 근무했다. 아이들 키우고 살다 보니 세월이 훌쩍 지나 있었다. 그런 후에 옛날 생각이 나더라는 말씀이다.

"내 시절은 어려운 시절이었어요. 의학을 공부한 목적도 나 우선 먹고 생활해야 했으니까... 거기(아프리카)서도 그런 현실적인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던 것 같애. 그런데. 돌아와서는 어떻게나 돌아가고 싶은지... 지금 생각해보면 참 좋은 세월이었는데..."

돌이켜보니, 더 늦기 전에 해야 할 일이 있었다.

"최지영 씨, 돈을 번다는 건 내 인생과 바꾸는 거예요. 나중에 더 나이 들면 알게 될 거야. 인생이 더 늦기 전에, 옛날의 생각을 떠올렸죠. 신앙도 계속 가지고 있었으니까. 그렇게 시작한 게 10년 1개월째에요."

장순명 선생은 1993년 4월 1일부터 8년 동안 음성 꽃동네 인곡 자애병원에 상근하며 진료했고 지금은 일주일에 두세 번씩 서울에서 왕래하고 있다.

"세상에는 참 어렵고 힘든 사람들 많아요. 내 팔다리가 내 것이 아닌 사람들, 내 팔다리가 제 역할을 못하고 오히려 방해물이 되는 사람들. 경직된 다리, 굽히지도 펴지도 못하고, 걷지도 못하는 사람들.... 그 이상의 어려운 사람들 참 많아요. 한국에서 뿐만 아니라 세계에서도 그럴 거야, 제일 어려운 사람들 모아놓은 데가 음성 꽃동네 같아요. 거기서는 의학적인 치료가 한계가 있어요. 완치가 아니라 고통을 경감시켜주는 거죠. 마음을 위로해줌으로써 마음의 평화를 느끼게 하는..."

 서울에서 음성까지는 왕복 120킬로미터, 500리 길이다. 늘 다니던 길이라 이젠 습관이 됐다고 한다. 정정하다고는 하나 점점 기력이 떨어지는 건 어쩔 수 없는 세월이다. 요즘은 한 번 가면 이제 하루에 십여 명 정도 돌봐준다. 자원봉사 체계가 잘 정착된 곳이라 장순명 선쟁의 손도 그만큼 수월해졌다고 할까.

"주욱 보니 자원 봉사자들은 젊은 사람이어야겠습디다. 나이 든 사람은 있어도 크게 도움이 안 되겠더라고. 다들 몸이 불편하니 부축해줘야 하고... 나도 이제 젊은이들 곁에서 도와줘요. 허허."

 이밖에 장순명 선생은 송파구 거여동 교회에서 운영하는 지체 장애우들의 집에도 들러 그들의 일거리며, 소일거리들을 챙겨주고 있다. 가락동 성당에서는 평범한 신도로서 교우들과 함께 하며 필요할 때는 바로 의사의 손이 되어준다.

오랜 손떼와 닳아서 조금 헤어진 듯한 와이셔츠 담배주머니며, 좀 다혈질적이며 강직한 듯한 인상이 정확하다면, 의사로서 '돈을 벌지는 못했다'는 장순명 선생의 말은 그야말로 솔직함 그 자체다. 음성 꽃동네이든 교회이든 많은 사람들의 손길을 끌어모아 시끌시끌하게 움직이지는 않지만, 나이가 주는 눈으로 삶을 관조하면서 조용히 왕래하는 장순명 선생.

"슈바이처 박사를 닮고 싶었지만, 그 고고한 철학과 사상을 한 조각이라도 닮는다는 건 쉽지 않은 거고…, 그저 내 방식대로 우리 환자들과 이웃에게 마음과 정성을 나누는 그 정도죠, 뭐."

글/최지영 대리(보령제약 사보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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