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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미국 의학연구계의 자랑 김윤범 박사 -자랑스러운 서울대인으로 선정
시론 미국 의학연구계의 자랑 김윤범 박사 -자랑스러운 서울대인으로 선정
  • 송성철 기자 kmatimes@kma.org
  • 승인 2004.12.16 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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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철삼<재미 서울대동창회보 편집장>

 

 돼지 하나를 연구하는데 한 평생을 바친 사람이 있다. 정확하게 얘기해서 44년 동안 돼지만을 연구해 왔다.  

 그는 지난 1958년에 서울의대를 졸업하고 다음해인 1959년 8월에 미국으로 건너와 미네소타대학에서 공부를 계속해 1965년에 미생물학과 면역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곳에서 조교수, 부교수로 재직하다 1973년에 뉴욕의 코넬 대학 면역학교수와, 세계적으로 유명한 메모리얼 슬론-케터링 암센터(Memorial Sloan-Kettering Cancer Center)에서 면역학 실험실장으로 연구를 계속해 왔다. 1983년에 시카고의과대학에 초청돼 미생물-면역학 과장으로 21년 동안 근무한 뒤 지난 6월에 과장자리를 내 놓고 평교수로 근무하고 있다. 금년 75세. 김윤범 박사다.

 "의학계에서 연구를 할 때 대부분 쥐와 토끼를 사용합니다. 그런데 면역학 실험을 해보니 쥐나 토끼 등의 동물들은 태어날 때부터 '자연항체'가 있었습니다. 저는 면역체계발생기전을 연구하기 위하여 백그라운드 자연항체가 전혀 없는 동물을 찾았습니다. 인간을 포함한 모든 동물이 태어나기 전에 어미로부터 바깥세상에 나가서 살 때 살아남을 수 있도록 미리 예방 조치를 받고 태어납니다."

 그런데 유일하게 돼지는 아무런 항체 없이 태어난다는 것이다. 그럼 어떻게 살아남을 수가 있는가.

 "항체 없이 태어난 돼지는 어미 돼지의 젖에서 그것을 받게 됩니다. 태어나서 어미의 젖을 먹는 순간 그 안에 있는 항체들이 새끼 몸속에 들어가 세균들이 득실거리는 돼지 막사에서 마음 놓고 살아갈 수 있게 됩니다. 젖을 못 먹으면 물론 죽게 됩니다. 제왕절개를 해서 새끼를 꺼내어 어미젖을 못 먹게 하면 '자연항체'가 전혀 없어서 1개 세균에 의해서도 죽게 됩니다. 그러나 무균조작을 해서 무균실에서 키우면 살 수가 있어, 이것이 면역체계의 발생과정을 영점부터 관찰할 수 있는 강력한 수단이 됩니다."  

 코넬과 슬론-케터링에 옮겼을 때 NIH(미국 국립보건원)으로부터 자금 지원을 받아 뉴욕에 무균돼지의 사육장을 건설했으니, 역사상 최초의 '무균돼지사육장'이었다. 김 박사는 그곳에서 돼지 연구를 계속했다.

 시카고의과대학에서 스카우트 제의를 해왔을 때 김 동문은 "무균돼지사육장을 지어주면 가겠다."는 단서를 달았고 이를 받아들여 두 번째의 '무균돼지 사육장'이 시카고의과대학에 세워졌다.

 "최근에 모교인 서울대의대내에 무균돼지 사육장이 세워졌습니다. 그곳에 직접 가서 여러 가지로 자문을 해 주었습니다. 모교의 사육장은 세계에서 3번째로 만들어진 사육장입니다. 얼마 전 NIH에서 뒤 늦게 무균 돼지사육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미주리대학에 1700만 달러의 자금을 지원해서 2006년까지 완공하도록 했습니다."

 김 박사는 물론 이 무균돼지사육장의 설비에 필요한 모든 자문을 해주고 있다.

 "의과대학에서 실험용 동물로 주로 개와 원숭이 등을 사용합니다. 원숭이는 공급이 많지 않고, 개의 경우는 애완동물이라고 해서 반대가 대단합니다. 돼지를 사용할 경우 말이 없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돼지의 크기입니다. 너무 커서 실험에 적당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사람의 무게와 같은 돼지인 '미니어처(소형)돼지'사육을 생각한 것입니다."

 김 박사는 이 아이디아를 충족하는 돼지 즉 세상에서 제일 깨끗한 유일한 '무균 미니어처 돼지'를 생산하고 평생을 면역학연구에 헌신하여 많은 연구업적을 거두었다.

 한편 한국의 황우석 석좌교수팀은 '줄기세포'연구와 '형질전환복제동물'연구를 하면서 동물의 장기를 이식하려 할 때 각 동물마다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는 항원이 다르며 이들 항원 때문에 거부반응과 부작용을 일으키는 등 넘을 수 없는 고지가 있음을 발견하게 됐다.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무균의 동물에게 유전자 조작을 통해 이종이식(異種移植)용 '형질전환복제동물'을 생산하여 인체에 이식해야만 성공할 수 있다. 그러나 또 다른 문제가 있다. 예를 들어 돼지의 간을 이식해서 모든 면에서 성공했다고 가정해도, 얼마 안가서 간이 커지기 시작하여 배속이 간으로 가득 찰 만큼 커질 것이다. 그 이유는 돼지는 성장하면 인간의 4~5배인 400~500파운드로 몸집이 불어나게 되고 따라서 간의 크기도 비례해서 커질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이런 넘을 수 없는 고지를 넘게 해준 것이 바로 김윤범 교수의 '무균 미니어처 돼지'이다.

 김 박사는 장기이식을 위해 돼지 연구를 한 것이 아니었다. 그는 면역학 연구를 하기 위해 44년 동안 돼지와 씨름을 한 것이었다. 그는 이 소중한 '무균 미니어처 돼지' 모델을 미국이 아닌 모교 서울의대의 제자(이왕재 교수)에게 무상으로 기증하였으며, 동물복제의 세계적 권위자인 수의대의 황우석 교수팀과 의대의 김상준 교수팀이 합동하여 세계의 톱 '이종이식연구센터'를 이루고 현재 눈부신 연구가 진행 중이다.

 "그 사이에 그 분들을 만났고 모교에 가서 세미나도 했으며 실험도 많이 했습니다. 특히 연구실에 가보니까 유전자조작과 동물복제기술과 그 시설, 그리고 우수한 인재 등 모든 면에서 실력이 대단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수의과대학과 의과대학이 협동하여 수백 명의 인재들을 묶어서 이종이식을 위한 공동연구를 하는 역사적이고도 세계적인 연구팀으로, 성공의 앞길이 내다보였습니다.

 그래서 아낌없이 물심양면으로 지원해주고 싶었습니다. 한마디로 말씀드리면 40여년을 연구한 것을 몽땅 모교와 고국에 바치려고 합니다. 개인적으로 얼마나 가슴 뿌듯하고 즐거운지 모릅니다. 더구나 모든 연구 내용을 가장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전달한다는 즐거움은 비할 데가 없습니다."

 지금 현재 서울의대의 무균돼지사육장 '특수생명자원연구센터'에는 김 박사가 미국에서 생산해 전달한 23마리의 무균 돼지들이 아주 잘 자라고 있다.

 "미국에 온 많은 사람들이 공부한 뒤에 고국으로 돌아가 조국을 위해 헌신하겠다는 생각을 갖게 됩니다. 저도 그들 중의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 미련은 항상 제 뒤를 따라다니고 있습니다. 그런데 후배들이 저한테 찾아와서 연수하고 특히 돼지 연구를 계승하게 되었으니 제가 얼마나 기쁘고 감사한지 모르겠습니다."

 미국인이 아닌 한국인들에게 연구가 계승된다는 사실과 더불어 면역학연구와 '이종장기이식'이라는 첨단의학이 고국에서 진행되고 있는 사실도 감격스럽다.

 "원래 장기이식과는 관계없이 연구한 것인데 그쪽까지 발전했습니다. 한국에서 크게 성공해서 장기가 필요한 사람들에게 한국인들은 물론이고 전 세계 인류를 살리는 큰 역할을 해내길 빌고 있습니다."라고 말하는 75세의 김 박사는 매일 아침 8시부터 밤 9시까지 연구실을 떠나지 않고 연구를 계속하고 있다. 남들은 힘들지 않느냐고 위로와 주의를 당부하지만 "좋아서 하는 일이기 때문에 조금도 힘들지 않다."는 답변이다.  

 "원래는 의사가 없는 곳을 찾아 의료 선교사가 되는 것이 꿈이었습니다. 그런데 연구를 하다보니 알고 싶고 해결해야 할 것들이 자꾸 자꾸 늘어나 거기에 매달리다 보니 시간이 계속 흘러 꿈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김 박사의 큰 아들 형섭은 샌프란시스코에서 산부인과 의사로 활동하고 있고 둘째인 딸 진은 변호사로 샌프란시스코에서 목사남편과 더불어 복음전도에 헌신하고 있다. 막내인 둘째아들 진섭은 가정의학 전공이고 부인도 의사인데 이들은 최근에 의료선교를 위해 자녀를 데리고 부부가 함께 중국으로 떠났다.

 "의료 선교를 하라고 강요하거나 얘기한 적이 없습니다. 아들 부부가 자의적으로 결정한 것입니다. 내가 원했으나 못했던 것인데 아들이 해주니까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습니다."

 미생물학과 면역학의 세계적인 대가인 김 박사에게 결핵환자가 많은 북한의 실정은 남의 일로 느껴지지 않았다. 그는 기독교 의료 선교회에 참가해서 북한의 결핵 퇴치 사업 등 의료 선교에 나서고 있다. 이를 위해 그동안 여러 차례 북한을 방문했으며 합동 학술대화도 수차례 가진바 있다.  

 "저는 후배들에게 '자기가 가장 원하는 분야 하나를 선택해서 좁고 깊게 파라'고 합니다. 넓게 파면 팔방미인이 됩니다. 그러나 모든 것을 다 안다는 것은 깊이 알고 있지 않다는 얘기입니다. 좁고 깊게 판 뒤에 딴 사람들과 그룹을 만들어 묶으면 엄청난 힘을 낼 수가 있습니다. 학문도 그렇게 협조하면 누구보다도 강한 학문을 이뤄낼 수 있습니다."

 일본 사람들이 2차대전 직후 자동차 만드는 것을 배워갈 때 미국에 와서 여러 명이 각각 다른 여러 분야로 나누어 공부한 뒤, 귀국해서 각자의 맡은 분야를 함께 묶어 자동차를 완성했던 사실을 실례로 설명한다.

 김 박사가 이역만리 미국에서 평생노력으로 이루어 놓은 '무균 미니어처 돼지'와 한국의 한 연구실에서 밤낮을 가리지 않고 연구에 몰두한 황 교수 팀의 '동물복제 및 줄기세포'의 두 연구결과는 서로 다른 분야에서 시간과 공간을 달리해서 성취된 업적이지만, 이제 하나로 묶어져 불치병으로 숨져가는 인류를 살려내는 실로 엄청난 성과를 눈앞에 이뤄놓고 있는 셈이다.

 김 박사는 오늘도 연구실에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연구에 몰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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