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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서울대병원의 모순
시론 서울대병원의 모순
  • 송성철 기자 kmatimes@kma.org
  • 승인 2004.12.16 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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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대석 서울의대 의료정책연구실장

 

 최근 국정감사 자료를 통해 알려진 사실에 의하면 종합병원들 중 서울대병원이 진료비 부당청구가 가장 많았다. 그 금액도 의약분업 이후 지난 5년간의 부당청구액을 모두 합하면 2000년 20억원, 2001년 27억원, 2002년 24억원, 2003년 18억원, 2004년 현재 13억원 등 무려 102억원에 달하고, 부당청구 건수도 2만 8771건이라고 한다. 국립대학병원을 대표하는 서울대병원이 '부당하게' 진료비를 과잉청구 하고 있으니 국민의 분노를 사고 서울대병원에 대한 대대적 수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올 만도 하다.

 반면 다른 국정감사 자료에 의하면 같은 질병을 치료하는데 서울대병원의 진료비가 가장 저렴하다. 즉 건강보험 심사평가원이 발표한 진료비 고가도지표(CI: Costliness Index) -의료기관별로 환자(질병)의 특성과 통계적 유의성을 고려해 진료비를 분석하는 지표- 분석에 의하면 서울대병원의 지표는 0.87로 국내 주요 대형병원들의 평균진료비 지수인 1을 훨씬 밑돌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환자들 입장에서는 다른 의료기관에서 평균적으로 100원을 들여 치료하는 것을 87원만을 주고도 치료했다는 것이고, 불필요한 진료를 최소화 하면서도 효율적으로 진료 업무를 수행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이 두 가지 상반된 자료를 통해 동일 질병에 대한 진료비는 국내 의료기관 중 최저인데, 진료비를 부당하게 청구하였다고 하여 삭감하는 금액은 최고라는 역설에 우리는 봉착하게 된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 것일까?

 진실은 이렇다. 서울대병원의 경우 3차 의료기관이면서 국립대학병원이라는 성격상 희귀 난치성 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나 병의 중증도가 높은 환자들이 많을 수밖에 없다. 이 경우 건강보험급여 기준에 따르는 치료를 벗어나 신의료기술을 적용하거나, 보다 많은 치료재료와 보다 복잡한 시술을 행하게 되는데 이러한 것들이 기존의 건강보험 급여 체계에서는 부당청구의 사례로 인식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제는 꼭 서울대병원만이 당면하는 것은 아니다.

 

 '부당청구'라는 쟁점

 현재 건강보험의 급여 정책은 평균적인 환자, 정형화된 진료를 기준으로 하고 있다. 이러한 급여기준은 의료현장에서 환자들의 다양한 중증도와 개인차를 반영한 진료를 시행하기 어렵게 한다. 환자들의 개인차를 반영한 진료를 할 경우 오히려 부당청구, 과잉진료로 귀착되고 마는 것이다. 실제로 2003년도 상반기 통계 자료에 의하면 부당청구로 진료비가 삭감된 것 중 '요양급여 기준범위 초과 진료'로 삭감된 금액이 총 965억9600만원으로 전체 삭감액(1356억 7700만원) 중 가장 비중(71.1%)이 높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물론 통계자료에서 제시된 965억9600만원 중에는 부적절한 과잉진료에서 발생하는 것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특히 서울대병원 등의 3차 의료기관들이 당면하고 있는 급여기준에 벗어난 사례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대표적임을 지적해 두지 않을 수 없다. ▲검사의 경우 보험인정기준이 주 1회 또는 주 2회로 제한되고 있으나 환자의 상태 변화가 심하여 자주 확인해야 하는 경우 ▲약제의 경우 보험인정기준 보다 과량으로 투약해야 하는 경우 ▲환자의 중증도 등의 이유로 급여기준을 초과하여 진료재료를 사용하여야 하는 경우 등등. 이렇게 현재의 급여기준은 환자의 다양한 상태와 새로운 의료기술을 즉각적으로 반영하여 급여하는데 한계가 있고, 특히 희귀 난치성환자가 많고 환자의 중증도가 높은 종합병원들이 이러한 어려움에 직면하고 있는 것이다.

 환자들과 의료인들에게 급여기준에 맞는 획일화된 최소한의 치료만을 해야 한다는 제약은 최선의 치료를 원하는 환자와 의료진에게 풀릴 수 없는 윤리적 갈등을 낳고 있다. 따라서 이러한 문제를 단순히 진료기관의 잘못으로 돌리기 보다는 환자의 개인차를 전제한 '맞춤의료'가 가능하도록 급여 정책의 유연성을 제고시킬 필요가 있다고 판단된다.

 

 신의료기술평가제도 도입해야

 (신)의료기술에 대한 급여 정책도 여러 문제를 안고 있다. 법에 의해 정의되어진 신의료기술은 '요양급여기준에 관한 규칙상 요양급여대상 또는 비급여대상으로 결정되지 아니한 행위'이다. 2002년 통계 자료에 의하면 신의료기술로 접수되어 건강보험 요양급여 대상여부 결정 신청건수가 총 5,036건 이었고, 이 가운데 37.8%인 1905건만이 법정 처리기한인 150일 이내에 처리되고, 나머지 62.2%인 3,131건은 그 기간을 초과했다. 이렇게 신의료기술이 건강보험 급여 대상으로 등재되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리고 그렇게 결정·고시되기까지는 전액 환자가 부담하거나 병원의 재정적 부담으로 작용하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것들이 대부분 초과진료로 삭감당하는 주요한 사례들이 된다.

 다른 한편에서는 신의료기술의 결정이 적절한 의학적 검증 없이 과다하게 진료현장에서 이용된 측면도 있다. 실제로 신의료기술이라고 주장되는 것들이 임상시험을 거치면서 효과가 없다는 것이 밝혀지는 경우가 많고, 대체적으로 치료에 획기적인 효과가 있다고 주장되는 신의료기술 중 실제로 효과가 있는 것은 그리 많지 않은 실정이다. 그리고 이렇게 효과가 검증되지 않은 의료기술이 비전문가들에 의해 남용될 수도 있다.

 신의료기술과 관련한 이러한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신의료기술 평가제도(Health Technology Assessment)를 도입하여 의료기술의 건강보험 수용절차를 쇄신함으로써 이러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이미 주요선진국들에서는 신의료기술 평가와 관련한 독립적 기관을 설치/운영하고 있다. 이를 통해 의료기술 발전과정에서 새롭게 등장하는 의료기술과 현존하는 보건의료기술들의 안전성 및 유효성에 대하여 임상연구자료를 근거로 체계적이고 신속하게 평가함으로써, 의료인의 임상진료나 정부의 보건의료분야 정책결정에 필요한 지침을 제공하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물론 우리나라에 이같은 제도가 없었던 것은 아니나, 안전성 및 유효성을 효율적으로 검증하는데 미흡한 측면이 있었다.

 신의료기술이 빠르고 적절히 검증되어, 환자들에게 신속히 보험혜택이 되게 하는 제도적 장치의 마련이 시급히 요청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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