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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면 된다' 신념으로 생명과학 미래 이끌겠다
'하면 된다' 신념으로 생명과학 미래 이끌겠다
  • 김은아 기자 eak@kma.org
  • 승인 2004.11.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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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일 과학기술부에 첫 여성국장이 탄생했다. 어느 조직이나 모임에서 '첫 주자'는 언제나 주목받기 마련인데, 지금까지 여성과학자로서 여러 차례 첫 테이프를 끊어 온 김정희 생명해양심의관(영남의대 생화학교실)이 이번에는 어떤 소감을 밝힐 지 궁금하다.

게다가 지금까지 과기부내에 여성으로는 과장급은 물론 서기관도 없던 상황이라 더욱 각오가 남다를 법하다. 연구의 길을 걸어온 의학자가 고위공무원이 된 과정을 김 심의관에게 들어봤다.

- 첫 여성국장이 된 소감은.

- 전 부처의 R&D 사업 예산을 심의하는 중책을 맡아 각오가 새롭다. 한국과학재단에서 일하면서 연구용역을 주고, 연구비를 지원하는 일을 해봤기 때문에 크게 달라지는 건 없다는 생각이다. 첫 여성 국장이라는 것에 연연하기보다 열심해 해서 국가 경제성장에 기여하겠다는 마음가짐이다. 물론 첫 단추를 잘 끼워야 한다는데 대한 부담은 있다.

- 과학기술혁신본부가 신설됐는데, 어떤 일을 하는가?

- 미래지향적인 안목을 갖고 볼 때, 국가주도적인 과학기술분야 육성이 필요하다는 판단 하에 만들어졌다. 이곳에서 교육부·복지부·산자부 등 전체 정부 부처의 R&D사업 예산을 총괄한다. 과기부 산하단체로 과기부 연구 예산만 담당해 온 한국과학재단과는 차별화된다. 앞으로는 여러 부처간 연구 투자가 중복됐던 것을 막고, 연구 예산을 효율적으로 운영할 수 있을 것이다.

- 이번 과기부 인사에는 민간인사의 대규모 발탁·여성 국장 등장 등 화제를 낳고 있다. 김 심의관은 9:1의 경쟁률을 뚫고 임명됐는데.

- 다른 지원자 중에도 훌륭한 분들이 많았다. 요즘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지역균형발전·지방대 활성화·여성과학자 육성 등의 키워드에 들어맞았던 것 같다. 여기에 그동안 해왔던 전문분야 연구활동·한국과학재단 위원 활동 등이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 그동안 관례를 볼 때 의학자가 보건복지부가 아닌 과기부에서 일하는 것은 이례적이다.

- 의학은 과학의 중요한 한 부분이다. 기본적으로 자연과학·임상의학·기초의학 연구가 따로 떨어져서 이뤄지는 데 반대한다. BT(Bio Technology)산업이 성공하려면 자연과학자, 임상의학자, 기초의학자가 함께 힘을 모아 공동연구를 펼쳐야 할 필요가 있다. 의대 교수로 재직하면서 임상의학과 기초의학의 연계가 절실하다고 생각했고, 한국과학재단에서 일하면서 공동 연구를 기획하고 적극 지원하려고 노력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R&D 심의·기획 업무를 맡게 된 것 같다.

- 행정가로 일하는데 어려운 점은 없나?

- 영남의대 신설 초기부터 대학원 주임교수 15년, 기초의학연구소장 5년, 부학장 등을 거쳐 21년째 학교 행정관리자 역할을 해왔고, 과학재단에서도 행정업무를 큰 어려움 없이 해냈기 때문에 자신 있다. 비록 규모는 달라도 기초와 원칙은 같다고 생각한다. 원칙대로 하겠다.

- 흔히 '의사'하면 하얀 가운을 입고 진료실에서 환자를 보는 장면이 연상되는데 임상에 대한 미련은 없나?

- 학창시절부터 워낙 화학을 좋아했던 터라 학부 때도 생화학연구실에서 일하면서 기초의학을 가까이에서 접하게 됐고, 자연스럽게 대학원도 암분자 생물학쪽으로 진학하게 됐다. 늘 임상에 대한 꿈은 있었고, 환자 치료에 대한 열망이 있어 1년 동안은 병원에서 인턴으로 일하기도 했다. 하지만 막상 해보니까 이게 아니란 생각이 들더라. 기초의학에 뜻이 있었고, 연구분야에 길 들여지다 보니 임상 적응이 힘들었던 것 같다.

- 과학기술분야에 관심 갖고 있는 의대생이나 의학자들에게 비전을 제시해 달라.

- 과학재단 연구비 예산의 35%가 생명과학분야에 집중돼 있다. 그만큼 국가가 생명과학 분야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증거다. 과학 기술에서 가장 중요한 숙제는 우수인력 확보다. 요즘은 의학대학원도 생겨나고 있고, 자연과학을 전공하고 다시 의대를 지원하는 사람도 많은데, 이런 인력은 자연과학에 대한 기초지식과 의학 지식을 함께 가지고 있기 때문에 연구분야에서 훌륭한 재원이 될 수 있다. 문제는 이런 인재들이 기초의학 연구분야에 관심을 갖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두 가지 복안을 갖고 있다. 하나는 의대 교과과정 중 기초의학 분야를 넓히고 기초의학에 대해 제대로 알리는 활동을 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유인정책으로 연구분야 활성화를 위해 병역면제 및 향후 10년간 연구비의 전폭적 지원 등의 혜택을 주는 것이다. 지금도 병역면제 부분은 어느 정도 해결돼서 기초의학 분야에서는 병역기간 3년간 연구에 전념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그리고 내년까지 20개 의과대학에 의학연구센터(MRC)를 만들 계획이다. 국가가 좋은 환경을 만들고, 연구자들이 열심히 노력한다면 기초의학 육성과 더불어 국가 성장에도 크게 이바지 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는 IT 산업이 한국을 먹여살렸지만, 머지않아 BT가 그 역할을 대신하게 될 것이다.

- 앞으로 추진해보고 싶은 사업이 있다면.

- 노벨 화학상 수상자 중 일본의 다나카 고이치가 있다. 이 사람이 공학자인데도 화학상을 수상할 수 있었던 것은 공학 연구를 통해서 얻은 기법을 단백질 연구에 적용시켰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순수 자연과학자만 단백질 연구를 하고, 공학자와는 손을 잡지 않는다. 우리도 창의적인 아이디어와 다학제적 협력연구를 통해 융합기술을 개발해야 한다. 이러한 협력 연구를 위한 프로그램을 개발해 보고 싶다.

그를 만나는 1시간 남짓동안 머릿속에는 미래 한국과학기술의 청사진이 그려졌다. 아직 사무실 한켠 책장이 텅 비어 있을 만큼 갓 발령받은 새내기 행정가였지만, 그가 제시하는 비전이나 목표에는 미래에 대한 안목과 뚜렷한 의지가 묻어있었다. 당분간은 하얀 가운을 입은 의학자가 아닌, 말쑥히 정장을 차려입은 심의관의 모습을 보게 될 것이다. 어쩐지 그가 단지 옷을 바꿔입은 게 아니라 '하면 된다'는 그의 신념으로 무장했다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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