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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2024-04-25 18:04 (목)
[기획]위기의 의료계, 새로운 돌파구 없나

[기획]위기의 의료계, 새로운 돌파구 없나

  • 송성철 기자 songster@kma.org
  • 승인 2004.11.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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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의료계…극한 상황 내몰리는 의사들(5)

<글 싣는 순서>
1. 자살하는 의사들
2. 벼랑끝에 몰린 개원가
3. 원인이 무엇인가?
4. 살 길 찾아나선 의사들
5. 새로운 돌파구 없나?

'싸고 질높은 의료'는 없다

적정부담 및 수가 정상화

극한 상황으로 내 몰리고 있는 의료계를 회생시킬 수 있는 방안에 대해 전문가들은 '수가 정상화'를 단기처방으로 내놓고 있으며, 근본적으로는 현행 저부담-저수가-저급여 건강보험체계를 적정부담-적정수가-적정급여 체계로 전환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국민은 부실하기 그지없는 반쪽짜리 건강보험제도에 불만이고, 의료공급자는 규제와 통제 속에서 교과서적인 진료가 부당·허위로 매도되고 있는데 대해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정부와 보험자단체도 OECD 하위권을 맴돌고 있는 보건의료 지표에 심드렁하고 있다.

의료계는 의약분업과 건강보험 통합을 전후해 보험재정 파탄 위기 속에서 건강보험 재정안정화 대책의 희생양이 돼 3조2500억원이라는 보험급여비를 회수당한데다 경제위기라는 악재까지 겹치면서 최악의 경영난 속에 시달리고 있다.

매출보다 비용이 더 많은 수입 구조 속에 청구액 11% 감소(2001~2003년)와 건강보험 재정안정화대책이라는 직격탄을 맞은 개원가는 지난 한 해 동안 2500여개의 의원이 줄줄이 폐업하는 위기를 맞고 있다. 원가에도 못 미치는 저수가 보험체계 아래서 27년 동안 규제와 통제에 시달린 것도 모자라 강제 의약분업과 건강보험 통합의 후유증으로 부도덕한 의사로 낙인찍힌 채 경영위기를 겪어야 하는 현실에 울분을 토로하고 있다. 개원의들은"공무원이나 공단 직원의 월급을 20% 이상 깎는다면 과연 용인할 수 있겠냐?"고 반문했다.

미국의 평균적인 보험수가에 비해 25~50%가 낮은 노인 공보험인 메디케어 수가와 국내 건강보험 수가 수준을 비교해 보면 물가의 차이를 반영하더라도 1/10 수준에 불과하다. 이는 한국의 의료수가가 얼마나 낮은 수준인지를 반증한다.

최근 남서울대 연구팀은 현행 건강보험 수가가 원가의 72.5%에 불과하다는 연구결과를 내놨다. GDP 대비 국민의료비 지출액은 OECD 평균치가 소득의 8.2%(2001년)인데 비해 한국은 5.9%(2001년)에 머물고 있다. OECD에 가입한 30개 나라 가운데 꼴찌에서 두 번째다. 보험료 부담이 적고 국민 의료비에 대한 투자에 인색하다 보니 보험재정의 규모는 당연히 작을 수밖에 없고, 저부담-저수가-저급여의 악순환이 되풀이 되고 있다. 싸고 질 높은 의료란 있을 수 없다는 본보기이다.

의료왜곡 국민만 피해

저수가 보험정책 속에 의료기관의 경영이 악화되면서 의료왜곡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한 때 각광받았던 외과 계열은 전공의들로부터 기피당하고 있다. 특히 흉부외과는 지원자가 전혀 없어 앞으로 10년 후엔 심장수술을 할 의사를 찾기 위해 이리 뛰고 저리 뛰어야 하는 상황을 맞게 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다. 낮은 분만수가와 의료사고에 대한 위험부담 때문에 하나 둘 분만실을 폐쇄하는 경향이 늘어나더니 급기야 산부인과 의원의 56.3%가 분만을 취급하지 않고 있다.

건강보험권 내에서 정상적으로 의료기관을 경영할 수 없다보니 비만·피부미용·건강기능식품·보완대체의학 등 다른 곳으로 눈길을 돌리는 의사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 "전공분야에서 아무리 발버둥쳐 봐야 빚 갚는 일이 아득하다"는 의사들이 늘어갈수록 환자에게 피해가 돌아가기 마련이다. 교육병원이라는 학문적 자존심으로 버텨오던 대학병원도 앞 다퉈 피부관리실·비만클리닉·건강검진센터 등을 개설, 살 길을 찾고 있다. 의사로서 인간을 치유하는 전문가라는 자부심보다는 경영이나 심사삭감 자료집에 눈을 돌리도록 의료시스템이 왜곡되고 있는 것이다.

위기에서 벗어나려면

개원의들은 위기의 의료계를 구해낼 수 있는 방안으로 수가현실화와 더불어 ▲1차의료를 살리는 정책 ▲진찰료의 다양화 ▲과별 특성에 맞는 진찰료 인정 ▲전문의 수급 조절 ▲본인부담금 인하 ▲소신진료를 인정하는 심사기준의 재정립 ▲무분별한 병상 증설 억제 ▲요양기관별 단체계약제 ▲시장경제원리가 작동하는 다양한 보험제도의 도입 등을 꼽았다.

현 건보 틀·정책 '해법 한계'

임금자 의료정책연구소 경영사회팀장은 "복지부와 공단이 비보험에 손대지 말고, 시장기능에 맡겨야 한다"며 "공단에서 구매하는 의료서비스는 건강보험 부분에 대한 서비스이므로, 나머지 비보험은 국민에게 맡겨야 한다"고 주장했다. 임 팀장은 "최근 들어 건강보험제도를 논의하면서 중요한 한 축인 공급자를 제외하는 경향이 있다"며 파행적인 제도운영을 우려했다.

김홍식 부산시의사회 총무이사는 의사들의 사회 진출 형태를 다양화해야 한다고 제안한 뒤 의료계 스스로도 의료수가 현실화를 위해 국민 계도에 나서야 한다고 덧붙였다.

내부적인 개선책에 대해 박양동 경상남도의사회 부회장은 "의료계 내부적으로는 뿔뿔이 흩어진 회원의 민심을 다시 모아 의권쟁취 투쟁당시의 초심으로 돌아가 원점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 부회장은 "건강보험제도의 변화나 의약분업 평가 등 의료정책 문제는 장기전으로 갈 수밖에 없다"고 분석한 뒤 "의료정책연구소의 인원과 예산을 늘리고 기능을 더 강화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종근 대한개원의협의회장(김종근외과의원)은 "대한민국에서 의사 생활을 하는 동안 복지부를 무릎 꿇리게 하겠다고 나서서는 안 된다"며 "의사로 생활하는 이상은 복지부를 적으로 돌려서는 하나도 얻을 것이 없다"고 했다.

김 회장은 "화끈하게 문을 닫지 않을 바에는 대화를 통해서 얻어내야 한다. 투쟁만 밀고 나갈 것이 아니라 범의료계 차원의 위원회를 구성해서 의사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보고, 틀린 것은 고치고 잘한 것은 밀고 나가야 한다"고 했다.

보험정책 근본 틀 바꿔야

지난 1980년대 초까지만 해도 선진국들은 획일적인 사회보험제도를 통해 의료보장을 확대하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그러나 계속되는 경제침체·의료비 급증·정부의 재정부담 과중·국민의 다양한 의료수요와 선택권 강화 등에 직면하게 되자 의료개혁을 통해 정부기능을 축소하고, 소비자 선택권과 시장기능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나가고 있다.

하지만 국민의 정부에 이어 참여정부의 의료개혁 방향은 정부 통제 강화·소비자 선택권 축소·시장기능 억제 등 세계의 흐름과는 정반대의 방향으로 엇나가고 있다. 저수가 건강보험의 구조적인 한계 속에 정상적인 진료로는 의료기관을 경영할 수 없는 상황임에도 정부의 보험정책은 건강보험재정 건전화와 보장성 확대에만 관심을 쏟고 있다.

권오주 원장(권오주의원)은 "행위료·상대가치·진찰에 대한 개념 문제 등 어느 것 하나도 제대로 된 게 없다"며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 없다"고 보험정책을 비판했다. 권 원장은 "참여정부 5개년 계획이나 정부의 보건의료정책은 현실과는 너무 동떨어져 있다"며 "여기에 공단은 점점 경직화ㆍ관료화 되고 있고, 더욱 비관적인 것은 개선될 여지가 별로 없다는 것"이라고 혹평했다.

벼랑 끝에 몰린 의료계는 연일 건강보험의 정상화와 병상과 의사 과잉·불법의료 등 의료왜곡을 부추기는 병폐를 바로잡아 줄 것을 호소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와 건강보험공단 그리고 일부 시민단체는 "그래도 의사는 많이 벌고 있다"는 시각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은 채 의료공급자의 고통을 강요하는 제도와 규제에 열중하고 있다.

의료공급자와 정부ㆍ보험자단체 간의 불신이 깊어갈수록 한국의료의 발전은 요원하다.

저출산·노령사회에 대비하기 위해서라도 의료공급자·정부·보험자·국민이 머리를 맞대고 한국의료의 비전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

의료공급자의 일방적인 희생을 강요하는 통제와 규제 위주의 정책이 계속된다면 한국 의료는 희망이 없다.

<특별취재팀>
송성철기자 songster@kma.org
이석영기자 dekard@kma.org
최승원기자 choisw@kma.org
이정환기자 leejh91@kma.org
이현식기자 hslee03@km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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