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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약제비 환수 입법화 반대
시론 약제비 환수 입법화 반대
  • 김영숙 기자 kimys@kma.org
  • 승인 2004.07.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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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과잉처방된 약제비를 처방한 의료기관으로부터 환수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담은 국민건강보험법 개정안을 17대 정기국회에 상정할 것이라는 내용의 언론 보도를 접했다. 지난 20일 보건복지부가 감사원에 제출한 감사결과 처분요구사항 조치 결과 자료에 따르면, 지난 16회 국회 임기 종료로 자동폐기된 국민건강보험법 개정안을 17대 국회에서 재추진하겠다는 것이다. 이 개정안은, 의료기관의 과잉·허위처방에 따라 약국이 약을 조제한 뒤 약제비를 지급받은 경우 원인을 제공한 의료기관으로부터 약제비를 환수하겠다는 것을 내용으로 한다.

보건복지부가 위와 같은 개정작업을 추진하고 있는 이유는, 최근에 군산의 모 피부과 원장이 보건복지부 등을 상대로 제기한 요양급여비용 환수처분 취소소송에서 서울행정법원이 '의료기관이 비록 과잉처방을 하였다고 하더라도, 그 약제비를 의료기관으로부터 환수할 법적인 근거가 없다'는 내용의 판결을 선고하였기 때문이다.

위 판결이 선고된 직후, 필자가 속해 있는 대외법률사무소는 마찬가지의 이유로 약제비를 환수당한 이비인후과 개원의를 대리하여 국민건강보험공단을 상대로, 약제비 환수처분의 무효와 아울러 환수한 약제비를 반환해 달라는 내용의 행정소송을 제기하였고, 그 소송은 현재 진행 중에 있다. 앞으로 위 소송이 원고의 청구대로 확정될 경우, 부당하게 약제비를 환수당한 의료기관은 행정소송을 제기할 필요 없이 민사소송을 통하여 부당 환수된 약제비를 반환받을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이렇게 될 경우 건강보험공단이나 보건복지부로서는 크나큰 타격이 아닐 수 없다. 심사평가원이 국정감사에서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2003년도 약제비 삭감 규모가 207억원에 달한다고 한다. 이에 따라, 보건복지부는 위 행정소송 판결에 불복하여 상소를 제기함과 아울러, 위와 같은 위법 시비를 근원적으로 차단하기 위하여 입법화를 추진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이와 같은 내용의 국민건강보험법 개정안은 이미 2001년도 10월경에도 김성순 의원을 비롯한 일부 국회의원을 통하여 발의된 적이 있었다. 그러나 이 개정안에 대해서 대한의사협회를 중심으로 한 의료계가 적극 반대하여 더 이상 추진을 못하다가, 결국 16대 국회가 폐회되면서 자동으로 폐기되었다.

모든 입법은 그 취지와 목적이 아무리 정당하다고 하더라도, 그 전제가 되는 현실의 사정을 고려하지 않는다면 원하는 목적을 달성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역효과를 발생시킬 수도 있다. 특히 의료제도나 건강보험제도와 같이 요양기관, 국민, 정부와 건강보험공단 등 각계 각층의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는 문제일수록 새로운 입법이나 정책은 신중을 기하여야 한다. 현실을 고려하지 아니한 정책 변화나 입법이 어떠한 문제점을 야기하였는지에 관해서, 우리는 지난 역사의 경험을 통하여 충분히 경험한 바 있다. 현실의 여건을 고려하지 아니한 채, 성급하게 진행되었던 의약분업이 그 중 대표적인 사례이다. 이번에 보건복지부가 추진하고 있는 과잉처방된약제비 환수 근거에 관한 입법화도 마찬가지 사례가 될 수 있다.

허위 또는 과당 처방을 억제하여야 한다는 점에 관해서는 필자도 이의가 없다. 그리고, 의사가 허위 또는 불필요한 처방을 하였다면 그에 상응하는 책임을 부담하여야 한다는 점에 관해서도 동감한다. 이는 이 개정안의 입법화에 반대하고 있는 대한의사협회의 입장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료계에서 이 개정안의 입법화를 강력하게 반대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현행 건강보험 심사제도의 문제점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즉, 개정안이 정당성을 취득하기 위해서는 현행 건강보험심사제도가 의사들로부터 신뢰를 받아야 하는데, 현행 심사제도는 의사들로부터 전혀 신뢰를 받지 못하고 있다. 그 이유는 비합리적이고 불명확한 심사기준, 자의적인 심사 관행, 심사의 불공정성과 불투명성 등 때문이다. 건강보험 재정 안정을 위하여 의학적 타당성을 무시한 채 심사제도를 악용하는 심사평가원이나 보건복지부의 태도도 문제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어느 의사가 심사평가원의 심사결과에 대해서 승복을 할 수 있겠는가? 건강보험 청구 문제로 필자와 상담을 한 거의 모든 의사들이 심사평가원의 심사에 대해서 상당한 불만을 갖고 있다. 심사에 관한 구체적이고 일관적인 기준이 없을 뿐만 아니라, 일부 있다고 하더라도 의학적인 타당성이 없다는 것이다. 모든 의사들은 심사평가원의 부당한 심사로 인하여 자신의 재산권은 물론, 진료권까지도 심각하게 침해를 받고 있다고 하소연한다.

이러한 문제점이 해결되지 아니한 상황에서 개정안이 그대로 입법화된다면 다음과 같은 현실적인 문제점이 발생하게 된다. 개정안이 입법화된다는 것은, 요양급여비용 환수처분이나 과징금처분의 경우처럼 건강보험공단은 강제적인 행정처분으로서 약제비를 환수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경우 만약 의사들이 약제비 환수처분에 대해서 불복하여 다투고자 할 경우에는 행정처분서가 송달된 날로부터 90일 이내에 행정소송이나 행정심판을 제기하여야 한다. 만약, 그 기간 안에 행정소송이나 행정심판을 제기하지 아니한 경우에는 아무리 이 처분에 문제가 있다고 하더라도 다툴 수 있는 방법이 없다. 그런데 아직까지 건강보험과 관련된 행정처분의 경우, 행정소송이나 행정심판을 통해 의사들이 구제받은 사례가 거의 없다. 그 이유는, 행정심판이나 행정소송에서는 행정청인 심사평가원의 심사행위에 대해서 폭 넓은 재량을 인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환수당하는 사례가 상당히 많이 발생함에도 불구하고 1건당 환수 금액이 얼마 되지 않기 때문에, 의사들로서는 소송비용과 그 시간을 고려할 때 차라리 환수처분을 받아들이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여 소송에 소극적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 외에 심사처분에 대해서 의사들이 적극적으로 다투지 못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더 있다.

결국 이번 개정안에서 약제비 환수처분에 관한 법률적 근거를 마련하겠다는 것은, 바로 위와 같은 이유에서 약제비 환수와 관련된 의사들의 이의제기를 더욱 어렵게 하겠다는 목적이 내포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은 바로 의사들로부터 약제비를 되도록 많이, 그리고 보다 손쉽게 거두어 들여 건강보험 재정을 확보하겠다는 것에 다름 아니다.

약제비 환수 처분에 대한 법률적 근거를 마련하지 않아도, 부당처방된 약제비 환수는 민법상의 불법행위에 관한 법리를 통해서 해결할 수 있다. 이럴 경우, 약제비를 환수하고자 하는 건강보험공단으로서는 해당 의사의 처방이 허위처방이거나 아니면 의약적 타당성을 결여한 과잉처방이라는 사실을 적극적으로 입증하는 부담을 지게 된다.

그러나 이것은 건강보험공단에게 불리한 것이 아니라, 민법상 불법행위의 법리에 따르면 당연한 결과이다. 오히려 의사들에게 부당처방이 아니라고 입증하도록 요구하는 것이 의사들에게 더욱 불리한 것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왜냐하면 의사들이 부당처방을 하더라도 그로 인하여 얻을 수 있는 이익이 거의 없다는 점에서, 의사들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부당처방을 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한편, 부당처방의 경우 그 약제비를 처방한 의사로부터 환수를 하지 않다고 하더라도, 부당처방한 의사에게 그에 대한 책임을 물을 수 있는 방법은 국민건강보험법에도 존재한다. 국민건강보험법 제85조에 따른 요양기관 업무정지처분 또는 과징금 처분이 바로 그것이다.
만약,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민건강보험법에 약제비 환수처분에 관한 법적 근거를 마련하고자 한다면, 그 이전에 현행 건강보험심사제도를 합리적으로 개선하여 의사들로부터 신뢰를 얻을 수 있어야 한다. 심사평가원의 심사가 의사들로부터 신뢰와 정당성을 취득하지 못한 상태에서 부당처방된 약제비 환수 처분에 관한 법적 근거를 마련하겠다는 것은, 의사들의 창과 방패를 모두 빼앗아 심사평가원의 심사에 예속시키겠다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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