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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제위임제도 시행 평가와 대안

조제위임제도 시행 평가와 대안

  • 최승원 기자 choisw@kma.org
  • 승인 2004.07.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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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약분업 이후 병의원 경영상황

불황, 울분, 자포자기….
최근 개원가의 상황을 압축해서 나타내는 말이다. 진료현장에서 떠나 있다 1년만에 서울에서 재개원한 A원장은 한창 개원 중이던 1년 전에 비해 더욱 나빠진 개원환경 속에서 한숨만 늘어가고 있다.

지난 2000년 의약분업 이후 수가가 몇차례 오르내렸지만 개원가의 현실은 변한게 없고 4년 내내 허송세월만 보내고 있다는 자괴감에 1년전 끊었던 담배에 다시 손을 대기 시작했다. 지방 중소도시에서 외과계 중소병원을 운영하며 나름대로 경쟁력을 갖고 있던 B병원의 C원장은 최근 결단을 내렸다. 외과계 전문병원에서 비만클리닉을 운영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물론 C원장의 결단은 형편없는 현재의 수가와 의약분업 이후 격감하는 환자수로는 병원운영을 할 수 없다는 위기감에서 였다. C원장은 얼마전 병원에 있던 내과의사 1명을 서울 압구정동의 유명 비만클리닉으로 파견 보냈다.

그러나 C원장이 딱히 비만클리닉에 기대를 걸고 있는 것도 아니다. 비만시장 역시 포화상태라는 얘기를 들었지만 그렇다고 앉아서 망할 수는 없기 때문이었다. C원장의 결정에 D내과의사도 따르기는 따르지만 비만클리닉이 최악의 병원경영 상태에 돌파구가 될 수 있을지는 그 자신도 의문이다.

경기도 신도시에서 최근 내과를 개원한 E원장은 개원 8개월만에 폐업을 심각하게 고려하고 있다. 개원 이후 한두달 40여명 정도 근근히 이어가던 환자가 최근들어 20명대로 급감했기 때문이다.

이제 43살로 과거 같으면 개원가에서 한창 전성기를 구가해야 할 E원장은 "의원경영으로 수익을 전혀 내지 못해 집사람의 수입으로 근근히 살아가고 있다"고 말하고 "의사로서 한집안의 가장으로서 가족 볼 면목이 없다"며 괴로워했다. 그는 병원에 투자한 3억여원을 생각하면 잠을 이룰 수 없어 불면증으로 보름여간 고생하다 결국 의대동기가 운영하는 신경정신과를 찾았다.

지방에서 100병상 규모의 중소병원을 운영하는 F원장은 자신이 적자를 감소하며 어쩔 수 없이 병원을 운영하고 있는 전형적인 케이스라고 소개한다. F원장은 "일주일에 4∼5일씩 병원에서 먹고 자며 수익을 맞춰 보려고 애쓰지만 떨어진 환자는 좀처럼 회복되지 않는다"고 털어 놓는다. 결국 이런 과도한 스트레스는 우울증이나 때때로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형태로 표출되기도 한다.

얼마전 지방의 한 의원장이 3억여원의 빚을 이기지 못하고 자살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 자살사건이 보도되자 많은 의사들이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는 글들을 인터넷 홈페이지에 올려 위기에 처한 의사사회의 단면을 실감하게 했다.

의약분업 이후 한국 의료계는 일선 의원이던 중소병원 이던 대형 대학병원이던 심한 경영난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경영난의 직접적인 원인으로 사라진 약가마진이 꼽히고 있지만 의약분업 이후 늘어난 재정적자를 무리하게 줄이기 위해 취해진 일련의 정부정책이 의료계를 고사시키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것이 중론이다.

의약분업을 시행하며 정부는 저수가 체제에서 의원 수익의 큰 부분을 차지하던 약가마진을 없애는 대신 수가를 현실화시켜 준다며 5차례 수가인상을 했다. 하지만 정부는 2000년 9월부터 3년이 채 안되는 2003년 3월 사이 적자폭을 줄인다는 이유로 4번의 수가인하를 단행해 결과적으로 초진료는 17.1%, 재진료는 20% 인하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특히 5번의 수가인상이 수가인상이라기 보다는 약가마진에 대한 수가보전의 측면이 강했고 4년 동안의 자연 수가인상률까지 고려하면 의료기관의 실질적인 수가는 4년 동안 마이너스를 기록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결국 이런 상황은 곧바로 보험급여가 거의 모든 수익을 차지하는 1차 의료기관에 직격탄이 되어서 돌아왔다.

오창석 대한가정의학과개원의협의회 의무이사는 정부의 수가인하 조치로 인해 2003년 수가가 2000년 기준으로 초진료의 경우 17.1%, 재진의 경우 20% 줄어든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오 이사는 수가인하 조치로 1일 평균 50명을 보는 내과계 의원이 경우 진찰료에서만 월 300만원, 1년 3,600만원의 손실이 발생했다고 추계했다.

또한 진찰료의 야간가산율 적용시간이 오후 8시로 2시간 늦춘 것 역시 수가인하 효과를 발휘해 연간 1,388억원의 재정절감 효과를 낸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2002년 전국 2만3천여개 의원급 의료기관 중 50명 이하의 환자를 보는 곳은 1만 1,790기관(51%)인 것으로 발표한 것에 비춰보면 의원급 절반이 이번 수가인하로 커다란 타격을 받았음을 알 수 있다.

즉 의약분업으로 인해 의료계는 약가마진에 대해 보전조차 제대로 받지 못한 상태에서 의약분업으로 촉발된 정부의 각종 규제정책과 원가이하의 수가체계로 인해 이길 수 없는 전투를 벌이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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