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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2024-04-19 06:00 (금)
기자의시각,보라매사건판결에

기자의시각,보라매사건판결에

  • 편만섭 기자 pyunms@kma.org
  • 승인 2004.06.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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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가 보호자의 요구를 받아들여 퇴원시킨 환자가 숨져 문제가 된 이른바 '보라매병원사건'에 대해 대법원이 피고인 담당의사에게 살인방조죄를 적용해 징역 1년 6월에 집행유예 3년의 실형을 확정판결함을써 우리 사회에 다시 한번 파문을 던졌다. 이 판결은 보호자나 환자가 원한다고 해서 중환자의 퇴원을 허락했다가 숨지면 보호자는 물론이고 퇴원을 허용한 의사까지 책임을 져야 한다는 점을 명확히 했다는 점에서 두고 두고 다툼의 여지를 남겼다.

담당의사에게 살인방조죄가 적용돼 실형이 확정되자 의료계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환자를 퇴원시키는 과정에서 담담의사가 좀더 신중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살인죄나 살인방조죄가 적용되리라곤 처음부터 생각하지 못했다. 때문에 지난 98년 담당의사에게 살인죄를 적용한 1심 판결이 나오자 의료계는 한동안 공황상태에 빠져 들기도 했다.

물론 '부작위에 의한 살인죄'를 적용해 징역 2년 6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한 1심 판결과는 달리 대법원은 '살인방조죄'를 적용함으로써 치료중단에 대한 법적 비난의 수위를 한단계 낮추기는 했다.그렇다 하더라도 의료행위로서의 치료중단이 살해행위로 단죄되데 대해서는 수긍할 수 없다는게 의료계의 지배적인 정서다.

대법원의 이번 판결은 '의사의 생명 유지 의무'를 매우 높은 가치개념으로 보고, 환자의 생명권을 끝까지 포기하지 말고 지켜나갈 것을 주문한 것으로 해석된다. 인간의 생명은 다른 이익과 아예 비교할 수 없는 절대가치라는 전제에서 본다면 법원의 판단은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 질 수 도 있겠다.

그러나 보호자의 요구하면 중환자라도 퇴원시켜 온 것이 엄연한 의료 사회의 규범이고 문화이고 보면모든 요소를 제쳐두고 법적인 잣대로 엄하게 제단한 것이 과연 능사였는냐는 문제는 두고 두고 숙고해 볼 필요가 있다.

부산대의대 가정의학교실팀이 지난 98년 보라매병원 사건에 대한 1심 판결을 놓고 의사와 일반인 각각 99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 따르면 퇴원을 요구한 환자 부인에 대해 의사의 경우 75명(75.8%)은 '어쩔 수 없었을 것'이라고 답했고, 7명(7.0%)은 '생명을 너무 쉽게 포기한 것'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일반인들의 반응도 비슷했다. 일반인들 역시 57명(57.6%)가 '어쩔 수 없었을 것'이라고 답했고, 21명(21.2%)는 '생명을 너무 쉽게 포기한 것'이라고 답했다. 국민의 생명권과 관련된 법적인 판단과 현실 사이에 좀체 메우기 힘든 간극이 있음을 말해주는 좋은 본보기이다.

실제 이 사건 1심 재판부가 담당의사에게 살인죄를 적용해 실형을 선고한 지난 98년 5월 이후 전국 여러 병원에선 의사들이 '살인죄'로 기소되는 상황을 피하기 위해 회생 가능성이 없는 환자까지도 퇴원시키기를 극구 거부하는 사태가 줄을 이었다.

이에 따라 중환자실 부족 현상이 심각한 상태에 이르렀고 , 퇴원을 요구하는 환자 보호자와의 갈등도 심화되는 부작용과 후유증을 감수해야 했다. 이런 와중에서 정작 시급하게 의료혜택을 받아야 할 중환자가 피해를 입는 불상사가 초래되기도 했다.

만약 이런 와중에서 생존 가능성이 높은 환자가 치료기회를 박탕 당해 불행한 결과가 초래됐다면 이를 어떻게 수습할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의사의 생명 유지의무를 무조건적으로 강요하다 보면 또다른 더 큰 문제가 파생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재판부는 간과한 것이 아니냐는 비난을 면할 수 없게 됐다. 보호자가 막무가내로 요구하면 퇴원시킬 수밖에 없는 의료현장의 현실을 그대로 방치한채 나온 이번 판결은 많은 의사를 예비 범법자로 몰아가는 것과 마찬가지다.

차제에 의학적 충고에 반하는 보호자들의 퇴원 요구를 제압 할 수 있는 법적· 제도적 장치가 시급히 마련돼야 한다. 그래야만 억울한 피해자가 더 이상 생기지 않을 것이다.또 보호자의 의사에 반해 환자를 계속 치료할 경우 의료기관과 의사에게 전가될 수 밖에 없는 정신적·경제적 부담을 해결해 줄 수 있는 의료시스템도 반드시 마련돼야 한다.

이번 판결을 통해 '내 환자니까 퇴원도 내 맘대로 결정한다'는 식으로 담당의사가 혼자서 판단하는 결정해 버리는 것은 경계하는게 좋겠다는 교훈을 얻었으면 한다. 환자를 퇴원시킬 때에는 공식 협의체를 통해 신중하게 결정하는 것도 문제 해결을 위한 한가지 해법이 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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