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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시론] 보라매병원사건 판결 유감
시론 [시론] 보라매병원사건 판결 유감
  • 송성철 기자 songster@kma.org
  • 승인 2004.06.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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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대석 교수(서울의대 내과/서울의대의료정책연구실장)

지난 97년 12월 이후 '보라매 병원사건'이라 불리며 의료계의 논란이 되어 왔던 사건이 "퇴원하면 사망할 수 있다"는 의사의 의견에도 불구하고 퇴원을 강행한 환자의 보호자에게는 '살인죄'를, 보호자의 요구에 따라 환자를 퇴원시킨 담당의사에게 '살인방조죄'라는 형사 처벌을 확정 판결하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이 판결은 매일 의사와 환자, 그리고 보호자가 맞부딪히고 있는 의료 현장의 문제점을 간과한 잘못된 판결이기에 문제점을 지적하고자 한다.

우선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질문에 대한 관계당국의 답변이 필요하다.

(질문 1) 의료비나 생계비에 대해 아무런 부담이 없었다면, 환자의 부인은 똑같은 결정을 내렸을까?

'집으로 돌아가면 사망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집으로 돌아가기로 결정한 부인은 왜 그런 결정에 이르렀는가?'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부인입장에서는 의료비를 부담해주는 아무런 지원도 없고, 막연한 생계를 도와줄 적절한 사회보장제도도 없는 상황에서 회생가능성이 높지 않은 환자를 많은 비용을 들여서 생명유지를 할 능력이 없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우리는 그 부인만을 비난할 수 있는가? 사회제도는 아무런 책임도 없는 것일까?

(질문 2) 경제적인 이유 등으로 병원에 오지 못하고 집에서 임종하는 환자의 보호자는 '살인죄'를 범하고 있는 것인가?

적극적인 치료를 한다면 생명이 연장될 수 있는데 노력을 하지 않아 생명을 단축시킨 것이 유죄가 성립이 된다면 다음과 같은 문제를 어떻게 법적으로 해석할 것인가에 대한 결정이 전제되어야 한다. 우리나라에는 매년 10만명 이상의 환자들이 집에서 임종하고 있다. 그 환자들의 보호자들이 환자를 병원으로 모시고 와서, 연명장치를 적용한다면 수주내지 수개월 연장시킬 수 있었는데도, 이를 행하지 않아 환자의 생명을 단축시킨 셈이다. 이는 살인인가?

또, 이번 판결은 의료 현장의 다음과 같은 문제점들을 해결하기는커녕, 오히려 혼란에 빠뜨릴 것으로 우려된다.
 
1. 의학적 판단을 정형화 시킬 수 있는가?

유죄확정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이 회생가능성이 있었다는 의사의 초기 진술이라고 한다. 사회와 법은 회생가능성이 있었는가? 없었는가? 둘 중 하나의 답을 요구하고 있다. 그런데, 실제 임상현장에서는 회생가능성의 판단이 100% 와 0%로 명확히 구분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대부분 일정 확률로 가능성을 예측해 볼 수 있을 뿐이다. 여기서 발생하는 문제는 0.1%의 가능성이 있을 때, 이를 30%의 가능성과 똑같이 가능성이 있다고 볼 것인지, 회생 불가능한 것으로 볼 것인지의 판단이다.

실제 암같은 중병에서 10%의 호전 가능성을 전제로 치료를 권유하지만, 상당수의 환자와 보호자는 완치가 보장된 것도 아니고 오히려 육체적 고통과 치료비 부담을 더 받을 우려가 있음을 문제로 의사의 권유를 거부한다. 반대로 1%미만의 호전 가능성이 있는 경우, 추가적인 치료가 부작용으로 오히려 환자의 생명을 단축시킬 수도 있음을 경고하지만 보호자가 환자에게 사실을 숨기고 끝까지 치료를 요구하는 경우도 있다.

이 두 경우 모두 의사는 보호자의 요구가 환자의 사망을 앞당길 수 있다는 '미필적 인식'이 있었기 때문에, 퇴원 허가서를 써 주거나 치료를 계속함으로써, 환자의 사망을 도운 살인 방조범이 될 수 있다.
 
2. '무의미한 치료의 중단'이 불법화될 때 우려되는 상황들

1998년 1심 판결직후 정부가 "회생불가능의 환자일지라도 사망의 순간까지 생명연장장치를 환자에게서 떼어낼 수 없다"는 고시를 의료현장에 보낸 적이 있었다. 그 결과 수주 내에 각 병원의 중환자실은 퇴원하지 못한 말기암 환자들로 마비가 되었다.

세계 어느 나라에서나 회생가능성이 희박한 환자들은 집으로 돌아가 임종하는 것이 보편화되어 있다. 그런데, 이 과정이 이번 판결로 엉뚱하게 혼란에 빠진다면, 수많은 말기 암 환자들이 무의미한 치료로 '고통받는 기간'만 연장시키는 우를 범할 위험을 지니고 있다.

의과학의 발달로 생명 연장을 위한 의료기기의 기능이 향상되어, 수년 전만해도 같은 상황에서 사망했을 환자가, 식물인간 상태에서 고가의 연명장치에 의존하여 수 일에서 수년까지 죽음을 미루고 있는 것이 이미 사회 문제화되어 있다. 이러한 현상이 이번 판결 이후 더욱 늘어난다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의료비에 대한 사회적 부담뿐 아니라 실제로 회생가능성이 높은 응급 환자가 중환자실을 이용 못해 사망하게 되는 윤리적인 문제까지 발생하게 될 것이다.
 
3. 비용 부담은 누가 해야 하는가?

이 사건에서 병원에서 환자를 임종시까지 관리했으나, 결국 사망했다고 하자. 그와 관련된 비용은 누가 책임질 것인가? 환자 보호자는 원하지 아니한 중환자실에서의 연명치료였기 때문에, 더 이상 비용 지불을 하지 않겠다고 할 것이고, 사회보장제도가 그 손실을 보전해 주지도 않는다. 모든 비용은 의료기관의 손실로 귀착된다.

또, 치료만 하면 생존과 치유가 가능한 질병을 가진 환자들이 돈이 없어서 생명을 포기하는 일이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이러한 환자의 의료비를 병원이 다 부담해야 하고 그렇지 않을 경우, 병원과 담당의사에게 살인죄를 적용한다면 이미 많은 의사들이 병원이 아닌 감옥에 있어야 한다. 책임만 따지지 말고 이를 제도적으로 해결하려는 노력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이 같은 복잡한 의료현장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선진국에서는 이에 대한 법적장치를 정비해 놓고 있으며, 돈 때문에 치료를 포기하는 일이 없도록 의료 복지 시스템을 구축하였다. 이에 비해 우리는 보라매 사건 이후 7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지만 그 사건이 제시하고 있는 임종문제와 관련된 법제도의 정비와 저소득층 환자를 위한 의료복지 시스템 구축이라는 두 가지 문제에 대해서는 논의조차도 제대로 하지 않고 있다.

우리의 열악한 사회복지제도와 미비한 의료법체계로 야기된 '보라매 병원 사건'을 살인사건으로 보고 형사처벌 한 것은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다. 이번 판결로 인해 의료 현장에서 앞으로 야기될 사회적 문제와 윤리적 문제에 대해서는 누구에게 책임을 물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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