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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2024-03-29 15:21 (금)
한권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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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영숙 기자 kimys@kma.org
  • 승인 2004.05.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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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기 아일랜드의 어셔 주교는 성경을 해석해 지구는 기원전 4004년 10월 26일 오전 9시에 탄생했다고 하였다. 기도교적 세계관이 지배하는 중세에서는 정설로 받아들여졌지만 지금은 이 주장을 접하기 조차 어렵다. 과학은 우리의 예상보다 훨씬 발전하였으며 과학이 배제된 삶을 상상하기는 불가능해 보인다. 의학의 분야도 예외가 될 수 없다. 그러나 과학이 지배하는 삶은 과연 완전하며 과학적 관찰과 이론이 영속적인 실체와 참 인가하는 의문에 대해서는 회의적일 수밖에 없다.

전도양양한 과학자의 길을 포기하고 티베트 승려가 된 프랑스인과 베트남 출신 재미과학자가 나눈 대화형식의 이 책은 과학만능주의에 사로잡힌 우리의 의식을 철저히 해체하고 새로운 관점을 제시한다. 현대물리학의 핵심을 이루는 양자역학적 미시세계와 상대성이론의 거시세계를 넘나들며 전개하는 우주복사와 빅뱅-인플레이션이론, 원자론, 푸코진자, 마흐원리, 괴델의 정리, 초끈이론, 카오스와 비선형운동, 창발과 같은 해박함은 우리의 지적욕구를 충만 시키면서 공(空)을 기본으로 한 불교철학을 과학적으로 증명한다. 과학적 불교는 인류와 모든 생물, 지구, 우주전체의 상호의존성을 일깨워 미망으로부터 해방되는 불성을 제공한다.

저자가 인용하는 일부 이론이 소수의 학설이고 심지어 의사과학(擬似科學)이라고 비판될 부분이 있지만 독자가 그들의 대화에 참여하여 치열한 토론을 즐긴다면 이 또한 얼마나 유쾌한가. 또한 불교적 각성을 바탕으로 하였지만 강박적 종교관을 초월하여 비종교적 구도를 제시함으로써 독자의 종교와 무관하게 추천할 수 있는 책이다. 자연과학적 사고로 훈련된 의사들에게는 자칫 형이상학과 같은 문제가 따분하기 짝이 없으나 이 책은 자연과학적 이론을 통해 자연스럽게 인문학에 친숙해지고 둘 사이는 깊은 연관이 있음을 상기시키면서 사고의 지평을 무한히 확장시킨다. 바탕근거의학(evidence based medicine)이 매우 중요하지만 맹목적 추종은 경계해야 한다는 생각도 저절로 일어나게 하면서 현대의학적 패러다임이 어떻게 변화해야 하는지 새로운 방향을 제시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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