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이 번쩍 들도록 선명하고 또렷한 색채는 우리의 마음을 한 순간 빼앗아 가고 그 색채가 의미하는 음악 속에 함께 젖어 들어간다. 또한 영롱하고 잡힐 듯 말듯한 시어들로 인해 얼마나 마음은 고와지고 순해지는지 ..
개인적으로 존경하고 좋아하는 백화백은 나의 고교 선배님이시다. 위대한 작곡가의 음악의 혼에 행여 어긋날까 보아 음악 한곡 한곡을 수십번 수백번 열심히 마음 모아 듣고 그에 걸맞는 이미지를 색채화하였다. 그 조그마한 몸에서 어쩌면 그리도 당차고도 스케일이 큰 색채가 빚어 질 수 있는지 감탄이 절로 나오지만 무엇보다도 그 작품 하나하나를 그리기 위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가까이서 지켜본 필자로서는 이 화사한 봄 부담없이 펼쳐 볼만한 귀한 책 한권으로 추천하고 싶다.
봄·여름·가을·겨울, 계절에 따라 옷을 바꿔 입듯 음악과 함께 바뀌어지는 그림과 함께 상당히 고품위의 명곡 해설서로 이해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책 안으로 한발 더 내딛는다면 인간 고유의 표현매체라 할 수 있는 언어와 음악, 미술이 어떻게 연동되고 서로 자극받는지, 그리고 이를 연출하고 수용하는 너와 내가 얼마나 비슷하며 또 다른지를 보여주는 유쾌한 '감각의 실험실'이 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 바흐의「무반주 첼로 조곡」, 이 단일성부에 펼쳐지는 화성과 대위의 깊이 있는 대화를 들으며 시인이 "누군가 저 깊은 층계를/ 내려가고 있다. 아니/ 누군가 저 높은 층계를/ 올라가고 있다. 한 층계씩/ 그 사람이 촛불을"(본문 19쪽) 켜면 이 촛불은 다시 선율을 따라 오르내리며 화가의 꽃등으로 밝게 빛난다(14-15쪽). 마음에서 마음으로 등불이 전해지듯 바흐의 메시지가 음악에서 시로, 시에서 그림으로 변모하고 그 과정에서 이 책은 표현의 전등록(傳燈錄)이 된다.
가뜩이나 진료에 지친 일상속에서도 특별한 마음으로 음악과 그림을 사랑하고 시를 사랑하는 많은 우리 의사들에게는 잠시 진료실에서 머리를 식히며 차 한 잔을 할때 충분히 마음 따듯한 위안을 줄수 있는 좋은 책이라고 여겨진다. 책과 함께 포장 된 CD 한 장엔 주옥 같은 음악이 담겨 있으니 가지가지로 우리들을 행복하게 해줌에 틀림 없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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