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을 위한 바른 소리, 의료를 위한 곧은 소리
updated. 2024-04-17 06:00 (수)
중앙의대 허성호 교수 조사
중앙의대 허성호 교수 조사
  • 송성철 기자 songster@kma.org
  • 승인 2000.01.04 00:00
  • 댓글 0
  • 페이스북
  • 트위터
  • 네이버밴드
  • 카카오톡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선생님! 이게 무슨 청천벽력입니까?
세상 살아가다 보면 가끔 예측하지 못한 일도 일어나지만, 가족과 제자들의 울타리이자 지붕이신 선생님께서 저희들 곁을 이렇게 떠나실 수 있다는 사실이 도저히 믿어지지가 않습니다.

나날이 어려워지고 또 그만큼 경쟁이 치열해지는 현재의 의료환경에서 선생님의 지도와 가르침이 필요한 일들이 눈앞에 산더미 같은데 선생님을 잃은 저희들은 어떡해야 합니까? 또한 지아비로서 어버이로서 선생님만을 기대오던 가족들은 누구를 믿고 살아가야 합니까? 왜 대답도 못하시면서 그렇게 떠나가려 하십니까?

선생님을 잃은 뒤 보낸 지난 며칠간, 저희들의 가슴은 구멍이 뚫어진 듯 허전하고, 사람들 속에 둘러 쌓여 있어도 누군가를 찾으려고 주위를 두리번거리게 됩니다. 필동병원장으로서 또 교수로서 모든 일들을 접어두시고 병원과 대학의 발전을 위하여 노심초사하시던 모습이 아직도 선합니다.

또 병원장을 그만 두신 후에도 병원과 대학의 걱정을 하루도 하지 않은 적이 없으셨지요. 며칠 전 새로운 천년에는 더욱 더 열심히 하여 병원과 대학을 발전시키고, 멋진 내과와 호흡기를 이룩하자고 하시던 말씀이 아직도 귀에 생생합니다. 이럴 줄 알았더라면 떠나신 날 우겨서라도 선생님과 점심을 하고 얼굴을 한 번 더 뵈었을 것을 하는 후회감만 가득할 따름입니다.

선생님께서는 1947년 8월 28일에 교육자이신 부친 허건행 선생님과 모친 안을현 여사님 사이의 장남으로 출생하셨고, 부산고등학교를 졸업하실 때까지 부산에서 성장하셨습니다. 67년도에 서울대학교 문리대 의예과에 진학하셔서 의학도로 공부를 하실 때 뜻하지 않게 기흉으로 몹시 고생을 하셨고, 이 경험이 호흡기 질환으로 고생하는 환자를 위해 평생을 바치겠다는 남다른 결심을 하시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아마도 그러한 체험과 결의가 있으셨기에 환자들을 대하실 때에도 단순한 질병만을 보시지 않으시고, 그 병으로 인해 고통받는 환자들의 마음을 헤아리시고자 늘 노력하셨고 그래서 미국 결핵의 대가인 트루도선생의 좌우명인 "조금 치료하고, 많이 도와주며, 항상 위로하라"는 격언을 늘 염두에 두시고 진료에 임하셨습니다.

74년도에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시고 서울대 병원에서 내과 전문의 과정을 마치신 선생님께서는 79년도에 중앙대학교 의과대학에 부임하신 뒤에 안으로는 학생과 전공의의 교육에 힘쓰셔서 그 때 선생님께서 가르치셨던 많은 제자들이 현재는 교수로서 내과 전문의로서 훌륭한 진료 및 연구활동을 해나가고 있고, 밖으로는 국내의 호흡기학의 발전을 위해 정력적으로 일하셔서 당시에 수십 명에 불과했던 대한 결핵 및 호흡기학회 회원이 현재는 수백 명이 참여하여 노력하고 있습니다.

미국으로 연수를 가시기 전에 열사의 나라인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육 개월간을 해외에서 고생하는 한국 근로자를 위해 진료 봉사를 하실 때 잠자리를 펼치면 전갈이 몇 마리가 나왔었다는 일화가 보여주듯이 많은 고생을 감내하셨습니다.

84년부터 85년까지 1년 동안 미국 테네시주의 멤피스 테네시 의과대학에서 연수하실 때는 동양인이라는 차별을 극복하시고 많은 성취를 이루셨고 귀국하셔서는 당시 국내에서는 생소했던 폐기능 검사법을 정착하시고, 전파하셨습니다.

이외에도 대한내과학회, 대한의학협회, 결핵 및 호흡기 학회에서 중책을 맡으시면서, 맡겨진 일들을 뛰어난 추진력과 남다른 치밀함을 바탕으로 수행하셔서 늘 아랫사람의 귀감이 되셨습니다.

우리 나라가 IMF라는 초유의 외환위기에 몰려서 병원 경영이 벼랑 끝의 위기에 서있었던 시기인 97년과 98년에는 필동 병원장으로 재임하시면서 중앙대 의료원이 무사히 어려운 시기를 견딜 수 있도록 불철주야 노력하셨습니다.

지금 돌이켜보면, 이 때에 건강을 돌보지 않으시고 일에 몰두하신 것이 지금의 이런 변고를 불러일으키지 않았나 생각되어서, 그 때 선생님을 조금 더 도와드리지 못했던 저희들이 너무나 죄송스럽고 송구스럽습니다.

교단과 병실에서 엄격한 가르침 뒤에는 항상 "허-허" 하시는 소탈한 웃음으로 위축될 수 있을 제자들의 마음을 풀어주시던 선생님! 희망 없는 환자에게도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에게 기대도록 마음을 열어주시던 선생님! 이 시대의 명의이며 명교수인 선생님께서 진정 우리 곁을 떠나신 것입니까?

국화꽃 가득한 선생님의 영전 앞에서 흐느껴 우는 수많은 제자의 모습에서, 그 동안 베풀어주셨던 선생님의 깊은 사랑을 다시 한 번 사무치게 느낍니다.

우리 중앙대 의과대학과 병원의 기둥이고 내과학 교실의 등불이셨던 선생님! 떠나시고 난 뒤에야 얼마나 저희들에게 소중한 분이셨던가를 가슴 깊이 느끼게 해주시는 선생님! 그러한 선생님을 이제는 보내드려야 할 시간입니다.

살아 생전에 많은 사람들을 위해, 병원과 학문을 위해 그토록 염려하셨던 모든 시름을 다 잊으시고, 이제는 편히 쉬십시오. 부족한 저희들이지만 그 동안 선생님께서 평생을 애써오셨던 일들을 걸머지고 앞으로 나아가겠습니다. 앞으로 저희들이 살아가면서 어려움에 부닥치게 될 때는 선생님께서 생전에 보여주셨던 굳은 신념과 노력을 떠올리면서 헤쳐나가겠습니다.

2000년 1월 4일
최병휘(중앙의대 교수 내과학) 올림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 기사속 광고는 빅데이터 분석 결과로 본지 편집방침과는 무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