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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술의길서울상계동 은명내과의원 김경희원장
인술의길서울상계동 은명내과의원 김경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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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4.02.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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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술의길 사랑의 길/ 상계동 은명내과의원 김경희 원장
'겸손'과 '생명 사랑' … 61년 의사로서, 사회사업가로서 60년 넘게 이어져온 김경희 원장(내과 전문의?84세)의 수많은 행적들은 의료계 뿐만 아니라 사회 각계에도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 개업의로서의 진료를 비롯해서 지역 사회 빈자들을 위한 봉사 진료, 주민 계몽을 위한 간염 공개 강좌와 무료 상담, 무료 독서실 운영, 무의탁 노인과 지체 부자유자들을 위한 심부름 서비스, 불우 청소년을 위한 장학 사업…등에 이르기까지, "단지 하나님의 사명에 따랐을 뿐"이라는 그의 평생의 업은 모두 '은명'의 이름으로 행해진다(그의 의료 선교는 이미 세브란스의전 2학년 때 답십리 조선보육원 고아들의 건강을 돌봐준 데서 시작된다). '은명'은 어머니 고 서명신 권사가 생전에 못 다한 일을 계승하기 위해 1969년에 창립한 '명신회'를, 부친 김은식 장로가 별세한 후 부친의 함자 '은'자와 모친의 함자 '명'자를 따 개명한 것이다. 김경희 원장은 자서전 「이 사람 의사 김경희」(도서출판 에스프리, 1999년)에서 당시의 소회를 이렇게 적고 있다. "…어머니께서 못다하신 주님의 일을 불초한 이 몸이 계승하여 예수님의 사랑을 세상에서 버림받은 소자들에게 베풀겠습니다." 1984년, '어려운 이웃 많은' 상계동에 은명내과 개원 이미 신림동, 답십리 청계천 뚝방, 망원동 한강 뚝방 등 판자촌에 머물며 무료 진료하던 김경희 원장이 노원구 상계동에 은명내과의원을 개설한 때는 1984년 3월. 그 이유를 "이 동네가 어려운 이웃들이 많다고 해서"라고 말한다. 실제로 그는 영세민이 많은 지역을 찾아 미아동과 상계동, 중계동 등지를 돌아다닌 결과, 중계동이 최적지라 생각했지만 의원을 개설할 만한 집을 얻을 수가 없어 상계동으로 결정했다고. 이 부분의 얘기를 듣고, 나중에 자서전을 읽어보니, 은명내과 대기실에 걸려 있던 글이 생각난다. "1종 환자는 진료비가 모두 무료이며, 2종 환자는…"이라고 의료보호 지정 의원으로서의 은명내과 이용방법을 안내하고 있는데, 그 아래에 이렇게 적혀 있다. "의료보호대상에서 제외된 분으로 생활이 어려운 분은 접수 창구에서 미리 말씀해주십시오." 처음 읽어내려가면서 '참 세밀한 배려심을 지닌 분'이라 생각했었는데, 전후 사정을 알고보니 그로서는 매우 당연한 일이겠다 싶다. 1000원 진료, 장학 사업, 무료 심부름 센터… 그러나 김경희 원장에게 '의료보호대상에서 제외된' 그들은 단순히 측은한 대상이 아니다. 자존심과 자립심을 존중해줘야 할, 다만 환자일 뿐이다. 늘 무료 진료를 병행하던 그가 1985년부터 1989년까지 시행한 '1000원 진료'는 이를 잘 말해준다. "사람들이 병이 생기면 무조건 약국에서 약을 지어 먹었지. 진찰도 제대로 못 받고 검사도 제대로 못 하고. 감기나 소화불량 같은 병은 낫기도 하는데, 안 나을 경우도 있고 더 나빠지기도 하지. 저 사람들에게 내가 진찰도 하고 검사도 해주고 약도 지어주고 해서 1000원을 받으면, 그 돈으로 약만 사 먹는 것보다 더 낫겠다 싶었지. 그냥 무료로 하는 것은 안 좋아. 환자의 자존심도 세워줘야지." 당시 직장의료보험만 시행되던 때라 '1000원 진료'는 사회적으로도 큰 반향을 일으켰다고 한다. 그는 뭔가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바로 실행에 옮겼다고 했다. '사명'을 실천하는 일에 관한 것이라면 끊임없이 생각하고 실행에 옮겨온 것 같다. 1985년에 은명장학회를 설립해서 지금까지 불우 청소년 2200여명에게 장학금을 지급해왔고, 1986년에는 심장수술후원회를 설립하여 선천성 심장병 환자 36명을 후원했다. 무료 독서실을 열어 상계동과 중계동 일대 주민들이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게 했고(1990년~1997년), 무료 심부름 센터를 열어 무의탁 노인과 지체 장애인들의 병원 진료를 도왔다. 물론 무료 진료는 중계동 무료진료소를 중심으로 늘 병행(1990년~1997년)했으며, 중계사회복지관으로의 무료 왕진은 지금도 매월 둘째, 넷째주 일요일마다 계속되고 있다. 이 왕진으로 해서 김경희 원장은 점심을 굶은 게 다반사가 되어, 간호사들과 함께 떡볶이와 오뎅 같은 주점부리를 함께한다고. 그에게는 동반자가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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